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후의 햇살 Sep 11. 2024

배구의 희열

인생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중요한 이유

 작년에 나는 학교를 옮기자마자 학교 대표 배구선수로 차출되었다. 단지 서브를 할 수 있고, 리시브를 받을 수 있다는 간단한 대답만으로 굉장히 쉽게 학교 대표선수가 된 것이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이 큰 학교에 배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교육장기 교직원 배구대회가 매년 열리는데, 관리자분들은 얼핏 관심이 없어하는 듯하시면서도 내심 우리 학교가 좋은 성적을 거두길 기대하신다. 그래서 교무부장님이 온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우리 학교 대표 배구 선수가 될만한 인재를 손수 차출하시는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얼떨결에 학교 대표 배구선수가 된 나는 늦게까지 부장 업무를 하는 틈틈이 배구 연습을 하며 조금씩 실력을 키워갔다. 처음에는 '업무도 많은데 무슨 배구까지 하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열심히 하다 보니 팀원들과 손발을 맞춰가면서 랠리를 지속할 때의 기쁨이 너무나 커졌다.


 비록 작년 교육장기 교직원 배구대회에서 우리 학교는 광탈(광속 탈락의 줄임말)했으나, 선생님들과 함께 유니폼을 맞추고 구슬땀을 흘리며  즐겁게 연습했던 추억은 나에게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오늘은 2학기 들어 처음으로 교직원 배구 동호회를 하는 날이었다. 퇴근 시간 무렵에 열 명 정도의 선생님들이 강당에 모였다. 그리고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가위, 바위, 보를 짜서 '이긴 팀'과 '진 팀'으로 팀을 나누어 경기를 하기로 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체육교육과 출신의 전담교사 남자 후배 두 명과, 2학년 소속의 육상부 출신 선배 여선생님, 그리고 6학년 소속의 배구 실력자 남자 선생님 한 분과 팀이 되었다.


 첫 판부터 우리 팀은 기세 좋게 앞서가기 시작했다. 일단 오늘 처음으로 배구동호회에 합류한 동학년 소속 전담교사인 후배 남자선생님이 서브를 기가 막히게 넣었고, 상대편으로부터 어떤 공이 와도 우리 팀 선생님들은 각자의 포지션에서 열정적으로 공을 받았다.






 .. 사실 우리 팀의 유일한 구멍은 나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입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팀의 사기를 북돋우며 "호우~!", "나이스 서브~!", "잘한다!", "멋지다, 우리 팀!", " 파이팅!"과 같은 추임새를 끊임없이 넣었다. 작년에 교직원 배구대회를 거치면서 스포츠 경기에서는 팀의 사기와 분위기가 승패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학교에서 연습배구를 할 때 우리 팀이 졌던 경험이 거의 없다. 나는 이 부분에 있어 나의 끊임없는 칭찬과 격려, 하이파이브 등의 응원이 팀의 사기 진작에 큰 역할을 했을 거라 믿는다. (부족한 실력을 입으로나마 만회해보고자 하는 나의 절실함의 발현이기도 하다.)


 아무튼 오늘도 우리 팀은 두 번의 경기에서 모두 큰 점수 차로 이겼다. 하지만 이겨서 즐거웠던 것이 아니라, (물론 그것도 큰 이유였겠지만) 우리 팀이든 상대 팀이든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신나게 경기를 즐겼다는 것이 가슴 벅차도록 행복했다.


 공을 너무 열심히 받다가 넘어지면 서로 걱정하며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기도 하고, 센터 역할을 하시는 선배님이 공을 놓치시면 그래도 너무 잘하셨다고, 선배님은 자세가 멋져서 괜찮다고 말씀드리며 격려하기도 하고, 정말 받기 어려운 공을 후배가 멋지게 받아냈을 때에는 팀원들이 다 같이 후배에게 달려가 하이파이브를 하며 역시 체육교육과는 다르다며 격렬하게 칭찬을 해주기도 했다.




 


 집에 와서 땀으로 흠뻑 젖은 운동복을 벗고 개운하게 목욕을 하면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내가 함께 스포츠경기를 건전하게 즐길 수 있음이 얼마나 큰 행운이고 기쁨인가! 정말 감사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체력이 달려 몸은 녹초가 되었으나 오늘 밤은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고 노곤하게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람에게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것은 삶의 만족도를 크게 높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협력적인 취미라면 그 기쁨은 배로 커진다.


 처음에는 나의 의도와 다르게 선수로 차출되어 부담감도 느끼고 힘도 들었으나, 그 과정을 잘 견디고 나니 이렇게 좋은 취미가 되었다. 부족한 나를 뽑아주신 교무부장님께 밥이라도 한 번 사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앞으로도 내 인생에 기쁨을 줄 수 있는 건강하고 흥미로운 취미들을 하나씩 발굴해 가며 나의 삶을 더 다채롭고 행복하게 꾸려나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존심을 건 팔씨름 대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