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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Feb 04. 2024

웃음을 잃어버린 아이

학교를 무서워하던 태주가 꼬마 시인이 되기까지

 태주는 불안이 많은 아이였다. 서른 명이 모여 있는 교실에서 태주는 늘 주변의 눈치를 보고 수업 시간에도 친구들이 너도 나도 손을 들어 발표를 할 때면 두 팔을 책 상 위에 올려놓고 왼팔 위에 오른팔을 포갠 뒤 고개를 푹 숙이기 일쑤였다.


 나는 그런 태주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천천히 아이에게 다가가기로 했다. 아침에 태주가 소리도 없이 뒷문 사이로 스윽 들어올 때면 반가운 목소리로 "태주야, 안녕? 오늘 입은 원피스가 너무 예쁘게 잘 어울리는구나!" 하면서 말을 걸었다. 태주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입가에 웃음도 띄지 않고 대답을 하지도 않고, 그저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듯 자기 자리로 가서 앉을 뿐이었다.


 나는 태주를 유심히 관찰하다가 국어 시간에 우연히 태주가 쓴 글을 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수업을 잘 듣고 동시 쓰기를 잘하고 있는지 가끔씩 국어 책을 걷어서 검사하곤 했었는데 그때 보게 된 태주의 시는 저학년이 쓴 글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걸작이었다.



 제목: 별똥별

            

우와~ 떨어진다!

땅 세상은 어떨까?

사람들은 나를 보고 소원을 빌지만,

진짜로 이루어질지는 나도 모른다.


땅에 떨어졌다! 쾅!

엉덩이가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좋다.


저번에 떨어진 내 친구를

만날 수 있다.



 이럴 수가. 별똥별을 의인화해서 시를 쓰다니. 너무나 기발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시 아닌가! 나는 아이의 재능에 진심으로 감격하여 다음 날 국어 시간에 아이들에게 국어 책을 나누어주면서 말했다.


 "여러분, 우리 반에 동시를 너무나 잘 쓴 친구가 있어서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읽어주려고 해요. 태주야, 선생님이 네가 쓴 동시를 친구들에게 읽어줘도 괜찮겠니?"


 주는 잠시 경직된 얼굴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이들에게 '별똥별' 시 낭송을 마치자, 아이들이 박수를 터뜨렸다.


 "우와~! 진짜 잘 썼다!"

 "태주가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줄은 몰랐어!"

 "태주야, 정말 대단해! 부럽다!"


 아이들이 칭찬을 쏟아내자 태주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였다. 나는 다 읽은 국어책을 태주에게 가져다주면서 태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태주야,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의 이름도 태주인데, 우리 반에도 나태주 못지않은 훌륭한 시인이 있었구나! 정말 잘 썼어."


 태주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태주가 기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태주는 쉬는 시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칭찬을 받았다. 나한테 잘하는 것이 있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괜스레 얼굴에 찬물을 끼얹으며 쿵쿵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유치원 때부터 조용하고 어두운 아이라고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아서 세상이 두려웠던 태주는 언제나 몸을 웅크리고 다니는 게 습관이 되었다. 집에서는 아버지가 매일 술을 마시고 어머니와 다투기 일쑤여서 조용히 방 안에 숨어서 큰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구석에 주저앉아 두 팔로 두 다리를 감싸 고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나는 도대체 이 세상에 왜 태어난 걸까...'


 해가 떠도 캄캄한 밤이 지속되는 것 같은 일상의 연속이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태주는 행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 엄마는 앞으로 이 집에서 엄마랑 태주가 둘이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날 밤 엄마는 태주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첨벙!"  

 교실로 돌아온 태주는 갑자기 들려온 물소리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지?'


 교실 창가에 있는 어항 속 거북이가 물속에서 다리를 부산하게 움직이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라 삼삼오오 모여 놀이를 즐기고 있었고, 오직 태주만이 거북이가 낸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태주는 조심스럽게 창가로 다가갔다. 그때, 거북이가 움직임을 멈추고 태주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넌 반드시 행복해질 거야."


 

 태주는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거북이가 말을 하다니! 그러자 또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쉿! 이건 너만 들을 수 있는 소리야.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에게만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거든."


 태주는 마음을 가다듬고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그리고 이 거북이는 나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내가 행복해질 거라고 얘기하는 거지?'


 "나는 사람들의 감정을 느끼고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 네가 이 교실에 처음 온 날부터 너의 모든 생각을 다 듣고 있었지. 네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나는 다 알고 있어. 그리고 아까 칭찬받을 때 네가 주체할 수 없이 기뻐서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것도 다 보고 있었지. 그 순간 아이들과 선생님도 모두 너와 같은 기쁨을 느끼고 있었어. 너는 틀림없이 이 교실에서 앞으로 네가 가진 재능을 키우며 선생님과 친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게 될 거야."



 그 순간 띠리링~ 하는 수업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요란하게 자리에 앉았다. 태주는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지만 침착하게 수업을 다 듣고 다시 거북이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렸다.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다음 쉬는 시간이 왔을 때, 태주는 거북이에게 다가가 마음속으로 말을 걸어 보았지만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내가 꿈을 꾼 건가?'






 그 후, 태주는 정말로 거북이의 말처럼 조금씩 일상의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태주를 '우리 반 시인'이라고 부르며 태주가 글을 쓸 때마다 행복하게 들어주었고 태주 엄마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딸을 잘 키우기 위해 새로운 직장을 구해서 열심히 일하기 시작하셨다. 태주는 저녁에 집에 돌아온 엄마와 따뜻한 된장찌개를 먹으며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드렸고, 엄마는 태주가 반에서 '시인'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기뻐하셨다.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은 학교에서 또 어떤 즐거운 일이 생길까?' 하는 생각을 하며 태주는 자신 말고 또 거북이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거북이의 말을 들은 날, 이미 자신이 '행복한 아이'가 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다시 거북이의 말을 들을 수 없는 거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거북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동시에 태주 자신이 거북이가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아이가 된 것이기 때문에 기분이 좋기도 했다. 태주는 잠이 들면서 마음속으로 거북이에 속삭였다.


 '거북아, 나의 행복을 예언해 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우리 반 친구들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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