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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Feb 22. 2024

공개수업날 바닥을 기어다닌 아이

ADHD를 인정하기까지 걸린 2년의 시간

 "선생님, 병호가 또 책상을 가위로 자르고 있어요!"


 수업을 하던 중 병호의 짝꿍인 희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판서를 하다가 뒤를 돌아본 나는 병호가 가위의 양날을 벌려 책상에 칼집을 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병호야, 그 책상은 내년에 후배들한테 물려줘서 써야 하는데 그렇게 가위로 훼손하면 안 되는 거야. 병호가 책상을 망가뜨리면 후배들은 망가진 책상을 써야 하잖니?"


 병호는 가위질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고는 해맑은 얼굴로 "네 선생님. 죄송해요." 하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렇게 대답한 병호는 10분 뒤에 또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을 거란 걸. 병호와 함께하는 1년은 이벤트의 연속이었다.  


 병호를 만난 첫 부터 나는 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걸 단박에 눈치챌 수 있었다. 1학년 입학식 날, 설레는 마음으로 선생님 앞에 처음으로 줄을 서서 자기보다 큰 가방을 뒤로 메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선생님을 보고 있는 아이들 속에서 병호는 자기가 들고 있는 신발주머니를 계속 왼발로 툭, 툭, 차고 있었다.


 "친구야, 신발주머니를 계속 발로 차면 안 되지요? 바른 자세로 교장 선생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같이 들어볼까?"


 가까이 다가가 병호에게 말을 하고 나서 다시 아이들 앞으로 돌아왔을 때, 병호는 잠시 행동을 멈추는 듯싶더니 이내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학급으로 들어와 아이들에게 선생님 소개를 하고, 안내 사항을 이야기해 줄 때에도 병호는 애꿎은 책상을 흔들거리다, 책상 속에 손을 넣어 뒤적거리다, 의자를 뒤로 젖혔다가를 반복하며 가만히 있질 않았다.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몰라서 갑자기 뒤에서 와락 껴안거나, 몸을 부딪쳐 싸움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병호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상황을 말씀드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머니, 혹시 유치원 때에도 병호가 비슷한 행동을 했었나요?"


 "네, 선생님.. 이러다 친구들이 병호를 다 싫어하게 될까 봐 걱정이에요."


 "어머니, 제가 보기엔 병호가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혹시 병원에서 검사받아보신 적이 있는지요?"


 "아니요 선생님. 검사를 받아본 적은 없어요. 사실 진짜 그렇다고 할까 봐 너무 무서워서 안 가고 싶어요."


  "그러셨군요. 어머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저는 병호를 보면서 저 아이가 일부러 저렇게 행동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행동 조절이 안 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자신의 행동이 조절이 안되면 아이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서 저는 한 번 병원에 가보시고 아이를 빨리 적절한 방법으로 도와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어머님 생각은 어떠세요?"


 "선생님, 저 진짜 선생님이 하라고 하는 대로 다 할게요. 근데 진짜 병원은 못 가겠어요. 흑흑..."



 병호 엄마는 상담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병호 엄마에게 그러면 학교에 '위(WE) 센터'라는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으니 병호가 상담이라도 받아보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병호 엄마는 그런 건 기록이 남는 거 아니냐며, 자기는 그냥 담임선생님과 지속적으로 상담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휴우..."

 

상담전화를 끊고 숨을 크게 내쉬며 고민에 빠져 있던 나는 교실 창가에 있는 거북이에게 다가갔다. 물속에 있던 거북이가 목을 길게 빼서 얼굴만 물 밖으로 빼꼼히 내밀었다.


 "고생했어. 병호 엄마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돼서 그래. 시간이 지나면 인정하게 될 거야. 쉽진 않겠지만"


 눈을 천천히 꿈뻑이며 거북이가 말했다.


 "나는 진짜 병호를 생각해서 도와주려는 건데.. 두려워하는 병호 엄마의 마음도 알지만 뭐가 진짜 병호를 생각하는 일인지 어머님이 빨리 판단하셔야 할 텐데 걱정이야."

 

 거북이 사료를 한 스푼 떠서 수조에 넣어주며 내가 한숨을 쉬자, 입을 크게 벌려 와앙 하고 사료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거북이가 중얼거렸다.


 "자기 자식의 허물을 똑바로 마주하고 인정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






 5월 공개수업 날, 1학년 교실답게 학부모님들은 구름 떼처럼 교실로 들어오셨다. 내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오셔서 교실은 북새통을 이뤘다. 원활하게 수업을 진행하던 중, 갑자기 너무 신이 난 병호가 의자 밑으로 내려가 교실 바닥을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교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병호에게 쏠렸다.


 "병호야, 수업시간에는 자리에 앉아야지? 우리 다음 활동도 엄청 재밌는 거 할 텐데 자리에 앉지 않으면 할 수가 없거든."


 당황했지만 병호를 차분히 타이르던 나는 학교를 순회하다가 우리 반 앞에서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입을 떡 벌리고 계신 교감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병호는 그 뒤에도 5분 정도를 더 기어 다녔고, 병호 엄마는 어쩔 줄 모르며 아이에게 가서 빨리 앉으라고 속삭이듯 화를 냈다. 병호는 자리에 앉아서도 계속 사부작거렸다. 역시 병호는 일관성이 있다. 기어 다니는 것 빼고는 모든 행동이 평소와 똑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많은 격려와 응원 문자를 받았다. 선생님이 이렇게 힘드신지 몰랐다며, 힘내시라는 학부모님들의 응원 문자였다. 교감 선생님께서도 내 손을 꼭 잡고 선생님 반에 그렇게 힘든 아이가 있는 줄은 몰랐다며 고생이 많다고 다독여주셨다. 하지만 나는 병호가 그런 행동을 보여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공개수업날 병호가 갑자기 바른 태도로 수업을 들었다면 병호 엄마는 병호가 이  정도까지인 줄을 몰랐을 테니까. 그냥 전해 듣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병호 엄마는 나의 권유로 6월부터 병호를 데리고 상담센터에 다니기 시작했다. 센터에서 검사를 받고, 상담을 받으면서 병호는 조금 나아지는 듯했으나 완전히 나아지진 않았다. 1년이 지나 병호가 2학년이 되고, 병호의 담임 선생님을 맡은 선배 선생님은 나에게 찾아와 눈물을 글썽거리며 너무 힘들어서 병가를 쓰고 싶다고 하셨다. 이 아이는 ADHD가 확실하고, 아이들과 다툼도 잦은데 엄마가 그걸 인정하지 않으니 매일매일이 전쟁 같다고. 2학년이 된 병호는 상담을 다니지 않고 있었다. 학교 돌봄 교실에서도 사건을 자주 일으켜 쫓겨나고,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학교 폭력 관련 민원도 점점 자주 들어왔다.


 결국 2학년 말에 병호는 병원에 가서 ADHD 진단을 받았다. 병호에게 필요한 약을 처방받고, 약을 복용한 후 교실에서 병호는 눈에 띄게 차분해졌다고 한다. 병호 엄마가 병호의 상황을 인정하기까지 거의 2년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나는 비록 시간이 걸렸지만 병호의 엄마가 정말 자식을 위한 방법을 깨닫고 아이를 치료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호는 부산스럽지만 해맑은 미소가 귀여운 참 사랑스러운 아이다. 나는 이제 전근을 하여 병호와 다른 학교에 근무하고 있지만, 문득문득 병호의 그 미소가 생각난다. 부디 병호가 그 미소를 친구들과 나누며, 함께 어울리며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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