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조금씩 나에게로 돌아가는 중"
4화. 길 위에서 내가 나를 만났다
: 5코스-남원 올레길, 바람이 말을 걸어왔다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은, 내 마음 깊이 걸어 들어가는 길이었다."
그다음 날, 나는 조용히 걷고 싶었다.
그래서 자주 추천받았던 올레 5코스, 남원에서 쇠소깍까지 이어지는 길을 걷기로 했다.
총 13.4km, 완주하려면 최소 4시간 이상은 걸리는 코스.
걷기 초보인 나에게는 조금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가야 한다는 마음보다 걸을 수 있는 만큼 걷자는 다짐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작은 백팩에는 물이 든 텀블러, 초콜릿 한 조각, 감귤 쫀디기 같은 자잘한 간식들.
혹시 모를 부상을 대비해 파스와 밴드도 챙겨 넣었다.
가볍게 짐을 꾸리며 마음도 함께 가벼워졌기를 바랐다.
처음엔 낯설었다. 혼자 걷는 길이라는 것이.
하지만 걷다 보니 알 수 있었다.
힘든 구간에서는 오직 ‘걷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고,
편안한 길에서는 나도 모르게 '마음속'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
걷는다는 건, 몸을 움직이는 일이면서도
묵혀두었던 생각들을 조용히 꺼내어 보는 일이라는 걸
이 길 위에서 처음 배웠다.
걷는 도중 '와-' 하고 감탄이 나오는 풍경을 마주할 때면
발검음을 멈추고 아름다운 바다와 자연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발걸음은 점점 일정해지고, 바람은 나를 지나 마음까지 쓸어주었다.
나는 천천히, 그러나 단단히 나를 다듬고 있었다.
깊이 들이마신 공기 속에서, 불안도, 걱정도 조금씩 풀어졌다.
지금 나는,
누구의 시선도 없는 이 길 위에서
조용히 나를 회복하고 있었다.
5화. 천천히, 더 나답게
: 제주 독립서점에서 보낸 조용한 하루
오전부터 비가 올 것 같은 흐린 날이었다.
하루쯤은 어딘가를 걸어가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제주에는 작은 서점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서귀포에 있는
‘그대가 사는 시간’ 그리고 ‘고요편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주인장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문장들,
느리게 흐르는 음악,
그리고 들어서는 순간 조용히 인사를 건네는 책들의 향기.
그 모든 것이 나에게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주는 요소였다.
오늘은 서귀포 하효동에 있는 고요편지를 찾았다.
비가 내릴 듯 말 듯한 창밖 풍경,
나직하게 깔리는 재즈 음악,
곳곳에 붙어 있는 손글씨 문장들.
마치 누군가의 조용한 마음 안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아무 책이나 펼쳤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좋아서.
그저, 나를 위해서.
조금 읽다 보면 집중이 흐트러질까 봐
나는 몇 장 넘기지도 않고 한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읽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에 기대고 있는 느낌이었다.
“살면서 단 한 번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가 필요하다.”
책 속의 그 한 줄이,
오늘의 나를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카운터 너머에서 서점 주인이 조용히 커피를 내려주었다.
책과 커피, 빗방울과 음악.
그 모든 것이 어지럽던 내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해주었다.
밖으로 나서려는데, 문 옆 엽서 진열대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중 한 장에 적힌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더 나답게.”
그 문장이 담긴 엽서를 구매해 가방에 넣고 서점을 나섰다.
그 문장이, 오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