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진행 중인 이야기
13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떠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반강제적 쉼을 얻은 지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주변에서는 경력 단절이라는 무서운 말로 나를 재촉했다. "얼른 취업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는 점점 내 마음속 불안을 키워갔다. 막연히 쉼을 꿈꾸며 제주 바람을 맞으며 걸었던 그때는 두려움 따위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나는 작아져만 갔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재취업이라는 전쟁. 막상 나를 차갑고 냉정한 취업시장에 내던지니 막막함이 밀려왔다. '취업은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그동안 혼신을 다해 진행했던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걸 다 정리할 수 있을까? 왜 진작 경력기술서를 써놓지 않았던 거지?' 후회라는 이름의 파도가 거세게 밀려왔다.
그렇다고 모든 기억의 서랍을 뒤져 경력을 나열할 수는 없는 노릇. 최근 5년간 진행했던 프로젝트들 위주로 포트폴리오부터 차근차근 작성하기 시작했다. 경력기술서와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동안, 새삼스럽게도 한 가지 깨달음이 찾아왔다. '내가 정말 일만 하고 살았구나.' 그래서 결국 건강도 잃고 번아웃도 왔지만, 일하는 것 자체가 나의 삶의 원동력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기존 경력과 연결되는 회사들을 찾아 나섰다.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제출해봤지만, 면접 기회를 얻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공백의 시간도 있었거니와,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포장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전혀 몰랐으니까. 그래서 회사를 분석하듯, 이번에는 처음으로 나 자신을 해부하기 시작했다.
나의 강점은 무엇인가, 약점은 어디에 있는가, 나만의 특이점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쳐 보았다. 그제서야 조금씩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앞으로 어떤 회사에서 어떻게 일해야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내가 진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을 다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누구나 겪어봤을 일이겠지만, 취업 활동이라는 것은 정신과 몸을 모두 갈아 넣는 고행과도 같다. 내 경우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몸으로 전이되었는지, 밥만 먹으면 위가 칼로 베는 듯 아팠고, 조금이라도 많이 먹으려 하면 목구멍까지 구토감이 밀려왔다. 저녁이고 아침이고 할 것 없이 위는 쓰리고 아팠으며,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 슬픔까지 덮쳐왔다.
'내가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이 된 걸까?' '나는 정말 잘할 수 있는데, 날 만나주기만 하면 분명 보여줄 수 있는데...' 이런 생각들이 마음속에서 끝없이 맴돌았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일에만 매달려 살았던 나는, 이제야 진짜 나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고 힘들지만, 이 시간들이 모여 더 나은 내일의 나를 만들어갈 것이라는 희미한 희망을 품어본다.
그리고 언젠가는 누군가 나의 진심과 열정을 알아봐 줄 것이라고, 그날이 분명 올 것이라고 믿으며 오늘도 한 걸음씩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