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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Feb 11. 2024

주목을 받지 못하면 뒤집어지는 아이

물고기 그림으로 알아본 아이의 애정결핍

 우리 반 공찬이는 전형적인 왕자님 스타일의 아이였다. 갸름하고 흰 얼굴에 갈색 곱슬머리를 하고 말을 조용조용하게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공찬이가 1학년에 입학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학교에서 나의 꿈 발표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진로교육의 일환으로, 아이들에게 자신이 되고 싶은 장래희망을 그림으로 그리고 왜 그것이 되고 싶은지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발표력과 그림, 글솜씨, 청중의 반응을 종합하여 학급에서 3명의 어린이에게 최우수상과 우수상, 장려상의 상장을 수여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대회 일주일 전 아이들과 학부모님께 대회에 대하여 공지하고, 학급에서 대회를 하기 전에 집에서 미리 연습을 하거나 준비를 할 친구들은 그렇게 해도 된다고 알림장에 적어주었다.


 대회 당일, 아이들은 각자 준비해 온 준비물들을 가지고 나와 야무지게 자신의 꿈을 발표했다.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 치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USB에 담아 가져온 아이도 있었고, 청진기와 흰 의사 가운을 가져와서 입고 의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이야기하는 아이도 있었고, 로봇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면서 로봇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공찬이도 열심히 그린 그림을 가져와 칠판 앞에 서서 발표를 시작했다.


 "어... 저는.. 태권도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음... 태권도를 좋아해서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가 되고 싶어요."


 부끄러웠는지 애써 그려온 그림은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고 만지작거리며 들릴 듯 말듯한 작은 목소리로 후다닥 발표를 마치고 들어가려는 공찬이에게 나는 그림을 열심히 그려왔으니 친구들에게 그림을 제대로 보여주자며, 실물화상기 아래에 공찬이의 그림을 놓고 확대해서 보여주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모든 아이들의 발표가 끝나고, 아이들의 투표와 선생님의 의견을 반영해서 상을 탈 3명의 어린이들을 선정했다. 공찬이도 잘하긴 했지만 열심히 준비해 온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아쉽게도 공찬이의 이름은 3명 안에 들지 못했다. 그러자, 사달이 났다. 얌전하던 공찬이가 갑자기 울면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다가가 공찬이를 위로해 주어도 공찬이는 팔을 휘두르고 소리를 지르면서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뚜벅뚜벅 공찬이에게 걸어가 공찬이의 등에 가만히 손을 올리고 말했다.


 "공찬아, 우리 공찬이가 열심히 준비했는데 이름이 불리지 않아 속상했구나. 그런데 3명에 뽑히지 않았다고 해서 잘하지 않은 것은 아니야. 선생님은 공찬이가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 앞으로도 여러 가지 대회가 있으니까 그때 다시 공찬이의 실력을 뽐내면 돼."


 하지만 속상함과 분노가 극에 달한 아이에게 나의 말이 바로 효력을 발휘하기는 힘들었다. 한 손으로는 책상에 엎드린 얼굴을 받치고, 한 손으로는 팔을 휘적이며 아이들을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공찬이를 보면서 나는 아이가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러분~ 이제 쉬는 시간이니까 10분 쉬도록 해요. 그리고 공찬이는 혼자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으니까 여러분도 일부러 가서 위로하려고 하지 말고 각자 쉬도록 해요."


 아이들은 삼삼오오 교실 뒤편으로 몰려가 바닥에 앉아 보드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머리를 식힐 겸 창가에 서서 운동장에 있는 커다란 나무의 잎사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복잡할 때 늘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자연의 모습은 나에게 큰 안정감을 준다.

 

 "공찬이는 집에서 왕자님처럼 커서 항상 자기가 최고이고 싶은 거야."

 교실 창가 수조 속에 있는 거북이가 물 밖으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나를 쳐다보며 소곤소곤 말했다.

 


 "공찬이가 왕자님처럼 컸다고?"


 "그래. 공찬이는 집안에서 장손으로 태어나 귀한 아들 대접을 받으며 자랐어. 부모님이 맞벌이하느라 바쁘셔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키워주셨는데 너무 귀하게 키우느라 늘 공찬이가 최고라고 가르쳤지. 그러니 학교에 와서 자기보다 잘하는 애들이 있다는 걸 인정하기가 어려운 거야."


 "그렇구나.. 고마워. 공찬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어."


 "별말씀을. (첨벙)"


 나는 다음 주에 있을 학부모 상담을 앞두고 미술시간에 물고기 그림 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둥근 어항이 그려진 종이를 나눠주고, 그 안에 자신의 가족들을 물고기로 나타내어 그려보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림을 다 그려서 제출하고 하교한 후, 홀로 교실에 남아 천천히 작품들을 보다가 공찬이의 그림을 확인한 나는 깜짝 놀랐다.

기억을 떠올려 그려본 그 당시 공찬이의 그림

 공찬이의 그림에는 어항을 가득 채우는 커다란 무지개 색깔의 화려한 물고기 한 마리가 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고, 다른 가족들은 모두 아주 작은 물고기로 그려져 있었다. 게다가 더 이상한 것은 어항 속에 물이 절반도 차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을 크고 예쁜 물고기로 표현하긴 했지만, 그림에서도 보여지듯 이 물고기는 다른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고, 겉으로만 자신감 있는 모습을 과시할 뿐 실상은 부족한 물 위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주일이 지나 공찬이의 어머님이 학교로 학부모 상담을 오셨을 때, 나는 어머니와 반가운 인사와 함께 간단한 대화를 나눈 후 이 그림을 보여드렸다.


 "어머님, 이거 공찬이가 그린 물고기 가족 그림이에요. 어떠세요?"


 "어머~! 공찬이가 자기를 엄청 크고 예쁘게 잘 그렸네요. 다른 가족들은 다 조그마하네요? 호호호. 너무 재밌네요."


 "그렇죠? 어머님, 그런데 그림 속에 물 좀 보세요. 물고기 크기에 비해서 물이 너무 조금이지 않아요?"


 "어머나.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러네요. 물을 왜 이렇게 조금만 그렸을까요?"


 "제가 그림 상담 전문가는 아니라서 이렇다고 말씀드리긴 그렇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공찬이는 좀 외로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혹시 공찬이가 집에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나요?"


 "네, 선생님. 제가 생각하기에는 가족 모두 공찬이를 예뻐라 하고, 늘 최고라고 해주고 엄청 사랑해 주는데.. 물론 제가 은행일이 바빠서 늦게 들어오고 애아빠도 바빠서 늦게 오긴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아이를 엄청 예뻐해 주시거든요."


 "그렇군요.. 제가 생각해도 가족 모두 공찬이를 아주 귀하고 예쁘게 잘 키우려고 노력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는 무조건적인 칭찬과 최고라는 말이 아이에게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조금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집에서 작은 좌절이나 실패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이가 학교에 와서 그런 걸 처음 겪었을 때에는 감정 조절이 잘 안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공찬이가 집에서 받는 무조건적인 칭찬이 지금 공찬이가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공찬이를 굉장히 아껴주시겠지만 공찬이는 부모님이나, 중학생인 누나와 소통이 부족해서 외롭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무리 조부모님께서 예뻐해 주셔도 아이에게는 원가족과의 소통이나 사랑이 더 고플 수 있어요. 1학년이면 아직 어린 나이니까요. 어머님, 아버님께서도 정말 바쁘고 힘들게 직장 일을 하고 계시느라 시간 내기가 참 힘드시겠지만 퇴근하고 오셔서 공찬이와 대화하는 시간을 조금 더 가져보시면 어떨까요? 저는 가족들이 공찬이에게 주고 있는 사랑과, 공찬이가 가족들에게 바라는 사랑 사이에 약간의 갭(gap)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나는 애정결핍이라는 말을 최대한 돌려 말하려 애썼다. 바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님에게 불필요한 죄책감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공찬이 어머님께서는 나의 말에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시며 앞으로 공찬이와의 대화 시간을 더 늘리고,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칭찬이 아니라 실패나 좌절에 대한 경험도 집에서 잘 다룰 수 있게 해 보겠다며 아이를 섬세하게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찰랑!'


 그 순간 나는 무지갯빛 공찬이 물고기가 물이 충분히 들어차있는 어항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어울리며 지느러미와 꼬리를 부드럽게 살랑거리면서 즐겁게 헤엄치는 모습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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