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반에는 천재성을 가진 남학생이 있다. 지금까지 14년간 교직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똑똑한 아이들을 봐왔지만 이 정도로 똑똑하고, 인품이 바르고, 수준급 바이올린 연주에, 체육까지 잘하는 모든 것이 뛰어난 아이는 정말 드물었다. 지금부터 이 아이를 성우(가명)라고 지칭하여 글을 써보고자 한다.
성우는 개학 첫날부터 눈에 띄는 아이였다. 선생님이 어떤 질문을 해도 바르게 앉아 손을 들고 정답을 이야기하고, 눈빛이 초롱초롱하여 배움의 의지가 얼굴에 만연했다.
초반에는 인정욕구가 너무 커서 아이들 앞에서 잘난 척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으나, 그런 성우가 혹시나 아이들에게 소외당할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에 성우를 연구실로 불러 개별적으로 몇 번 상담했더니 바로 자신의 태도를 수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과연 명석한 성우는 나의 말의 요지를 잘 파악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성우는 수업을 할 때마다 나의 질문에 늘 성실하게 대답해 주어 언제나 수업이 물 흐르듯 진행되었고, 간혹 선생님의 실수를 민망하지 않게 정중한 질문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그런 성우가 나는 너무나 기특하고 고마웠다.
그런 완벽한 성우의 아버지는 나와 같은 학교, 다른 학년에서 근무하시는 선배 교사이다. 온화한 인상에 언제나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대하시는 40대 중반의 따뜻한 선생님이다.
개학하고 성우가 나의 반에 배정된 걸 처음 아시고는 너무 잘 됐다고 좋아하시며 "선생님, 우리 아들이 부족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꾸벅 인사하시던 기억이 난다.
1학기 진단평가 날, 성우는 국, 수, 사, 과, 영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았다. 그리고 몇 달 뒤에는 교내 과학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시 대회, 도 대회, 전국 대회에서까지 훌륭한 성적으로 입상하여 학교 앞 플랭카드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주 목요일은 2학기 진단평가 날이었다. 아이들이 시험을 보고 난 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바로 채점을 해서 아이들에게 개별적으로 결과를 알려주었다.
초등은 OMR 리더기가 없다.. 답안지에 구멍 뚫고 채점까지 모두 수작업이다.
이번에도 성우는 다섯 과목 모두 만점을 받았다. 나는 성우에게 다가가 말했다.
"성우야,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전 과목 만점을 받기는 어려운 법인데 대단하다! 네가 똑똑한 건 선생님이 잘 알고 있지만 언제나 꼼꼼히 검토하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신중히 시험에 임한 너의 자세를 칭찬해! 선생님은 진심으로 성우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러자 성우는 멋쩍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다.
"이렇게 만점 받으면 집에서 부모님께서 많이 칭찬해 주시니? 저녁에 맛있는 거라도 먹어야겠다!"
성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가 말했더니 성우는 짐짓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예전에는 좀 칭찬해 주셨던 것 같은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런지 별로 칭찬을 안 해주세요."
"어머! 정말이니? 선생님이 오늘 부모님께 연락드려서 우리 성우 칭찬 듬뿍 해달라고 해야겠다. 걱정하지 마."
나는 아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하교하고 난 뒤, 성우의 아버님께 교직원 메신저를 이용하여 쪽지를 보냈다.
"성우 아버님 안녕하세요~!
오늘 성우가 진단평가 결과 전 과목 만점을 받아 연락드립니다!ㅎㅎ
우리 성우가 요즘에는 시험을 잘 봐도 부모님께서 별로 칭찬을 안 해주신다고 시무룩하게 말하길래 오늘 저녁에는 꼬옥 맛있는 것도 먹여주시고 칭찬도 듬~~뿍 해주십사 부탁드립니다!^^
어쩜 그렇게 아이를 잘 키우셨어요~!
완벽한 아드님을 두셔서 부럽습니다.ㅎㅎ"
그러자 선배교사이자 학부모님이신 성우의 아버님께서는 진심을 담은 장문의 쪽지를 보내주셨다.
"성우가 사춘기가 왔는지
요즘 들어 외모와 옷차림에 신경을 쓰고
저한테 짜증 부릴 때가 많은데
저는 잘 안 받아주는 편이고 대화가 잘 안 돼서 속상했어요.
누구나 그렇듯 한 아이에 대한 부모의 역할이
처음인지라 항상 두렵고 설레는 마음으로 자녀를 양육합니다.
학부모와 소통을 적극적으로 해주시고
동료교사들에게도 힘과 웃음을 주시는 000 선생님, 존경하고 항상 감사합니다.
벌써 금요일이 목전입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나보다 10년은 선배이신 선생님께 이런 진솔하고 따뜻한 쪽지를 받으니 마음이 뭉클하고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지나칠 수 있는 상황에서 겸손한 말씀과 함께 나에게 칭찬을 돌려주시는 선배님을 보며 왜 성우가 그렇게 잘 클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마음을 담아 나도 답장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ㅠㅠ
성우가 어쩜 그리 잘 컸는지 선생님 쪽지를 보면서 알았습니다.
어른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되돌아보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리도 겸손하게 말씀해 주시다니요.. 저도 스스로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성우는 교실에서 언제나 저의 말에 무조건적인 신뢰를 주고, 선생님과 친구들을 늘 따뜻하게 사랑해 주며, 바른 언어 사용과 명석한 두뇌, 뛰어난 신체기능까지..
뭐 하나 부족함 없는 아이입니다.^^
그렇기에 집에서는 감정도 분출하고 싶고, 쉴 곳이 필요하겠지요..
그런 역할을 해주시는 00 샘이 저는 참 훌륭하고 멋지시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말씀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고 남은 오후도 행복하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쪽지를 주고받으며 다시 한번 교직생활은 사랑의 선순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들과 학부모님께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이 전달되고, 그 마음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고.. 그렇게 사랑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성장시켜 나가는 이곳이 나의 일터임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등굣길에 성우를 만나 반가운 얼굴로 대화를 나누다가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예뻐서 성우에게 나의 핸드폰을 건네주며 말했다.
"성우야, 선생님 사진 하나만 찍어줄래?"
그러자 성우는 자기가 사진을 잘 못 찍긴 하지만 선생님을 최대한 열심히 찍어드리겠다고 말하며 5장의 사진을 찰칵, 찰칵 찍어 나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우와~!! 성우야, 사진 너무 잘 찍었다! 완전 마음에 들어! 선생님 다음 프로필 사진으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