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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많이 한 하루 끝의 후회

자책과 반성

by 오후의 햇살

오늘은 부장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2학기가 되어 교장선생님이 바뀌게 되면서 8월 말부터 연이어 3번의 회식 날짜가 잡혔다. 가시는 교장선생님 송별회, 동학년 기간제선생님 송별회, 오시는 교장선생님 환영회까지..


일도 많은 학기 초인데 회식까지 많아서 피곤했지만 그 자리에서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분위기를 띄우려고 애썼다.


그런데 오늘, 새로 부임하신 교장선생님과 부장회식을 하면서 나는 우연히 교장선생님과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되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나의 바로 맞은편에 앉으셔서 계속 말씀하시는데 나는 어른에 예를 갖춰야 한다는 마음과, 어떻게든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는 마음에 교장선생님께 열심히 리액션도 해드리고 말도 많이 걸어드리며 애쓰고 고군분투했다.


불과 주말에 선배언니로부터 너무 애쓰며 살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는데 나도 모르게 또..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오늘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요소가 있었다.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걸 너무 좋아하는 분이시라 리액션을 잘해드리면 기분이 좋아져서 몇 십분 동안 이야기를 늘어놓는 분이셨던 것이다.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나 지쳐가기 시작했다. 결국 할 말을 딱 잘라 잘 말씀하시는 나이 많은 부장님께서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잠시 끊고 말씀하셨다.


"교장선생님, 죄송한데 저희가 내일 체험학습을 가야 해서요."


그러자 교장선생님께서는

"어머 내가 눈치도 없이 너무 길게 말했네요."

하고 말씀하시고는, 오늘 대화가 너무 즐거웠다고 하시며 자리를 마무리하셨다.



자리를 나오며 운전대를 잡는 순간 나는 내가 지나친 책임감과 리액션으로 여러 부장님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나 스스로도 에너지를 다 쓰고 피곤했는데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다수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오직 교장선생님께만 만족감을 드린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괴로워졌다.


지친 몸을 이끌고 이웃 언니에게 맡겼던 아들을 데리고 집에 돌아와 소파에 털썩 앉아 자책하고 있는데 친하게 지내는 두 부장님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 마음을 알아주시는 부장님들의 마음에 너무 감동이고, 감사하고, 죄송했다...



타인을 위해 한 일이 오롯이 타인을 위한 길이 아닐 수도 있음을 언제나 명심해야 하는데 나는 왜 이리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침묵을 참지 못하고 너무 눈치를 보며 나를 희생해 가며 분위기를 띄우려다 결국은 내 에너지를 다 소비하고 이렇게 자책하고 있다.


나는 언제쯤 더 성장하게 될까.

타인을 배려하며 나 스스로도 배려해야 하는데 왜 그게 잘 안될까...


너무나 죄송한 마음에 내일 체험학습을 가시는 부장님께도 사과의 메시지를 드렸다.



많이 피곤하셨을 텐데도 오히려 너그럽게 품어주시는 부장님의 카톡에 더 죄송하고 감사해졌다.




말을 많이 한 하루의 끝은 늘 생각이 깊어진다.


내가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타인이 나 때문에 상처받진 않았을까,

남을 배려하려다가 내가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구나, 등등..


반성하고 절제하며 인내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도록 오늘 일을 기록하고 나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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