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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Feb 29. 2024

자꾸 말을 전해서 일을 크게 만드는 아이

친구에게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부른 일

 초등학교에서 고학년의 생활지도는 무척이나 힘들다. 남자아이들의 경우에는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친구를 때리는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여자아이들의 경우에는 뒤에서 속닥속닥 친구의 뒷담화를 하거나 은근히 따돌리는 행동 때문에 미세한 감정의 파동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정서적 문제가 많다. 전자에 비해 후자는 상담도 오래 걸리고, 비슷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내가 느끼기에 고학년의 생활지도는 여자아이들이 더 어렵다.


 "선생님, 저 오늘 선생님께 상담 신청하고 싶어요."


 우리 반 아영이가 상담을 신청했다. 지난번에는 아영이와 친한 수진이가 상담을 신청했는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아영이가 또 상담을 신청한 것이다.


 "그래, 아영아. 선생님과 연구실로 가자."


 쉬는 시간에 아영이를 데리고 연구실로 들어가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저.. 민지가 그러는데 수진이가 제 뒷담화를 했대요."


 "민지한테 들었다고? 그럼 수진이가 정말 너에 대한 뒷담화를 했는지 수진이한테 직접 확인은 했어?"


 "아니요. 속상해서 어제 수진이 카톡을 차단해서 연락을 못했어요."


 "민지에게 들은 이야기만 믿고 바로 수진이의 카톡을 차단한 거야?"


 "네..."


 .. 이번에도 또 민지다. 민지는 지난주에도 다른 친구에게 말을 전해서 한바탕 여자 아이들을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게 했다. 말을 전하는 내용은 비슷하다. '이거 비밀인데.. OO이가 너 싫어한대.' 또는 '내가 들었는데 OO이가 너 재수 없다고 했다던데?' 이렇게 친구들에게 부정적인 이야기를 전하면서 여자 아이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이다.


 아영이를 교실로 들여보내고 이번에는 수진이를 연구실로 데려왔다.


 "수진아, 네가 아영이에 대해 뒷담화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이니?"


 "네? 선생님, 아니에요. 저는 어제 제가 팔을 다쳐서 울었을 때 아영이가 위로해주지 않아서 서운한 마음은 있었지만 뒷담화를 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민지한테 아영이가 절 위로해주지 않아서 속상하다고만 했어요."


 수진이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랬구나. 뭔가 오해가 있었나 보다. 그럼 이따가 아영이랑 민지랑 같이 이야기를 나눠볼래? 너희들끼리 하기 어려우면 선생님이 같이 있어주고. 어떤 게 더 좋겠니?"


 "저희끼리 말하면 또 오해가 생길 것 같아서 선생님께서 같이 있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오늘 수업 후에 잠깐 남아서 이야기하고 가자."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도대체 민지는 왜 자꾸 친구들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전하는 것일까. 가슴이 답답했다. 영어전담 수업시간에 아이들을 영어실로 보낸 후, 업무를 하다가 창가로 가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민지는 왜 친구들을 자꾸 이간질하는 걸까?"


 "그건 민지가 친구를 독점하고 싶어서 그래."


 수조 속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던 거북이가 말했다.


 "친구를 독점하고 싶어 한다고? 민지는 친한 친구들이 많은데 왜 자꾸 친구들을 독점하려고 하는지 난 이해가 안 돼."


 민지는 평소에 우리 반에서 친한 여자 친구들과 함께 다섯 명이서 늘 같이 어울려 다니며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를 독점하려 한다는 거북이의 말이 무슨 말인지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민지 엄마가 엄청 엄격하셔서 학교 끝난 후에 민지는 친구들과 놀 수가 없거든. 그래서 민지는 하교 후에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놀면서 점점 자신이 소외될까 봐 엄청 불안해하고 있어. 그 불안이 결국 친구들을 이간질하는 말로 나오는 거지."


 "불안이 밖으로 잘못 표출된 거구나..."



  나는 방과 후 세 아이와 함께 교실에 남아 대화를 통해 아영이와 수진이의 오해를 풀어주고 난 뒤, 민지에게 잠깐만 선생님과 더 이야기하고 가라고 붙잡았다.


 "민지야, 지난주에도 민지가 말을 전해서 친구들끼리 오해가 생겨 눈물을 흘리고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했었는데 이번에 또 민지가 말을 전했다는 말을 듣고 선생님은 깜짝 놀랐어. 왜 그랬니?"


 "음... 저는 수진이가 아영이 때문에 속상하다고 한 얘기가 수진이가 아영이를 싫어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전혀 다른 이야기지. 네가 전한 말 때문에 아영이와 수진이가 서로 오해를 하고 속상하게 되었잖아. 친구를 속상하게 하는 말을 네가 짐작해서 전하는 건 잘못된 일이야. 너에게도 친구가 그러면 속상하지 않겠니?"


 "네... 죄송합니다."


 "혹시 방과 후에 민지가 친구들과 많이 어울릴 수가 없어서 다른 친구들이 민지만 빼고 놀면서 더 친해질까 봐 불안한 마음이 있니?"


 순간 민지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어.. 선생님 어떻게 아셨어요? 사실 저는 엄마가 학교 끝나면 바로 학원에 갔다가 집으로 곧장 오라고 하셔서 친구들과 놀 수가 없는데.. 친구들은 매일 모여서 노니까 제가 왕따가 될까 봐 너무 불안해요."


 "그랬구나. 그런데 선생님이 본 민지의 친구들은 그렇게 쉽게 우정을 저버릴 아이들이 아니야. 진정한 친구라면 서로 믿어주는 게 가장 중요한 거 아닐까? 선생님이 봤을 때 민지가 너무 불안하니까 자꾸 다른 친구들에게 나쁜 이야기를 전해서 친구들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그 과정에서 친구랑 가까워지려고 하는 것 같아. 그런데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결국 친구들은 계속해서 싫은 얘기만 전하는 민지를 좋아하지 않게 될 거야. 민지는 어떻게 생각하니?"


 "저는 제가 왜 그러는지 몰랐는데...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 민지가 왜 그랬는지 이제 알았으니 친구들에게 부정적인 이야기를 전하지 않는 거야, 알았지? 그리고 선생님이 민지 어머니와 상담하면서 민지가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시간도 조금만 달라고 말씀드릴게. 그럼 어때?"


 "선생님, 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민지를 보내고 난 후, 민지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서 그간의 상황을 말씀드리고 고학년의 경우 학교에서 또래 집단과 잘 지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민지가 불안을 많이 느끼고 그것이 잘못된 방법으로 표출이 되고 있음을 알려드렸다. 민지의 어머니께서는 깜짝 놀라시며 민지를 너무 엄하게 통제해 온 지난날을 반성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날 이후 민지는 일주일에 1~2회 정도 방과 후에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전처럼 친구들에게 부정적인 말을 전하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활짝 웃는 민지의 미소는 전보다 더 예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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