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꽃은 피어난다.
나는 오래도록 '괜찮은 척' 하며 살아왔다. 사람들과 있을 땐 웃고, 혼자 있을 땐 울었다. 누군가를 탓하며 미워하는 것도 불편했고 ,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는 데도 행동으로 옮기기엔 어려워 혼자서 끙끙거렸다.
나를 지키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애씀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감정이 자주 폭발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해도, 마음 한구석엔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억울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왜 그럴까? 언제부터 이렇게 슬프고 억울했지?' 슬픔과 억울함이라는 감정선을 따라 과거로 여행을 하니 그곳엔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늘 바빴다. 눈을 뜨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포함한 7명의 식사를 책임져야 했고 식사가 끝나면 밭으로 일을 나가야 했다. 그러다 식사 때가 되면 다시 밥을 하고 그리고 또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다시 밥을 했다.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나는 본능적으로 엄마 치마 자락을 잡고 징징거렸다. 마음의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여력이 없었던 엄마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저리 가! '라며 매몰차게 밀쳐내었다. 어떻게든 사랑받아 보겠다는 아이는 그렇게 늘 밀려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슬픔의 시작이고 억울함의 뿌리였다.
엄마는 모든 아이들의 시작이고 세계이며, 동시에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근원을 만들어 주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존재이다. 누구에게는 안전함과 편안함을 주며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기도 하지만 누군가에는 슬픔과 억울함 불안함을 새겨 세상을 살아가는데 다양한 부정적인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 엄마는 후자였다. 엄마는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셨다지만 나는 늘 마음이 허기졌다. 가까이 있지만 멀게 느껴졌고, 사랑하면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엄마 기분과 상황에 따라 혼란스럽게 대하는 날들이 쌓여가고 그럴수록 나를 귀찮아한다는 생각이 마음에 새겨지고 있었다. 그 마음이 내 마음의 뿌리로 자리 잡아 예쁘다고 말해도 진심으로 들리지 않았다.
감정을 표현하면 '울지 마, 징징거리지 마, 소리치지 마'라는 반응이 돌아오거나 무시당하는 날들이 늘어남에 따라 나는 점점 입을 닫았고, 감정을 감추는 데 익숙해졌다.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은 더 외로웠고 더 불안했다. 그렇게 아이는 소녀가 되고 처녀가 되고 엄마가 되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감정 앞에서 자주 당황한다. 가슴이 먹먹한데 왜 그런지 모르겠고, 화가 나는 것 같으면서도 울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나는 왜 이럴까?’라는 답답함이 따라온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감정의 뿌리엔 사랑받고 싶었던 어린 내가 있었다는 걸. 말하지 못해 답답해하는 내가 있다는 것을. 엄마는 늘 바빴고, 힘들었고, 당신도 받아보지 못했기에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몰랐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이해가 내 상처를 덮지는 못했다.
이제 나는, 엄마 사랑이 고파 마음을 닫아버린 아이를 데려와 천천히 안아주려 한다. 엄마의 그림자 속에 갇혀 눈치를 보던 그 아이에게 말해주려 한다.
“너 괜찮아? 외로웠겠다. 이제는 내가 함께 할게.”
그 소리를 들은 어린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한다.
“이제 나 봐줄거야?”
그동안 나는 나를 보는 시간을 놓치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어린 나는 그저 기다리고만 있었나보다. 바라봐주기를, 관심 가져주기를, 함께 해주기를...
치유 글쓰기 연습: 함께 피어나요
1. 엄마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면, 그때의 감정을 적어보세요.
2. 그 감정 아래 숨어 있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요? (예: 억울함, 외로움, 두려움 등)
3. 어린 시절,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순간이 있다면 떠올려보세요.
4. 지금 그때의 나에게 다정한 말을 해준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