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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몽도 품앗이가 될 줄은

서로의 태몽을 꾸어준 자매

by 오후의 햇살

오후의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나른한 오후, 나는 책상에 앉아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공책에 시험 볼 내용을 적어가면서 입으로 웅얼웅얼 외우고 있는데 책상 위에 작고 하얀 물체가 보였다. 뭐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확인하고 다시 책상을 보니 연둣빛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작은 개구리가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엥? 개구리가 어떻게 내 책상 위에 올라왔지? 어디서 들어온 걸까? 와.. 개구리 진짜 오랜만에 본다. 참 작고 예쁘게 생겼네. 다리도 길고.' 하고 혼자 속으로 생각하던 찰나, 개구리가 폴짝! 점프를 하며 나에 뛰어들었다.


"옴마야!!!!!"


나는 놀라서 숨을 훅, 들이쉬며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앉았다.


'헉, 꿈이었구나.'


요즘 너무 피곤해서 한동안 꿈도 꾸지 않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는데 간밤에 꾼 꿈이 너무 생생해서 일어나자마자 아, 이건 보통 꿈이 아니구나 싶었다.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소중한 여동생이 있다. 여기서 예쁘다는 말은 외적인 면과 내적인 면을 모두 포함하는데, 어릴 적부터 "인형같이 생겼다"는 말을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들어온 동생은 어딜 가도 눈에 띄는 외모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이 예쁜 아이가 마음도 참 곱고 착할 뿐만 아니라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도 남달랐다. 늘 바쁘신 어머니를 대신해서 초등학생 때부터 빨래, 청소, 요리 등 스스로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부모님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애교를 부려 마음을 풀어드리기도 했다. 무뚝뚝하고 표현을 잘 못하는 아버지마저도 우리 막내가 없었으면 어쩔뻔했냐며, 오빠와 나를 낳고 마지막으로 엄마가 임신하셨을 때 경제적인 사정으로 셋째를 낳을까 말까 고민했었던 일을 떠올리면 아찔해하신다.



그런 동생이 재작년에 결혼을 해서 자기처럼 눈에 별이 박혀있는 막 돌이 지난 예쁜 딸을 살뜰하게 잘 키우고 있었는데 얼마 전, 둘째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연달아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힘들 동생을 생각하며 마음이 쓰이다가도 '첫째도 귀여운데 둘째는 또 얼마나 귀여울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어젯밤 내가 이 개구리 꿈을 꾼 것이다.


전지적 이모 시점에서 그린 그림.

동생에게 말해주기 전에 개구리 꿈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먼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에 '개구리 꿈'을 키워드로 검색을 해봤다.


-개구리는 '변화, 성장, 새로운 시작, 행운'을 의미합니다.


다행이다! 의미가 좋구나! 안도하면서 이번에는 '개구리가 달려드는 꿈'을 키워드로 검색을 했다.


-용감하고 진취적인 성향의 자손을 얻게 될 태몽입니다.


크으~ 됐다, 좋은 꿈이 맞구나! 이번엔 개구리 태몽을 꾼 사람들이 어떤 성별의 자녀를 낳았는지 검색을 해봤다. 블로그, 카페, 댓글 등 다양한 채널의 데이터를 종합해 본 결과 개구리 태몽을 꾸고 딸을 낳았다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제 내 꿈에 대한 배경지식도 충만히 수집했으니 동생에게 풍성한 꿈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 전화를 했다. 언니가 너의 태몽을 꾸었노라고.


"어머 진짜? 안 그래도 애기 태몽을 꾸었다고 하는 사람이 없어서 맘에 걸렸는데 언니가 너무 좋은 꿈을 꿔줬네. 고마워! 개구리 꿈이라니 너무 신기하다!"


"그러게, 우린 파충류 태몽을 많이 꾸네. 너무 웃기지 않니?"


동생의 기뻐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덩달아 기쁘고 뿌듯했다. 내가 아이를 임신했을 때에 큰 뱀이 황금알을 물고 있는 멋진 태몽을 꿔준 동생이라 나도 동생이 임신하면 태몽을 꾸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진짜 이렇게 시기적절하게 꿈이 꾸어지니 너무 놀랍고 신비로웠다!






어릴 적 나의 태몽이 궁금해서 엄마께 나를 임신하고 태몽을 꾸셨냐고 여쭤봤었다. 엄마는


"아유~ 네 태몽은 내가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지. 엄마가 여고 뒷산에 올라갔는데 한 발짝을 앞으로 내딛으려고 발을 떼고 아래를 봤는데 글쎄, 땅 위에 실뱀이 엄~청 많은 거야. 발을 놓을 데가 없어 악!! 소리를 지르면서 꿈에서 깼지."


하고 말씀하셨다. 뱀 꿈이라니, 내가 중학생일 때 영화 해리포터가 극장 개봉을 해서 큰 유행이었는데 그럼 나는 그리핀도르(주인공이 속한 기숙사)가 아니라 슬리데린(뱀과 관련 있는 기숙사)인 건가? 생각하면서 풉 웃음을 터뜨렸더랬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인터넷 태몽 해설 사이트에 '작은 뱀이 우글거리는 꿈'을 쳐보고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장차 교사가 될 여자아이를 뱃속에 품게 되는 태몽입니다.


네? 뭐라구요? 장차 교사가 될 여자아이요? 글귀를 보는 순간 너무 놀라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릴 적부터의 꿈이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고, 그것만 바라보고 노력해서 선생님이 된 나였기에 태몽이란 정말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더해서 동생이 꿔준 내 아들의 꿈도 뱀꿈이라 하니 더 놀랍고 신기했다.



세상에는 가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나는 그것이 인간의 간절함으로 말미암아 무의식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이 이런 종류의 따뜻함이라면 나는 언제나, 웰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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