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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Feb 01. 2024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

안 괜찮아도 괜찮아.

 "선생님, 죄송한데.. 오늘도 늦을 것 같아요. 석호가 지금 교문 앞에서 안 들어간다고 울고 있어서 제가 달래고 있거든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네, 어머님. 기다릴게요. 어머님께서 너무 고생이 많으시네요.. 일단 교실 앞까지만 데려와주시겠어요? 그럼 제가 어떻게든 달래서 교실로 같이 들어가 볼게요."


 입학을 한 지 2주째. 이제 갓 1학년이 된 석호는 아침마다 엄마와 전쟁을 치른다. 학교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교문 밖 100미터 앞에서부터 악을 쓰고 버티는 석호의 울음소리가 동네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석호 엄마는 아이의 티셔츠가 등허리 위로 다 들리도록 석호를 번쩍 안아 들고 버티는 아이를 야단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침마다 이러면 어떡해! 엄마도 너무 힘들어. 학교에 가면 친구들도 많고, 선생님도 좋은 분인데 왜 이렇게 가기 싫어하는 거야? 벌써 9시 20분이야. 친구들은 다 교실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있는데 너만 이게 뭐 하는 거야! 너 이제 유치원생 아니야. 알겠어?"


 "싫어! 안 가! 그냥 엄마랑 집에 있으면 되잖아, 응? 이거 놔, 놓으라고!!"


 석호가 교실 앞까지 온 건 오전 10시가 다 되어서였다. 석호를 기다리며 교실 문을 열어놓고 수업을 하던 나는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석호 엄마의 얼굴이 빼꼼, 보이자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선생님이 잠깐 복도에 나가서 친구를 데려올 테니 여러분은 색연필로 선생님이 아침에 나눠준 학습지를 색칠하고 있어요. 잘할 수 있죠?"

 "네~!"


 병아리 같은 아이들의 귀여운 목소리를 뒤로 하고 잰걸음으로 교실 뒷문으로 나갔다. 석호는 엄마의 두 팔에 안겨서 버둥거리고 있었고 석호엄마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석호엄마에게 말했다.


 "어머님, 제가 석호를 안고 있을 테니까 어머님은 그 틈에 얼른 가세요. 어머니께서 계속 여기 있으시면 석호가 교실로 더 안 들어가려고 할 거예요. 석호야, 선생님이랑 같이 교실로 들어가자. 선생님이 오늘 재미있는 놀이 해줄게. 알았지?"


 석호에게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하다가 어머님이 석호를 안은 팔을 풀자마자 바통 터치를 하듯이 내가 석호를 안았다.


 "어머님, 지금 가세요!"

 "선생님, 정말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석호야, 엄마 갈게!"


 석호 엄마는 빠르게 말을 내뱉고 도망치듯 복도 끝으로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석호의 울음소리가 북도를 가득 채웠다.


"엄마아, 가지 마! 엄마아!!!! 으아아!!! 이거 놔!!"


 나는 석호를 안고 "석호야, 괜찮아. 괜찮아. 선생님은 석호에게 잘해주려고 학교에 있는 사람이야. 너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야. 석호는 잘할 수 있어. 선생님은 석호를 믿어. 괜찮아.." 하고 말하면서 계속해서 석호를 다독였다. 하지만 석호는 괴성을 지르며 나의 두 팔을 뿌리치고 마치 용수철이 튕기듯, 엄마가 사라진 복도 끝으로 달려 나갔다. 나는 석호를 따라 복도를 내달렸다.


 우리 교실은 2층. 다다닥, 계단을 내려가는 석호를 따라가다 계단 위에서 나는 단호한 어조로, 크게 아이의 이름 세 글자를 불렀다.


 "김석호!"


 그러자 석호는 움찔, 놀라더니 뒤를 돌아 경계와 불안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했다.


 "선생님은 네가 이렇게 간다면 더 이상 잡을 수 없어. 왜냐하면 우리 교실에는 석호 말고도 다른 친구들이 있거든. 석호가 이렇게 매번 도망치면 앞으로 석호는 학교에 오는 게 계속 싫어질 거야. 선생님은 석호와 함께 교실에서 재미있는 놀이도 하고, 같이 노래도 부르고, 재미있게 할 것들을 잔뜩 준비해 놨는데 석호가 교실에서 자꾸 나가고 싶어 하니까 너무 속상하다. 선생님이 교실에서 기다릴 테니까 석호가 준비가 되면 들어올래? 억지로 붙잡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한 계단만 올라와 보면 안 될까?"


 석호는 잠깐 생각을 하는 듯 정지해 있더니 계단 한 칸을 올라왔다.


 "와~! 역시 우리 석호는 대단해! 너무 잘했어! 선생님이 너무 기쁘다!"


 마음이 벅찬 나는 이제 됐다는 생각을 하며 한 계단 내려가 석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러자 석호는 다시 나를 경계하며 한 계단을 내려가는 게 아닌가! 나는 직감적으로 이 아이는 억지로 다가가면 안 되고, 자기가 준비가 되어야 교실로 들어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호야, 선생님이 석호에게 다가가면 석호가 아직 준비가 안되어서 불안할 수 있으니까 먼저 교실로 들어가 있을게. 석호도 준비되면 꼭 교실로 와야 해? 선생님은 석호가 정말 너무 좋거든. 석호가 오면 선생님이 석호가 좋아하는 보글보글 찌개박수 놀이 시켜줄 테니까 얼른 들어와야 한다? 기다릴게."


 석호에게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말한 뒤,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교실로 들어왔다. 아직 학습지 채색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햇빛이 내리쬐는 창가로 걸음을 옮겨 석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작은 소리가 들렸다.


 "석호는 돌아올 거야."

 

 깜짝 놀라 시선을 아래로 옮기니 거북이가 물 위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6년째 키우고 있는 거북이였다. 교실에 거북이를 갖다 놓고 같이 키우면 아이들이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을 것 같아서 얼마 전 어항을 교실로 갖다 놓은 터였다. 그런데 거북이가 말을 하다니! 나는 황급히 교실에 있는 아이들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아이들 중 어느 누구도 이쪽을 바라보지 않고 있었고, 그저 색칠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나한테만 들리는 건가...?'


 이상하게 생각하며 거북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석호는 유치원에서도 집에 간다고 소리를 지르고 울어서 선생님한테 자주 혼났어. 그때마다 선생님이 아이를 꼭 잡고 그러면 안 된다고 얘기했는데 석호가 발버둥 치다가 팔에 멍이 들기도 했지. 석호는 아무도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혼을 내기만 하는 게 너무 무섭고 답답하고 속상했어. 그래서 석호가 교실에 못 들어오는 거야."


 나는 거북이의 말을 듣고, 아까 계단에서 내가 다가갔을 때 석호가 다시 계단을 내려간 이유를 알았다. 선생님이 강압적으로 자기를 잡을까 봐 무서웠구나.. 석호가 가지고 있는 불안을 깨닫자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석호의 마음을 따뜻하게 알아주고 싶었다.


 그때, 교실 뒷문 쪽으로 기척이 느껴졌다. 불안한 눈빛의 석호가 거기에 서 있었다. 나는 천천히 교실 뒷문으로 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뒷걸음치는 석호를 잡지 않고 약간의 거리를 둔 채 말했다.


 "석호야! 용기 내서 여기까지 왔구나! 정말 고마워. 학교에 오는 게 너무 무섭고 겁이 났지? 사실 선생님도 1학년 때 학교에 가는 게 너무 무서워서 매일 울었어. 친구들도, 선생님도 다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교실이 너무 무서웠거든. 그런데 막상 교실에 들어가니까 선생님도 친절하고 친구들도 괜찮은 거야. 그래서 선생님은 마음을 놓았어. 우리 석호도 많이 무서웠지? 그런데 선생님은 정말로 석호를 사랑해. 석호가 싫어하면 절대로 억지로 꽉 잡거나 하지 않을 거야. 선생님은 석호와 행복하게 학교 생활을 하고 싶어. 얘들아, 너희도 석호랑 같이 즐겁게 놀고 싶지?"


 "네~! 석호야, 우리 같이 놀자!"

 "석호야, 괜찮아! 얼른 들어와~!"

 

 아이들이 석호에게 어서 오라는 손짓을 하며 불렀다. 나는 교실 앞으로 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를 시작했다.


 "자, 여러분! 우리 석호도 왔으니까 같이 찌개박수를 쳐 볼까요? 모두 준비됐나요?"

 "네!!!"

 "준비자세~ 얍!"

 "얍!"


 "보글보글 짝짝, 지글지글 짝짝! 보글 짝! 지글 짝! 보글, 지글 짝짝!"

 손가락을 오므렸다 펴면서 위아래로 조물조물거리면서 리듬에 맞춰 박수를 치자 아이들이 신나서 따라치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는 사이에 석호도 쭈뼛쭈뼛 교실 안으로 들어와 자기 자리에 앉아 실내화 가방을 책상 옆에 있는 고리에 걸고, 가방은 의자 뒤에 걸어놓았다.


 "자, 우리 석호가 자리에 너무 잘 앉았지요? 용기 내서 교실에 들어온 석호에게 박수~!"

 "와아~ 석호야 잘했어!!!"


 아이들이 짝짝짝 박수를 치자, 석호가 입꼬리를 멋쩍게 올리며 수줍게 웃었다. 그날 이후, 석호는 제시간에 등교할 뿐만 아니라 교실에서 하는 모든 활동을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 되었다. 문득 나에게 조언해 준 거북이가 생각났다. 나는 아이들이 하교한 뒤, 창가로 가서 거북이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거북이는 언제 말했냐는 듯 그저 유유히 헤엄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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