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 내가 부장으로 이끌고 있는 우리 학년은 1반부터 8반까지 담임선생님 여덟 분과 학년 소속 영어전담, 과학전담 선생님까지 총 10명이다.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연구실에 들러서 학습 자료를 공유하고, 학급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고 웃으며 누구보다 끈끈한 동료애를 구축해 왔다.
30대 여자 4명, 30대 남자 3명, 40대 남자 1명, 그리고 50대 여자 2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학년은 학교에서도 소문날 정도로 분위기가 좋다.
10명 중 나이순으로 여섯째인 내가 부장을 맡고 있지만 모든 선생님들께서 나를 존중해 주시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시고, 내년에도 부장님과 동학년을 하고 싶다고 말씀해 주시니 학교에 가는 발걸음이 즐겁고 신이 날 수밖에 없다. 일이 많아도 사람들이 좋으니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게 된다.
그런데 요즘 50대 선배 선생님 한 분이 유난히 안색이 어두워지시고 연구실에도 잘 오시지 않기 시작했다.
그저께 오랜만에 연구실에 들어오신 선배님의 수척한 모습에 무슨 일인지 걱정이 된 나는 혹시 어디가 안 좋으신지 여쭙고, 몸이 피곤하신 거면 수업 후 얼른 조퇴를 쓰고 댁에 가셔서 푹 쉬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선배님께서는
"부장님, 내가 이 나이까지 이렇게 아파본 적이 없어. 근데 이상하게 소화도 안되고 잠도 안 오고 그래. 병원 가서 검사하고 왔는데 지금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야. 큰 병이면 어쩌지? 근데 아무것도 안 나와도 걱정이야."
하고 말씀하시며 힘든 얼굴을 하셨다.
나는 선생님을 꼭 안아드리며,
"선생님께서 이렇게 힘드신 줄은 몰랐어요. 제가 부장인데.. 그동안 몰라드려서 죄송합니다. 얼마나 힘이 드셨어요..."
하고 말씀드리며 등을 토닥토닥 쓰다듬어 드렸다.
꾹꾹 참고 견뎌오셨던 마음이 팍, 터져버리셨던 선배님께서는 내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셨다. 나는 얼른 휴지를 가져와 선배님의 눈물을 닦아 드리며 연구실 밖 복도 끝 한적한 공간으로 선배님을 모시고 갔다. 연구실 안에 같이 있던 30대 선생님들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우리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눈물을 흘리시던 선배님께서 눈물을 닦으시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선생님, 혹시 많이 불안하세요?"
내가 여쭈었다.
"응 부장, 나 많이 불안해. 일주일 사이에 몸무게도 3킬로나 빠졌어.."
선배님께서 대답하셨다.
"혹시 머리가 아프고, 걱정이 많아서 잠도 안 오시고, 밥도 잘 안 먹히지 않으셔요?"
"맞아. 급식도 그냥 꾸역꾸역 먹고 있는 거야."
"사실 저도 예전에 너무 불안하고 힘들어서 일주일 사이에 3킬로가 빠졌거든요. 잠도 안 오고, 밥도 안 먹히고.. 밤마다 걱정이 많아서 몸이 떨릴 정도로 불안했어요. 두통도 있었고요. 거의 한 달 내내 그랬거든요."
"그래? 나랑 증상이 비슷하네.. 그럼 지금은 잘 먹고?"
"네. 시간이 지나 마음이 편안해지고 음식도 먹고 하니까 괜찮아졌어요. 그래서 저는 요즘도 가끔 불안이 느껴질 때 글을 쓰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거든요.
제 생각에 선생님께서는 굉장히 배려심 많고, 섬세하시고, 업무에 대한 책임감도 많은 분이시라 개학하자마자 긴장하고 너무 열심히 하셔서 그런 스트레스와 불안이 증상으로 나타나신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 힘드시면 병가 쓰셔도 괜찮아요. 선생님 업무는 제가 다 마무리할 테니까 그냥 아무 생각 마시고 들어가서 쉬셔요. 선생님 건강이 학교일보다 훨씬 중요하잖아요. 저 그 업무랑 비슷한 거 많이 해봐서 괜찮아요."
선배님께서는 눈물을 멈추시고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며, 병가에 들어가더라도 맡은 업무는 다 끝내고 가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러실 필요 없다고, 선생님만 생각하시라고 몇 번 더 말씀드리고 손을 꼭 잡아드리고는 선배님께서 진정되어 교실로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고 교무실로 갔다. 그리고 교감선생님과 교무부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말씀드렸다.
"교감 선생님, 저희 학년 000 선생님께서 지금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드세요. 제가 병가 들어가시라고 설득드리고 오는 길인데 워낙 책임감이 강하신 분이라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으셔요.
제가 오늘 대화해 보니 수업을 하기 힘드실 정도로 많이 힘들어 보이시는데 교감선생님께서 한 번 면담해 주시고 힘들면 병가 들어가시라고 말씀 좀 부탁드려요.
제가 나이 어린 부장이라 선배님께 드릴 수 있는 위로의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따뜻하게 품어드리고 싶은데.. 교감선생님께서 위로해 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진심을 담아 천천히 말하는 나에게 교감선생님과 교무부장님께서는 알겠다고 말씀하시고 000 선생님께서 많이 힘드셨겠다고 공감해 주셨다.
그리고 다음 날인 어제, 수업자료를 준비하러 연구실에 들어갔더니 선배님께서 한결 편안해지신 얼굴로 앉아계셨다.
"부장님, 나 오늘 조퇴 썼어요."
"네 선생님! 잘하셨어요, 바로 결재할게요. 오늘 컨디션은 좀 어떠셔요?"
"응, 어제보다 좀 괜찮아. 어제 부장님이 얘기해 준 게 엄청 위로가 되더라고."
"어머, 그러셨어요? 너무 다행이네요."
"부장님이 나랑 비슷하게 몸무게도 빠지고 잠도 잘 안 왔다고 공감해 주니까 위로가 많이 됐어요. 생각해 보니 내가 개학하면서 힘들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봐."
"맞아요, 선생님. 사실 저도 체력이 많이 달려서 힘든데 선생님께서는 얼마나 힘이 드셨겠어요."
"응.. 그리고 내가 갱년기 증상도 온 것 같아. 50대 초반부터 몸에 열이 나고, 땀이 나고 막 그랬거든."
"아.. 그러셨군요. 저희 어머니께서도 50대 초반에 똑같은 증상으로 엄청 힘들어하셨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와서 힘이 드셨나 봐요."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어제보단 좀 괜찮아. 오늘 조퇴 쓰고 병원 가서 결과 듣고 오려고."
"정말 잘하셨어요. 그래도 선생님께서 현명하셔서 증상 있을 때 바로 병원에 가신 거 너무 잘하신 거예요. 잘 다녀오시고 별일 없길 바랄게요!"
선생님께서는 빙긋 미소를 지으셨다.
내 마음의 긴장도 사르르 풀어지게 하는 아름답고 인자한 미소였다.
어린 왕자 책을 통해서 생떽쥐베리는 말했다.
우리는 길들여지고 익숙해진 관계를 지켜야 할 책임이 있으며, 이러한 관계만이 인간을 살게 한다고...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기도 하지만 결국 사람을 통해 치유받는다.
나의 위로가 선배님을 살리고, 선배님의 미소가 다시 나를 살린다.
앞으로도 나는 내가 길들이고 익숙해진 소중한 많은 관계를 잘 지키고, 아끼며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