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계속 버텨내고 존재하게 하는 건
제3회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가 지난 1월 30일, 31일에 진행되었습니다. 함께해주신 감독, 관객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현장 스케치와 리뷰, Rotary Sketch를 공개합니다.
2025년 1월 30일과 31일 저녁 7시, 혜화카페 애틀랜틱에서 제3회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가 열렸습니다. 2025년의 첫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를 앞두고, 저희 팀은 고민이 무척 많았습니다. 저희는 매번 마지막 주 목요일에 영화파티를 진행해 왔는데, 이번에는 그날인 30일이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달은 쉬어야 할까, 아니면 그 전주 목요일이나 마지막 주 다른 요일에 해야 할까. 여러 선택지가 있었지만, 그래도 저희는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는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이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일을 진행했습니다.
대신 하루가 아닌 이틀, 독립 단편 세 작품이 아닌 독립 장편 한 작품을 상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는 올해 3월부터 한국 독립 장편 영화 카페 개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영화는 계속 만들어지지만, 소규모 자본의 독립 영화들은 관객들을 만날 스크린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저희는 아직 정식 개봉을 하지 않은 장편 영화가 관객들과 직접 만나고, 영화에 대한 실제 관객 반응을 들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영화인들에게 응원과 지지의 마음을 담아 서로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 팀은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제3회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 상영작은 2023년 11월에 개봉한, 권철 감독의 <버텨내고 존재 하기>였습니다.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광주극장 곳곳에서 펼쳐지는 뮤지션들의 공연과 인터뷰 기록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작품은 영화와 극장을 사랑하는 영수, 수미, 예송과 음악을 사랑하는 용수, 은채의 공통 분모와도 같은 영화입니다. 영화가 이야기하는 무언가를 계속해 나가는 마음은,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가 앞으로 계속 간직해야 할 마음가짐입니다. 공간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기에,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이 되면 극장으로 바뀌는 카페 애틀랜틱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두가 조금 길어졌지만, 이제는 정말 30일과 31일에 있었던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 당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저희는 매번 영화 상영이 끝나고, 감독과 배우, 관객이 다 함께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대화형 GV를 진행해 왔습니다. 이 대화형 GV는 저희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 만의 가장 큰 차별점이지만, 설 연휴로 인해 30일에는 게스트 참석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30일에는 저희 팀과 관객 간의 더 깊은 대화를 위해 영화 상영 후 음감회를 진행했고, 31일에는 권철 감독님과 함께 대화형 GV를 진행했습니다.
음감회는 이번 상영작이 <버텨내고 존재하기>였기에, 저희 팀에서 새롭게 시도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번 음감회에서는 각자 인생에서 자신을 ‘버텨내고 존재하게’ 해주었던 음악을 함께 듣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설 바로 다음 날이라 많은 관객분이 찾아와주시진 못했지만, 그랬기에 우리가 더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래란 참으로 신기합니다. 매일매일 보는 익숙한 길거리도 음악을 들으며 걸으면, 내가 마치 영화나 뮤직비디오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음악에는 두근거림과 기쁨, 또 행복이, 어떤 음악에는 서글픔과 괴로움이 담겨있습니다. 그렇게 누군가의 감정이 담긴 음 악은, 다른 개인의 몸속으로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깊은 흔적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어떤 시기에 많이 들었던 음악이 있고, 특정 장소에서, 누군가와 들었던 음악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음악은 우리 몸에 남아있던 깊은 흔적을 건드리고, 특정한 기억과 감정을 예고 없이 불러옵니다.
우리가 고른 음악은 무척 다양했습니다. 국내 인디음악에서부터, 밴드, 팝송, 힙합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취향도 음악을 들으며 느꼈던 감정과 다시 이 음악을 꺼내게 된 이유도 모두 달랐습니다. 이날의 음감회는 다소 사적인 영역의 행사였기에, 그 내용을 자세히 공유해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자신을 버텨내고 존재하게 해 준 음악을 떠올리며, 다른 이들의 몸에 흔적을 남긴 음악을 함께 들으며, 모두가 힘을 얻어갈 수 있는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설 연휴에도 찾아와주신 관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날 찍은 단체 사진은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의 첫 단체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어주실 수 있냐는 저희의 부탁에 흔쾌히 응해주신, 애틀랜틱 앞을 우연히 지나가던 한 행인 분께도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31일의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연초답게 따뜻하고,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날의 영화파티는 스크린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창밖으로 내리는 눈이 보였습니다. 혜화와 광주는 꽤 먼 거리에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상영되는 순간, 광주극장과 카페 애틀랜틱의 공간은 하나로 이어진 듯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함께 두 계절과 시간, 두 공간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GV가 시작되기 전, 영화를 기획하신 최고은 님과 권철 감독님의 최근 작업물을 관람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크린 속의 계절은 겨울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저희는 애틀랜틱 2주년을 맞아 영수가 준비한, 달콤한 딸기 크레페와 함께 다시 크리스마스를 보 내는 기분을 만끽했습니다.
애틀랜틱의 불이 다시 켜지고, 대화형 GV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영수의 능숙해진 진행 덕에 이날의 영화파티는 감독님뿐 아니라 모든 관객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를 찾아주신 관객분들은 정말 다양했습니다. 최근에는 영화를 잘 보지 않았는데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출연하는 걸 보고 오게 되었다는 관객분, 평소에도 영화를 많이 보러 다닌다는 씨네필 관객분, 개봉했을 당시 이 영화를 봤었는데 다시 보고 싶어 포스터를 들고 방문해 주신 관객분도 있었습니다.
권철 감독님께서는 원래 영화를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분이 아니고, 이 작품 역시 원래 영화로 만들 계획이 없었다고 합니다. 만드는 사람이 즐거워야, 그 즐거움이 작품을 본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감독님의 말처럼,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보는 내내, 다 보고 나 서도 기분 좋은 에너지가 가득 차는 작품이었습니다. 감독님이 편하고 유쾌하게 영수와 대화를 나눠주신 덕에, 영화뿐 아니라 GV까지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에너지는 이어졌습니다.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보며 우리는 분명 우리를 버텨내고 존재하게 하는 건 무엇인지, 내가 지금 너무 무리하며 버텨내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아직 존재하고는 있는지 스스로에게 계속 해서 되물었을 겁니다. 어쩌면 ‘버텨내고 존재하기’라는 건 너무 거창한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언가를 계속해서 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묵묵히, 큰 부담 가지지 않고, 그저 해나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도 너무 버텨내려 안간힘 쓰지 않고, 그저 존재한다는 마음으로 2025년에도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에 관객분들을 기다리려 합니다. 혜화동로터리 영화 파티를 하며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 그저 돕고 싶은 다정한 마음과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어떤 순간들을 계속 만나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이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를 계속 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벌써 2025년의 1월이 다 지나가고, 모든 것이 낯선 2025년 2월이 되었습니다. 2월은 청소년 영화 특집으로, 2월 27일 저녁 7시 카페 애틀랜틱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