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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Feb 25. 2024

우리 반 개그맨 정우의 고민

아이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아이도 걱정이 있다.

 "너 정우 좋아하지? 다 알아. 어? 야, 저기 정우 지나간다!"

 급식소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옆 반 여자아이 둘이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한 곳을 가리키며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뒤에서 다 먹은 식판을 들고 가던 나는 의도치 않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우리 반 정우가 있었다.


 "선생님~! 저 오늘 돈가스 다 먹고 이만큼 더 받았어요! 완전 기분 좋아요, 으헤헤!"


 정우는 흰 이를 드러내 보이며 환한 얼굴로 웃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긴 팔다리를 가진 마른 체형의 정우는 가늘고 긴 눈과 오똑한 코를 가진, 매력이 넘치는 아이였다. 심각한 분위기에서도 정우가 한 마디만 하면 주변 사람들은 긴장을 풀고 와하하 웃음이 터졌다. 정우는 주위를 밝게 하는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운동도 잘해서 남녀를 불문하고 체육시간에 정우가 달리는 모습을 보면 다들 우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정우의 담임을 맡고 있는 나도 아이를 보면서 '이 아이는 어쩜 이렇게 해맑고 사랑스러울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정우를 여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반 여자 아이들도 서로 소곤소곤하면서 정우를 힐끔거리며 어떻게든 가까이 다가가 같이 놀고 싶어 했고, 다른 반 여자 아이들도 쉬는 시간마다 우리 반 뒷문 앞에 서서 괜히 정우에게 장난을 걸고 도망가고는 했다. 그러다 내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얘들아, 너희 정우 좋아하니? 왜 이렇게 자주 와~ 우리 정우 피곤하겠다!" 하고 말하면 여자 아이들은 손사래를 치면서 "아 진짜 아니에요 선생님~ 저희 쟤 안 좋아해요!! 진짜예요!" 하고 말하면서 짐짓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정우는 의기양양하게 "아~ 인기가 많아서 피곤하네. 선생님, 저 너무 피곤해요. 야 야, 그만 좀 좋아해. 으하하" 하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마치 청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풋풋함이 교실에 가득했다.


 수업 시간에도 정우는 우리 반 분위기를 늘 행복하게 이끌어주었다. 고학년은 매일 6교시까지 수업을 하는데 보통 4교시 즈음이 되면 아이들은 자세가 흐트러지고 피곤해하기 마련이다. 그때, 정우는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와, 벌써 4교시야? 선생님,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 대박!"

 그러면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서 "맞아, 맞아! ", "이게 다 선생님이 수업을 재미있게 해 주신 덕분이야." 하면서 다 같이 즐거운 분위기가 된다. 나는 그때마다 정우와 아이들에게 너무 고마워서 마음이 밝은 노란색으로 물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정우가 어느 날, 쉬는 시간에 내 자리 주변에서 계속 서성거리며 실없이 왔다 갔다 했다. 업무를 하다가 정우의 실루엣이 옆에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정우야, 선생님한테 무슨 할 말이 있니?" 하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정우는 "음.. 아니에요 선생님." 하더니 친구들 쪽으로 돌아갔다. 나는 걱정이 되어 정우를 더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체육 시간을 앞두고 평소 같았으면 벌써 복도 밖으로 뛰어나가 체육관으로 뛰어갔을 정우가 교실에 있었다. 정우와 친한 친구들이 "정우야, 빨리 와!" 하고 부르자 정우는 "어, 나 금방 갈게. 먼저 가있어~" 하고 말했다. 아이들이 우르르 나간 뒤, 정우는 쭈뼛쭈뼛 내 앞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제가.. 어제 잘못한 것 같아요."

 어렵게 입을 연 정우에게 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다가가

 "정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일이 있었니?" 하고 물어보았다.

 "어제 제가.. 어.. 아빠랑 잤거든요."

 "응,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아빠랑 같이 잔 게 왜 잘못한 거야?"

 "엄마랑 아빠가 싸워서 한 달째 말을 안 하고 있는데 어제 제가 아빠랑 같이 잤더니 오늘 아침에 엄마가 저에게 말을 안 걸었어요.. 엄마가 저 때문에 화났나 봐요."


 축 처진 어깨로 잔뜩 주눅이 들어 말하는 정우의 모습에 내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이가 한 달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정우야,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엄마도 너 때문에 화가 나신게 아니야. 중간에서 네가 부모님 눈치를 보면서 정말 힘들었겠다.. 아빠의 기분도 살피고, 엄마의 기분도 살피면서 중간에서 열심히 노력한 정우가 선생님은 정말 대단한 걸? 그건 어른도 하기 힘든 일이거든. 절대로 네 탓이라고 생각하지 마. 넌 최선을 다했고 잘하고 있어."


 정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가 말하자 정우는 부끄러웠는지 갑자기 다시 장난기 넘치는 정우로 돌아와 "선생님! 저 그럼 체육 다녀올게요, 헤헤!" 하고 말하더니 쏜살같이 교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정우가 나가고 나서도 한참을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냉전 중인 부모님 속에서 한 달 동안 눈치를 보며 살얼음판을 걸었을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면 눈물이 고였다.


 "정우 부모님은 이제 곧 화해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정우 엄마도 지금 정우에게 미안해하고 있어."


 창가의 수조 속에서 거북이가 입을 뻐끔거리며 말했다.


 "그래.. 얼른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정우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생각하면 내 마음이 너무 아파."


 "너도 알듯이 정우 엄마도 정우처럼 좋은 사람이잖아."


 "응.. 그렇지."


 정우 엄마는 내가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면 '선생님께서 신경 써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라고 답장을 하시는 분이었다. 잠깐 속이 상해 아이에게 아침에 말을 못 했을 뿐, 저녁이 되면 다시 정우에게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시겠지. 나는 정우 엄마한테 전화를 걸까, 하고 생각하다가 이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너무 민감한 가정의 이야기를 부모님께 전했을 때 부모님 입장에서는 부끄럽고 당황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전화 때문에 혹여나 부모님이 선생님께 고민을 이야기한 정우를 조금이라도 탓하는 말을 하게 되면 정우는 더 이상 나에게 고민을 말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다음 날 정우는 다시 밝은 얼굴로 등교를 했다. 그리고 나에게 와서 말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 엄청 좋아하는 거 아시죠? 히히"

 

 눈부신 여름 햇살이 맑게 웃는 정우의 얼굴에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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