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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Mar 03. 2024

교실에선 모범생, 집에서는 까칠한 아이

예민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

 "선생님, 우리 예진이 학교생활 잘하나요?"


 4월 초 학부모 상담으로 학교에 오신 예진이 어머니가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그럼요, 어머니. 예진이는 수업 시간에 집중도 잘하고, 숙제도 잘해오고,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서 뭐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이전 학년에서도 모범생이라는 말을 꽤나 들었을 것 같은데요?"


 예진이는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의 아이였기에 나는 솔직하게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예진이 어머니는 안도와 걱정이 섞인 한숨을 작게 내쉬며 말했다.


 "휴.. 학교에서는 잘하고 있군요. 그런데 집에서는 안 그래요. 학기 초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울고, 짜증 내고, 예민함이 폭발해서 힘들다고 난리를 쳐요. 3월 초에는 작년에 친한 친구들과 같은 반이 안 되었다고 불안해하면서 학교에 가기 싫다는 얘기를 해서 제가 정말 마음을 졸였거든요."


 예진이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깜짝 놀랐다. 학교에서 보는 예진이는 전혀 그런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진이는 언제나 바른 자세로 앉아 책상과 사물함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 말씀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열심히 집중을 하고 있었고,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과 조용히 담소를 나누곤 했다. 항상 신중하고 차분한 그 아이의 주변에는 부드럽고 산뜻한 공기가 흐르는 듯했다.



 "예진이가 집에서 그렇게 힘들어했다니 깜짝 놀랐어요. 학교에서는 아마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 예진이가 애를 쓰고 있었나 봐요. 그러다가 집에 가면 긴장이 풀리니까 가장 편한 엄마에게 아마 더 응석을 부리고 짜증을 냈던 것 같네요. 어머님께서 걱정도 되고 힘이 드셨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예진이가 정말 학교에 적응을 잘해서 잘 지내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혹시 또 걱정되는 상황이 있으면 저에게 연락 주세요."


 나는 예진이 엄마의 감정을 공감해 주고, 예진이 엄마가 안심할 수 있도록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의 마지막 말이 예진이 엄마에게 구원처럼 느껴졌던 것일까? 그날 이후 예진이 엄마는 너무 과하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예진이가 오늘 집에서 짜증을 많이 냈거든요? 사실 요즘 아이가 생리를 시작했어요. 처음이라 아이가 많이 당황한 것 같아요. 학교에서는 어떻게 처리하냐며 너무 불안해하는데 제가 아무리 가르쳐줘도 아이가 짜증을 너무 많이 내서 받아주기가 너무 힘드네요. 선생님께서 잘 좀 살펴봐주세요. (중략)'


 '선생님, 오늘 예진이가 창렬이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고 해요. 선생님께서 중재를 해주셨다고 하는데 그래도 아이가 집에 와서 너무 속상해하고 학교 가기 싫다고 울고 해서 저도 많이 속상하네요. 요즘 교권이 많이 떨어져서 선생님이 지도하셔도 애가 안 듣는 경우도 많다고 하던데, 그 부분은 이해합니다. 제가 창렬이 엄마한테 전화를 하고 싶은데 전화번호를 주실 수 있나요? (중략)'


 예진이 엄마의 문자는 항상 내용이 길어서 MMS 메시지로 왔고, 문자가 오는 시간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사 구분이 없었다. 예진이 엄마의 예민함이 문자 메시지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이의 투정을 받아주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 감정을 교사인 나에게 쏟아내는 것 같았다.






 "휴.. 아이가 집에서 너무 예민하다고 걱정하시더니 본인이 그러신 줄은 모르시나 봐."


 아이들이 하교한 교실에서 창가로 다가가 수조 안의 거북이에게 말을 걸었다. 입을 뻐끔거리며 물 위로 공기 방울을 만들어내던 거북이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예진이 엄마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래. 세 아이를 키우면서 일도 그만두고 애들 키우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는데, 가장 기대하고 있는 큰 딸이 사춘기가 와서 집에서 만날 감정을 폭발시키니 자기도 너무 힘든 거지. 그래도 그걸 너한테 풀면 안 되는데... 네가 고생이 많네."


 거북이의 말에 위로를 받은 나는 거북이 사료와, 거북이가 좋아하는 감마루스(작은 새우를 말린 것)까지 듬뿍 떠서 수조에 넣어주었다.


 

 행복하게 먹이를 먹는 거북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먼저 예진이를 상담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날, 연구실에 예진이를 불러 잠깐 선생님이 예진이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예진아, 어제 하교할 때 뒷문으로 나가다가 빨리 가려는 창렬이와 어깨를 부딪혀서 말다툼을 했었잖아. 그때, 선생님이 창렬이에게 너무 서두르다가 다칠 수 있으니까 천천히 하라고 얘기하고 예진이 어깨에 부딪힌 거에 대해서 사과하라고 해서 창렬이가 사과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혹시 그 후에도 무슨 일이 있었니? 예진이 어머니께서 어제 저녁에 선생님한테 장문의 문자를 하셔서 말이야."


 "아.. 아..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때 창렬이가 사과를 너무 대충 해서 기분이 나빴어요."


 예진이가 당황하며 말했다. 예진이의 흔들리는 동공을 봤을 때 아이는 엄마가 선생님께 밤늦게 문자를 한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랬구나. 그러면 그때 창렬이나 선생님한테 이야기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창렬이는 단순한 아이라서 아마 예진이가 기분이 안 풀렸다면 다시 사과해 줄 수 있었을 거고, 선생님도 창렬이에게 다시 진심으로 사과해 달라고 했을 거야.


 그런데 예진이가 학교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에 가서 어머니께는 학교가 너무 힘들다고, 친구도 사과를 대충 하고 선생님도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를 하면 어머니께서는 지금처럼 상황을 오해하시지 않을까? 선생님은 매일 우리 반 친구들을 열심히 상담하고 생활지도를 꼼꼼히 하고 있는데 어제 예진이 어머니께서는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아서 문자를 보고 속상했거든.


 예진이 어머니도 집에서 아이들을 열심히 키우려고 노력하고 계신데 예진이가 학교에서 너무 힘들다고 계속 이야기하니 많이 걱정도 되고 속상하셨을 거야. 그래서 선생님은 예진이가 학교에서 속상한 감정을 집에다 풀지 말고, 학교에서 다 정리하고 갈 수 있도록 선생님과 친구들과 이야기해서 해결을 했으면 좋겠는데... 예진이 생각은 어떠니?"


 예진이는 반성을 하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선생님.. 제가 죄송해요. 선생님이 학교에서 상담을 열심히 해주시고 노력해 주시는 거 너무 잘 아는데.. 앞으로는 학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가도록 할게요."


 역시 예진이는 모범생이다. 아이의 눈빛에는 자신이 집에서 한 말과 행동으로 오해를 받은 선생님께 죄송해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래. 예진이가 그렇게 말해주니 선생님이 고맙네. 선생님도 앞으로 예진이가 더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선생님은 언제나 네 편이야."


 나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연구실을 나왔다. 그리고 아이들이 하교한 후, 예진이 엄마의 연락을 기다렸다. 분명 예진이는 집에 가면 어머니께 이야기를 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범생인 예진이는 자신의 엄마가 자신의 일 때문에 밤늦게 선생님께 장문의 문자를 했다는 사실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했을 거고, 엄마한테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얘기했을 거다. 그리고 자식을 끔찍이 생각하는 예진이 엄마에게는 나의 말보다 화가 잔뜩 난 딸의 말이 더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띠리리리리 - "


 나의 예상대로 예진이 엄마는 오후 4시쯤 전화를 걸어왔다.


 "어머~ 선생님. 제가 어제는 잠깐 정신이 나갔나 봐요. 원래 제가 그렇게 밤늦게 문자하고 그런 사람이 아닌데.. 오늘 예진이가 와서 저한테 엄청 화를 내더라고요. 선생님한테 왜 저녁에 문자를 했냐면서... 그리고 오늘 선생님께서 예진이의 힘든 얘기도 들어주시고, 상담도 잘해주셨다고 들었어요. 저도 아이에게 들어서 선생님이 평소에 열심히 해주시는 건 알고 있었는데... 아이가 너무 짜증을 내니 이성을 잃고 문자를 했나 봐요."


 겸연쩍은 목소리로 예진이 엄마가 말을 쏟아냈다.


 "네 어머님, 오해가 풀리셨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그런데 저 어제 어머님께서 밤늦게 보내신 문자를 보고 정말 서운했어요. 저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열심히 지도하고 있는데 어머님께서는 교권이 떨어졌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직접 해결을 하겠다고 하시니 마치 저를 믿지 못하시고 제가 아무 힘없이 아이들을 관리하지 못하는 교사라고 생각하시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저는 정말 아이들을 사랑해서 교직에 들어온 사람이에요."


 내가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자, 예진이 엄마는 다급하게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에요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제가 어제 너무 흥분하고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정말 죄송합니다."


 "네, 어머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좀 놓이네요. 저는 앞으로도 예진이와 우리 반 친구들이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열심히 지도할 테니 어머니께서도 저를 믿고 맡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도 퇴근하고 나면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엄마인지라 연락은 오늘처럼 근무시간에만 주시길 부탁드릴게요."


 "네, 네. 선생님 당연하지요. 제가 정말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그 후, 예진이 엄마는 학기가 끝날 때까지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연락을 하지 않았다. 예진이도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면 바로 나에게 와서 상담을 하고, 친구들과 문제를 해결하고 집으로 갔다.

 종업식 날,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 교실을 정리하던 나에게 예진이가 찾아왔다.


 "선생님, 1년 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저.. 이거 드리고 싶어서 왔어요."


 예진이 손에는 예진이를 닮은 예쁜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예진아! 너무 감동이다.. 정말 고마워! 선생님도 예진이가 있어서 한 해가 참 행복했어."


 마주 보며 웃는 나와 예진이 사이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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