주말의 마지막인 일요일 아침, 6시 반쯤 일찍 눈을 떴다.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발바닥이 닿자마자 차가운 느낌이 발에 착 달라붙는다. 슬슬 난방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베란다를 통해 밖을 내다보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푸르던 나무들이 울긋 불긋하다. '아, 이제 단풍도 끝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아들이 할머니집에 놀러 가고 나 혼자 보내는 여유로운 일요일이다. 나는 친한 언니와 함께 단풍 구경도 할 겸 등산을 가기로 했다. 2017년, 마음이 답답해서 찾았던 속리산 이후 정말 오랜만의 등산이다. 이번에는 거창한 의미 없이 소소하게 운동할 겸 가기로 한 거라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이번에 가보기로 한 곳은 충주 종댕이길이었다. 심항산 근처에 차를 대고, 상쾌한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며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 길을 헤매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많았기에 그저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큰 기대 없이 나온 길이었는데 걸어가다 보니 너무나 황홀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옥빛 호수가 잔잔한 물결 위 반짝이는 윤슬을 빛내며 흐르고 있고, 노란색, 주황색으로 고운 옷을 입은 나무들이 조화롭게 서 있는 모습이 너무나 그림 같았다. 마치 어릴 적 즐겨보던 밥 로스 아저씨의 그림이 실물로 툭 튀어나온 듯했다.
풍경을 따라 계속 걷다 보니 작은 정자가 나왔다. 등산하는 사람들이 쉬어가라고 만들어놓은 정자 같았는데 자연의 풍경과 잘 어우러지는 예쁜 정자였다. 잠깐 올라가서 쉴 겸 정자에 올랐는데, 와.. 그곳에서 본 풍경이 또 기가 막히는 거다. 옛날 조선시대 선비들은 이런 정자에 앉아서 시를 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니 입이 떡 벌어지면서 절로 감탄이 나와 어떻게든 더 눈에 담고 싶었다. 그 옛날 겸재 정선이 산수화를 왜 그렸는지 알 것 같았다.
나 혼자 갔으면 여기까지만 보고 내려와서 오늘 좋은 구경 했다! 하면서 돌아갔을 수도 있었을텐데 함께 온 언니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정자 위에서 본 경치가 너무 아름답고 황홀해서 다른 것은 하나도 안 봐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는데 그렇게 내가 감상에 빠져 엉덩이를 떼지 못할 때마다 언니는 마치 트레이너처럼 '회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하는 느낌으로 나를 일으켰다. 부지런한 언니 덕분에 나는 힘을 내어 다시 또 길을 갈 수 있었다. 등산 초보자인 내가 중간중간 힘들어할 때마다 언니가 지퍼백에 담아 온 사과와 배, 감을 먹으며 달콤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아, 이래서 역시 언니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수를 따라 걸으며, 가볍게 찰랑이는 물소리와 나뭇잎을 살며시 흔드는 바람소리, 가랑잎 뒹구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마치 조화로운 음악처럼 잔잔히 들려왔다. 유튜브에 아무리 좋은 ASMR이 많다고 하더라도 실제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는 따라갈 수가 없다. 그렇게 언니와 함께 아름다운 길을 걷고 있노라니 문득, 아들이 생각났다. 이 아름다운 경치를 아이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음에 아이와도 함께 꼭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항상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떠오를까?
아마도 내가 느끼는 이 행복한 감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또는 그 사람과 함께 그 순간의 행복을 함께 느끼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다.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아닌 모두가 유한성을 지닌 존재이기에..
인간의 삶의 유한성과 사랑에 대해 떠올리다 보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의 22대 임금인 정조는 한평생 사랑하던 궁녀인 성덕임에게 두 번이나 거절당한 끝에 30살에 그녀를 후궁으로 들여 '의빈'이라는 호를 지어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궁녀가 어떻게 왕을 거절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녀의 마음을 존중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큰 정조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이후 의빈은 정조와 5년을 함께 살면서 아들도, 딸도 낳았지만 비극적이게도 홍역으로 아들인 문효세자가 죽고, 옹주도 병에 걸려 요절하였다. 그리고 의빈 또한 9개월 아기를 임신한 몸으로 하늘로 떠났다. 어떻게 이렇게 비극적인 일들이 연달아 일어날 수 있을까...
의빈이 사망한 후, 정조는 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어제의빈묘지명'이라는 글을 손수 지었다. 정조는 글에서 의빈을 마음속에서 후궁으로 생각 한 지 20년이 되었다고 썼다. 함께 산 날들은 5년 남짓이었지만 정조가 그녀를 사랑한 지는 20년이 넘었다는 말이다. 글을 읽다 보면 떠난 이에 대한 사랑과 남은 이의 쓸쓸한 마음이 너무나 절절하게 슬퍼서 읽는 이의 마음이 아릴 정도다.
".. 너 또한 내가 슬픔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슬퍼할 것이다. 그러한가? 그러지 않은가?"
정조는 분명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절절하고 애틋한 사랑을 했음이 틀림없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일은 아닐 정도로 큰 행운이자 행복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사랑하던 사람이 자신보다 빨리 떠나고 그 이후의 십여 년을 더 살아나가야 하는 정조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다.
이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모든 사람이 가진 삶의 유한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들과 얼마나 소중히 보내야 하는지도..
부디 정조가 사후 하늘에서 의빈과, 먼저 떠난 아들 딸들을 만나 영원히 행복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