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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Feb 08. 2024

친구들에게 매일 욕하는 아이

사실은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

 한나는 가을이 저물어갈 무렵, 우리 반에 전학을 왔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긴 머리를 양갈래로 나눠 묶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나는 아이들 앞에서 처음으로 인사를 하면서 쭈뼛거리며 약간 혀 짧은 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는 자리에 들어갔다.


 한나는 쉬는 시간마다 내 옆으로 왔다.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쓰여진 메모와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어느새 교탁 위에 수북이 쌓였다. 그리고 "나, 선생님 좋아. 선생님 안아줘." 하면서 나의 허리를 갑자기 꽉 안아서 나를 당황스럽게 하기도 했다. 그런 한나가, 아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한나야, 이거 우리가 쌓아놓은 블록인데 마음대로 무너뜨리면 어떡해!"

 "나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거든? 왜 나한테만 짜증이야? 이딴 거 내가 다 없애버릴 거야! 에잇"


 한나는 조금이라도 자신을 책망하는 말투를 들으면 갑자기 폭발해서 친구들에게 장난감을 집어던지거나 발길질을 하면서 욕을 하거나, 심지어 침을 뱉기도 했다. 게다가 친구들에게 욕을 해서 내가 그러면 안 된다고 혼을 낸 날에는 눈을 희번뜩하게 뜨고 알림장도 쓰지 않고 입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전학을 온 지 일주일 만에 한나는 교실에 있는 모든 친구들에게 미움을 샀다. 친구들에게 폭력을 쓰는 한나를 말리다가 선생님인 나도 성난 아이가 휘두르는 주먹에 팔과 몸을 맞게 되는  날도 있었다.


 "한나가 이제 선생님도 때린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우리 반 아이들이 나에게 우르르 몰려왔다. 병아리 같은 1학년 아이들이 나를 빙 둘러싸서 머리에 '호~ ' 하고 입김을 불어주기도 하고, 내 몸을 쓰다듬으며 진심으로 걱정을 해주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자리에 앉으라고 이야기하고 상황을 수습하고 난 뒤, 한나의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 학부모 상담이 필요하니 오후에 학교로 와달라고 했다.

 그러나 약속된 시간이 되어 교실 문을 드르륵 열고 나타난 사람은 한나의 아버지였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반팔을 입은 한나 아버지의 팔에는 시커먼 문신이 가득했고, 얼굴은 짜증으로 가득했다.


 "선생님, 제가 부탁 하나만 할게요. 애들을 좀, 엄하게 지도해 주세요. 예?"


 이 사람은 선생님인 내가 아이들을 엄하게 지도하지 않아서 자기 딸이 우리 반 아이들을 때리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 와서, 그것도 자기 자식이 아이들과 선생님께 피해를 준 상황에 교실에 들어와서 껄렁거리는 태도로 한다는 말이 저런 말이라니.. 아이가 집에서 따뜻한 사랑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가 없었겠구나 싶었다.


 "아버님, 저를 오늘 처음 보셨지요? 저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에는 엄하게 지도합니다. 한나도 마친가지로 잘한 일이 있을 때에는 듬뿍 칭찬해 주면서 잘못한 일이 있을 때에는 따끔하게 혼을 냅니다. 그런데 어떠한 일이 있어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고,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에는 저도 아이를 절대로 두둔해 줄 수 없습니다. 요즘 학교에는 학교폭력위원회가 있어 학교 폭력 사안이 발생하고 신고가 들어오면 바로 위원회가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한나가 일주일 동안 반 친구들을 발로 차고, 욕을 하고, 침을 뱉은 것은 학교폭력에 해당합니다. 지금까지는 피해 부모님들께서 이해해 주셔서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대로 한나가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앞으로 저도 한나를 감싸줄 수 없습니다. 상황을 심각하게 인지해주시고 아이에게도 폭력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집에서도 함께 지도해 주세요."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단호하게 말하는 나에게 한나의 아버지는 한숨을 쉬고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한 마디를 더 얹었다.


 "아, 그리고 한나가 오늘 알림장을 하나도 안 썼어요. 아버님께서 한나 옆자리에 같이 앉아서 한나가 알림장 쓰는 것을 좀 도와주시겠어요? 저희 반은 알림장을 다 써야 집에 간다는 규칙이 있거든요. 죄송하지만 저는 교직원 회의가 있어 잠시 다녀와야 하니, 아이가 알림장을 다 쓰면 같이 귀가해주시면 됩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나 아버지는 마뜩잖은 표정으로 미간을 한 번 찌푸렸으나 곧 한나 옆에 앉아서 아이가 알림장 쓰는 것을 도왔다. 나는 한나 아버지가 이 기회에 아이의 교육에 관심을 갖길 바랐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한나에게 알림장 하나를 쓰게 하는 것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스스로 느껴보길 바랐다. 회의가 끝나고 돌아온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나는 집에 매일 혼자 있어. 혼자만 있으니까 친구 사귀는 법을 몰라서 그래."



 창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 맞다! 말하는 거북이! 한참 동안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잊고 있었다. 머리가 복잡했던 순간, 거북이는 다시 나에게 목소리를 들려줬다. 한나가 집에 혼자 있다니, 거북이는 무얼 알고 있는 걸까.


 "한나가 왜 집에 혼자 있어?"


 "한나 부모님은 떡볶이 가게를 하고 있거든. 원래 아빠 혼자 하고, 엄마는 집에서 한나를 돌봐주었는데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한나 아빠가 일할 사람을 쓸 수가 없어서 한나 엄마도 같이 가게를 도와서 함께 하게 됐어. 그래서 한나는 아직 1학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학교 다녀와서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게 되었지. 많이 외로울 거야."


 그랬구나.. 한나는 사랑이 너무나 고픈 아이였구나. 거북이의 대화를 통해 한나의 가정 사정을 알게 된 나는 한나를 좀 더 따뜻한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쉬는 시간에 한나와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눴다.


 "한나야, 한나는 사실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건데 친구들이 한나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화가 났던 거지?"

 "응.. 맞아. 한나 속상했어."

 "그런데 한나가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으면, 툴툴거리거나 짜증을 내지 않고 친절하게 다가가는 게 필요해. 선생님이 한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처럼, 한나도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면 친구들이 한나를 엄청 좋아할 거야. 우리 한나는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니까."

 한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가 말했다.


 한나는 다시 "선생님 좋아. 선생님 사랑해." 하면서 나를 안았다.

 "그리고 이제 우리 한나는 곧 2학년이 되니까, 선생님한테도 존댓말로 말해주면 좋겠어. 선생님 좋아요. 사랑해요. 이렇게, 할 수 있지?"

 "음.. 선생님 좋아요. 사랑해요."

 "옳지, 잘했어!"


 한나는 조금씩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한 번에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에는 친구들과 다투고 난 후에도 씩씩거리며 교실 구석에서 소리를 지르던 아이가, 이제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큰 발전이었다.


 나는 한나 부모님께도 전화를 걸어 아이가 아직 1학년인데 밤까지 집에 혼자 있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불안할 수 있으니,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어른이 있다면 함께 있을 수 있게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다. 며칠 후, 한나가 이제는 집에 할머니와 함께 있게 되었다며 행복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한나의 미소를 보며 창가에 있는 거북이도 이 사랑스러운 아이의 미소를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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