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말하는 순간들
제5회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가 지난 3월 27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되었습니다. 함께해주신 감독, 배우, 관객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현장 스케치와 리뷰, Rotary Sketch를 공개합니다.
2025년 3월 27일과 28일, 29일 저녁 7시, 혜화카페 애틀랜틱에서 3일 동안 제5회 혜화동로러티 영화파티가 열렸습니다. 이번 상영은 올해 1월부터 말씀드렸던, 한국 독립 장편 영화 카 페 개봉의 첫 시작점입니다.
3월 상영작은 송원재 감독의 <내 이름>(2024)이었습니다. <내 이름>은 20대 조건부 수급자 민서가 취업 준비생 친구 서연의 이름을 빌려 일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생기는 일련의 사건 들을 담은 사회 드라마입니다.
주인공 민서와 서연은 극 중에서 흔한 이름이라고 언급됩니다. 하지만 비단 이름 때문이 아니라,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그에 반응하는 모습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청년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고, 힘에 부쳐 누군가에게 힘듦을 토로하고 싶고. 쉽게 바뀌지 않는 계층 구조와 취업난 속에서 소모되어 가는 두 주인공은 분명 저희의 모습과도 닮아있었습니다.
3일 동안 진행된 이번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는 첫날인 27일은 작품 상영만 있었고, 28일과 29일에는 상영 후 대화형 GV를 진행했습니다. 28일에는 송원재 감독님만 참석해 주셨고, 29일에는 송원재 감독님과 두 주연 배우인 정찬양 배우, 서예은 배우님께서 모두 참석해 주셨습니다.
28일에는 관객분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어 ‘내 이름’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극 중 민서는 친구 서연의 이름을 빌려서, 몇 달 동안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살아갑니다. 일반적인 현실에서는 연기나 롤플레잉이 아닌 이상, 다른 이름으로 살아보는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 이름’ 이벤트는 영화 속 민서의 상황을 직접 체험해 보는, 가벼운 이름 바꾸기 롤플레잉입니다. 상영회 당일, 앞쪽에는 이름이, 뒤쪽에는 사전에 받은 자기소개가 적힌 이름표를 관객분 들에게 하나씩 나눠드렸습니다. 물론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관객의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받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상영 후 진행한 대화형 GV에서는, 진행자인 은채와 수미가 이름표에 적힌 이름으로 관객분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GV의 마지막에는 원래 자기 이름을 밝히고, 그 뜻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불리고, ‘내 이름’ 뜻을 다른 이들에게 말한다는 건 묘한 경험이었습니 다. 몇 수십 년을 당연하게 불려온 내 이름. 그 뜻을 새삼스레 떠올려보면 내가 정말 내 이름 대로 살고 있는지,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자신은 흔치 않은 이름을 갖고 있어서 흔한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기분일지 잘 모르겠다는 관객분 옆에는, 자신은 살면서 자신과 같은 이름을 여러 번 마주했다는 관객분이 앉아계셨습니다.
감독님께서는 주인공 민서가 관객들에게 부정적으로 다가올까 봐 조금은 걱정하셨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극 중 민서처럼 다른 이름을 목에 걸고 대화를 나눈 관객들은, 모두 민서에게 공감과 애정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민서와 서연 중 어떤 인물에게서 자신을 발견했냐는 저희의 질문에, 둘 중 한 인물보다는 두 인물 모두에게서 조금씩 닮은 면을 봤다고 대답해 주신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민서와 서연도 어딘가 닮아있는 거 같다는 의견 역시 많았습니다.
관객분들 모두가 민서와 서연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했고, 민서와 서연조차 닮았다면, 그건 우리 모두가 조금씩은 닮았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함께 영화를 보고, 서로 의 이름으로 불려보고, 그 이름의 뜻을 알게 되면서, 이름을 매개로 하나로 연결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각자의 생각을 나눠주시고, 이름 뜻을 공유해주신 관객분들과 송원재 감 독님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누군가와 이름을 나눈다는 건, 생각보다 꽤 친밀한 행위라는 걸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29일에 있었던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는, 저희 역대 영화파티 중 가장 많은 관객분들과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카페에 있는 모든 의자를 객석으로 바꾸고, 꽉 찬 애틀랜틱 안에서 <내 이 름>을 관람했습니다.
<내 이름>은 제작 PD님이 운영하는 광주 시민 극단 ‘원테이크’에서 10명이 넘는 배우분들이 참여한 작품입니다. 민서 역을 맡은 정찬양 배우님과 서연 역을 맡은 서예은 배우님은 극단에서 알고 지낸 지 이제 2년 정도 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민서와 서연 못지않게 두 배우는 서로에게 스스럼없는 친구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민서의 해피엔딩을 바랐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사회에서 정해진 계급 구조를 민서가 바꾸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해준 관객도 있었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 민서 역을 연기한 정찬양 배우님께서 민서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말해주셨습니다. 민서는 똑똑한 아이기 때문에 베이킹으로 창업도 하고, 홍보도 하면서 평범하게 잘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요. 꽤나 구체적인 민서의 미래 계획에 웃음이 터지신 송원재 감독님의 모습도 함께 기억납니다.
민서의 곁에 민서를 말려줄 좋은 어른이 없어서 안타까웠지만, 민서가 평범한게 별거 아니란 걸 깨닫는 순간이 너무 좋았다는 한 관객분의 말을 들으며 문득 든 생각이 있습니다. 물론 민서는 그 누구라도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불행한 일들을 영화 속에서 너무 많이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 불행 속에서 민서가 목격한 건 별거 아닌 평범한 행복과 희망의 순간들이었습니다.
민서를 아프게 했지만 동시에 성장하게도 한 이 경험이, 훗날 그의 인생을 바꾼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이날의 대화 덕분에 민서의 앞날이 어쩐지 희망적으로만 느껴집니다.
이번 4월에는 다시 단편 영화 세 작품, ‘청춘’을 키워드로 한 영화들을 상영할 예정입니다. 날씨가 따뜻해질 법도 한 4월 초인데, 아직 날씨가 제법 쌀쌀합니다. 제6회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가 열릴 4월 24일은 부디 따뜻한 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스크린 속에서 청춘의 순간들을 함께 목격하고, 이야기를 나눌 여러분을 언제나처럼 이곳 애틀랜틱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번 봄에는 어떤 청춘들을 만나게 될까요, 애틀랜틱에는 조금 이르게 봄이 찾아온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