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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은 통한다. 언제나

시간이 겹겹이 쌓아 올린 신뢰가 주는 온기

by 오후의 햇살

오늘은 2024년 12월 29일.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자연의 입장에서는 매일매일 똑같은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겠지만 해가 나뉘어 있다는 것이 사람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힘든 일이 많았던 해의 끝에서는 내년에 좀 더 행복할 거야, 하는 희망을 품을 수 있고 좋은 일이 많았던 해의 마지막에는 내가 1년 동안 이루어낸 것들을 되돌아보며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에게는 올 해가 새로운 도전과 적응의 해였다. 지역을 이동하여 직장과 집을 옮기고, 학교에서 처음으로 학년 부장이라는 업무를 맡아 많은 사람들을 챙기고, 거의 매일 야근을 하며 뭐든 놓치지 않고 빨리 해내려고 애썼다. 무슨 일이든 내가 제일 먼저 끝내고 나서 학년 선생님들께 꼼꼼하게 안내해 주려고 노력했고, 모르는 것들은 여기저기 여쭤보았다.


내가 맡은 아이들도 소홀히 할 수 없어서 반에서 소외당하는 아이는 없는지, 매일 표정이 어두운 아이는 없는지 살피고 동학년 선생님들과 함께 수업 아이디어를 서로 나눔 하여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수업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동동거리다보니 여름 무렵에는 번아웃이 크게 와서 삶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 외로움이 밀려왔고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너무 나를 힘들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는 나에게 조금 내려놓고 조금 덜 열심히 해도 괜찮다고 다독여주었다. 잘하려는 마음이 커서 너무 애쓰다 보니 번아웃이 오는 거라고.


그래도 성격이 팔자라는 말처럼 나는 좀처럼 내가 하는 일을 대충 할 수가 없는 성격이라 2학기에도 내가 하던 일들을 내려놓을 수는 없었지만 마음만은 더 편해졌다.




Carpe diem.

학창 시절 보았던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서 나왔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를 떠올렸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면 그냥 하자. 해내자. 이런 마음으로 매일을 살았다.

큰 일 없이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으면 감사한 거다.


그리고 얼마 전, 학교에서 진행한 교육과정 마무리 연수에서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옆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한 단어로 표현해 보기' 활동을 하게 되었다. 내가 교사가 아니라 마치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별생각 없이 참여한 활동이었는데 동료 선생님들이 나에 대해서 써준 단어들에서 감동이 밀려왔다.



밝음. 책임감. 완벽함. 온유함. 사려 깊음.


책임감이라는 단어는 2개나 있어서 '아, 동료들이 내가 열심히 애쓰는 모습을 알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알아달라고 한 일은 아니었으나 주변에서 내가 애썼음을 알아주고 따뜻한 시선으로 봐줄 때 사람은 감동을 받는다.



요즘은 퇴근하기 전에 교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나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고민을 얘기해 주는 후배 선생님들에게 너무나 고맙다. 고민을 터놓을 수 있을 만큼 이 사람이 나를 신뢰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비록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그 사람이 하는 말에 집중하여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고 함께 고민한다.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위로가 된다는 것을 나도 따뜻한 선배 선생님들을 통해서 배웠다.


집에 맛있는 과일이나 쿠키 선물이 들어오면 학교로 가져가서 동료들과 나눠먹으려고 쇼핑백에 담아 들고 간다. 수업이 끝나고 같이 회의를 하면서 제주도 감귤을 하나씩 까먹으면, 직장이지만 집같이 따뜻한 공기가 맴돈다. 한 해 동안 고생했다는 의미로 동학년 선생님들에게 작은 핸드크림도 선물했다. 내가 원하는 직장 분위기는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에는 후배 선생님이 "부장님, 제가 다른 학년 후배 선생님한테 내년에 우리 학년 지원하라고 했어요! 우리 부장님 너무 좋은 분이라서 여기 오면 좋을 거라고요." 하고 얘기해 주는데 너무 감동을 받아서 마음이 뭉클했다.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결국 내 마음은 전달된다.

따뜻한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되어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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