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꽃은 피어난다.
“어렸을 때 이야기 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상담에서 나는 자주 이 질문을 한다. 그러면 많은 내담자들이 잠시 웃으며 말한다.
“좋은 엄마였어요. 정말 최선을 다하셨어요.”
그들의 말에는 진심이 묻어난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말하지 못한 외로움이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소정 씨는 말했다. “엄마는 늘 바빴고, 나는 엄마 눈치를 보며 자랐어요. 웃는 법도, 참는 법도, 그때 배웠던 것 같아요.”
소정 씨 엄마는 자신이 기분이 안 좋으면 눈빛조차 차가워졌다고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날들은 침묵, 또 침묵, 반응 없음, 표정 없음..... 혼자서 아이를 키우느라 지치셨던 거라고 했다.
“엄마는 내가 어떤 기분인지, 뭘 좋아하고 뭘 무서워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시험 잘 봤어?”
“옷 그렇게 입고 나가면 남들이 손가락질해 “
“넌 머리가 나빠.”
“다리가 불국사 기둥만 해.”
“애들이 널 따돌리는 건 네가 문제야.”
모두 소정 씨를 위한 말이라는 것은 안다. 엄마 나름의 사랑의 표현방식이었을 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소정 씨는 점점 마음을 접었다. ‘말해봤자 소용없어.’ 그 생각이 마음속 깊숙이 뿌리내렸다.
소정 씨는 방 안에 숨어들었다. 점점 감정을 숨겼고, 기대도 사라졌고, “나는 부끄러운 아이야”라는 말이 어디선가 나타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다.
어른이 된 지금, 그녀는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자꾸 ‘불편함’이 올라온다. 누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울컥하고, 작은 무관심에도 속이 무너진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묻는다. “나는 왜 이럴까?”
엄마는 소정 씨를 사랑했을 것이다. 밥을 챙기고, 옷을 입히고, 학교에 데려다주며 “엄마 노릇”은 빠짐없이 해냈다. 하지만 소정 씨가 바랐던 건, 그런 돌봄이 아니었다. 그녀가 진짜 원했던 건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엄마의 눈빛, 소중한 사람’으로 느끼게 해주는 '사랑한다'는 한마디였다.
그녀의 마음속 아이는 아직 거기 있다. 그 아이는 말하고 싶어 한다.
“엄마가 힘든 게 나 때문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머리를 쓰다듬고 꼭 안아주세요.”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따뜻하게 눈을 맞춰주세요.”
“내 얘기를 듣고, 대답해 주세요.”
“항상 곁에서 지켜줄 거라고 말해주세요.”
“나와 많은 이야기를 해주세요”
이제 소정 씨는 그 아이의 곁에 있으려 한다. 어린 날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조용히 들어주고, 안아주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말해준다.
“너는 그대로 충분해. 내가 네 맘 알아”
엄마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가 원하는 사랑을 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소정 씨는 엄마와 함께였지만 늘 외로웠다.
때론 엄마를 원망도 했지만 이제는 안다. 엄마 역시 원하는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그녀 역시 마음을 가득 차게 하는 따뜻한 언어와 행동으로 전달되는 사랑이 낯설다는 것을.
이제 소정 씨는 그 고리를 끊으려고 한다. 자신이 엄마가 되어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고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자신을 바라봐주고 따뜻하게 이름을 불러주려 한다.
“소정아 사랑해. 넌 그대로 소중해”
그리고 그 사랑을 고스란히 딸에게 전달하려 한다.
1. 어린 시절,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삼켰던 순간이 있다면 떠올려보세요.
2. 그때의 나에게 지금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3. ‘감정이 이해받지 못한 경험’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4. 지금 나의 외로움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