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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Feb 18. 2024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아이

거짓말을 바로 잡아줄 어른이 필요할 때

 "얘들아, 쉬는 시간에 블록을 가지고 놀았으면 수업 시작하기 전에 치워야 하는데 이거 갖고 논 사람 누구니?"


 수업 종이 쳤는데도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블록을 보고 내가 질문하자 아이들은 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아이가 손가락으로 윤오를 가리키며 말했다.


 "선생님, 제가 아까 윤오가 쉬는 시간에 블록 갖고 노는 거 봤어요! 윤오야 맞지?"


 "나 아니거든? 왜 나한테 그래!"


 윤오가 고개를 돌려 갈색 곱슬머리를 휘날리며 따지듯이 말했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나는 보았다. 윤오의 까만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억울하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눈썹을 들어 올리며 다급하게 말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말했다.


 "자, 이번에는 다 같이 정리하고 다음에는 꼭 가지고 논 사람이 정리하기로 해요. 선생님이 쉬는 시간에 잘 살펴보고, 장난감을 정리하지 않는 친구는 앞으로 쉬는 시간에 장난감을 갖고 놀지 못하게 할 거예요."



 키가 작고 마른 체형에 갈색 파마머리를 한 윤오는 푸들 강아지를 연상시키는 귀여운 아이였다. 왠지 모르게 늘 눈썹이 아래로 처져있는 억울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모습마저도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사랑스러움이 있었다. 그런데 윤오는 교실에서 종종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윤오가 혼나기 싫어서 임기응변 식으로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까 그 블록, 윤오가 그런 게 맞아."

 창가에 있는 수조 안에서 거북이가 말했다.

 "나도 그런 것 같다고 생각은 했는데... 내가 확실히 본 게 아니라서 아이들 앞에서 윤오를 혼내기가 좀 그렇더라고. 윤오가 왜 자꾸 거짓말을 하는 걸까?"

 "윤오 엄마한테 한 번 전화해 봐."

 거북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에서 느긋하게 일광욕을 시작했다.


마치 요가를 하는 듯한 거북이


 '혹시 부모님이 너무 엄하게 키우셨나?'


 부모님이 너무 엄하게 지도하셔서 아이가 혼나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짐작했던 나는 학부모 상담일을 기다렸다. 그러나 윤오의 어머니는 학부모 상담일, 당신이 신청하신 날에 학교에 오지 않으셨다. 미리 받아둔 상담 신청서에 적힌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윤오 어머니께 나는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윤오 담임교사입니다. 오늘 3시에 학부모 상담을 신청하셨는데 학교에 오지 않으셔서 전화드렸어요."


 "어머나! 선생님, 그게 오늘이었나요? 죄송해요. 제가 깜빡하고 있었어요. 어머 내 정신 좀 봐. 제가 어제는 윤오 실내화를 빨아놓고 안 챙겨줘서 교무실에 갖다 드렸는데 오늘은 상담을 까먹었네요. 선생님 제가 깜빡깜빡해요, 호호호."


 상담을 하면서 본 윤오 어머니는 전혀 엄격한 느낌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에게 굉장히 허용적이고 둔감한 스타일의 어머니였다. 나는 어머니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머님, 혹시 집에서 윤오가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거짓말이요? 저는 저희 애가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해봐서.. 없는 것 같은데요? 윤오가 학교에서 거짓말을 하나요?"

 "네 어머님, 큰 건 아니고 자잘하게 거짓말을 하는데.. 제가 보기엔 잘못한 일에 대해서 혼나기가 싫어서 임기응변 식으로 하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거짓말을 할 때 윤오의 눈빛이 눈에 띄게 흔들리고, 손도 바들바들 떨려서 제가 보기엔 거짓말하는 게 티가 나요. 어머니께서도 한 번 일주일 동안 윤오에게 그런 모습이 있는지 살펴보시고, 집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저에게 전화를 주시겠어요?"

 "네 선생님. 집에서 한 번 자세히 볼게요."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윤오와 엄마가 기질적으로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윤오는 작은 일에도 겁을 먹고 주변의 상황을 살피는 아주 예민한 아이인데, 어머니는 아주 털털하고 주변 상황을 세세하게 살피지 않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오가 그동안 거짓말을 해도 집에서 모르고 넘어갔을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학교에서도 그 거짓말이 통할 거라고 생각했구나.'




 나는 이번에야말로 윤오가 거짓말하는 습관을 확실히 고쳐주어야 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거짓말이 잘못된 일이라는 걸 윤오가 알아야 그만둘 수 있고, 자신의 행동에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생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 윤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진짜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얘가 거짓말을 하더라고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아이를 보니 눈빛이 흔들리고 손을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종종 보여서 자세히 보니까 그때마다 거짓말을 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럴 때마다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혼을 냈는데 얘가 왜 그런 걸까요? 제 아들이지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머님, 제 생각엔 윤오가 인정욕구가 높은 아이이고,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섬세한 아이인데 자기가 잘못했다는 말을 듣는 것이 두려워서 거짓말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거짓말이 계속 통하니까 그동안 습관적으로 계속 해온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이제 선생님과 엄마한테 들켰으니 아마 엄청 불안할 거예요. 그래도 윤오에게 그런 행동들이 나쁘다는 걸 알려주고,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올바른 방법이라는 걸 알려줘야 할 것 같아요."


 윤오 어머니와 상담을 끝내고 나는 학교에서, 윤오 어머니는 집에서 윤오가 거짓말하는 모습이 보일 때마다 윤오를 붙들고 상담을 했다. 때로는 엄하게 혼내기도 했고, 때로는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논리적으로 왜 거짓말이 나쁜 행동인지, 그 행동으로 인해 윤오가 친구들과 가족들, 선생님에게 얼마나 신뢰를 잃을 수 있는지 설명해주기도 했다.



 아이 하나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나는 점점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윤오를 보면서 그 말의 힘의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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