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8시 20분쯤, 출근해서 교실 문을 드르륵 열고 "얘들아 안녕~?" 하고 인사한 뒤 의자에 앉으려고 하는데 평소와 다르게 붉은 물체가 의자 위에 올려져 있었다.
'이게 뭐지...?'
하고 당황해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데 아이들 몇 명이 나에게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그거, 아까 5반 선생님이 오셔서 놓고 가셨어요!"
5반 선생님께서는 우리 학년 최고 선배님이자, 내가 힘들 때마다 사주와 타로카드를 봐주시는 능력자 선생님이셨다.
선생님께서 나에게 왜 이렇게 비싼 홍삼 선물을 주셨을까? 너무 감사하고, 놀랍고, 감동이었다. 얼른 컴퓨터를 켜서 교직원 메신저를 켜보니 선생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아뿔싸!
평소에 선생님께 감사한 것들이 많아서 지난 주말에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약소하지만 멀티 비타민 세트를 보내드렸었는데 선생님께서는 그보다 훨씬 비싸고 귀한 홍삼스틱 한 달 치를 선물해 주신 것이었다.
마음이 뭉클하고 따뜻해지면서 '아, 역시 선배님은 나보다 훨씬 품이 넓은 바다 같은 분이구나.. 작은 친절도 허투루 받지 않으시고 배로 돌려주시는 이런 분과 동학년을 할 수 있다니 너무 감사하고 영광이다..' 하는 생각이 물밀듯 밀려왔다.
감사한 마음을 듬뿍 담아 선생님께 카톡으로 인증샷과 함께 감사 메시지를 보내드렸다.
담백한 메시지 안에 나를 향한 칭찬과 응원을 꾹 눌러 담아주시는 선생님의 답장에서 겸손과 사랑이 느껴졌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친절이라니...
가난했던 마음이 갑자기 부자가 된 듯 벅차올랐다.
어젯밤 이런저런 생각에 눈물을 흘리던 내 영혼이 통째로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오후에는 아이들 수업이 끝나고 나서 잠시 연구실에 모인 선생님들 몇 분과 함께 공깃돌 알까기 대회를 열었다. 승부욕이 넘치고 게임에 진심인 2반 선생님이 추석맞이 놀이 한 판을 하자고 한 것이다.
우리는 흔쾌히 동의했고, 4반 선생님이 심판을 보기로 했다. 1반인 나, 2반인 언니, 7반 막내 선생님, 그리고 과학 전담 선생님 이렇게 넷이서 연구실 가운데에 있는 탁자 끝에 공깃돌을 하나씩 놓고 반대 편으로 공깃돌을 튕겨서 탁자 밑으로 떨어뜨리지 않고 가장 멀리 튕긴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우리는 손목을 돌리며 사뭇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공깃돌을 튕겼다. 3판을 해서 꼴찌를 한 사람이 우승한 사람에게 추석 선물로 스타벅스 커피 쿠폰을 선물하기로 했다.
결과는 막내인 7반 선생님의 우승!
.. 그리고 꼴찌는 나였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흔쾌히 막내 선생님께 커피쿠폰을 보냈다. 여자친구와 함께 마시라고 통 크게 두 잔을 보내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캬.. 답장 센스 보소!
이 영광을 부장님께 돌린다는 메시지 하나에 마음이 풍족해진다.
즐거운 마음으로 남은 근무를 마치고 퇴근 무렵이 되어 학교를 나오는데 '지잉-' 하고 카톡이 울렸다. 누구일까, 하고 카톡을 확인하니 아까 심판을 봐주신 4반 언니 선생님이다.
그저께 언니가 학교폭력 관련 학부모상담을 하고 힘들어 보여서 아이들과 드시라고 소고기 한 근을 선물로 보내드렸는데 며칠도 안 돼서 비싼 아이스크림 쿠폰을 나에게 선물해 주신 것이다.
세상에...
'모두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내 방황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고 계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루 말할 수 없이 벅차고 감사했다. 어떻게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끼리 모였을까..
하루 동안에 동학년 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 느끼며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