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엄마의 삶을 통틀어 기억을 되돌려 본다
엄마의 휴식은 언제였을까?
엄마는 당신의 몸이 제대로 움직이 못했을 때야
비로소 쉴 수 있었다
끝내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을 때
그 순간을 맞이하며
온전한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늦가을 그리고 초겨울의 문턱
이맘때 엄마는
막바지 일 년 농사의 수확을 정리하고 계셨지
햇볕에 말려지는 새빨간 고추
텃밭의 가지를 찢어서 말리는 일
고구마 수확
영글어진 늙은 호박들을 줄지어 가져다 놓는 일
주렁주렁 열린 감들을 몇 날 며칠을
칼 하나를 들고 깎은 후
지붕 처마밑에 셀 수 없이 많은 감들을 달아놓는 일
그리고 겨울을 나기 위한 마지막 준비
김장에 쓰일 재료들을
손질하고 계셨을......
마늘 껍질을 벗겨내는 일
지겹도록 앉아서
마늘의 아린 맛을 코와 눈과
손끝으로 느끼며
쪽파를 다듬고
무를 손질해 채 써는 일
배추를 절이고
새벽잠을 설치며 마침내 끝나는 김장
뒤꼍 담벼락 땅속에 묻힌
항아리마다 가득 채운 엄마의 배추김치, 총각김치, 동치미
그때의 나는
엄마는 뚝딱하면 뭐든 해내는 사람인 줄 알았다
너무 쉽게 해내는 엄마의 모습은
그 모든 것이 쉬워 보였다
엄마의 손과 발과
허리가 끊어질 듯 힘듦을 알지 못했으므로
엄마가 가족을 위해 했던 모든 일들
그런 엄마의 모습들이
내 기억 속에 그림책처럼 펼쳐진다
엄마의 가을은
온 가족의 따뜻한 겨울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주부로 살아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집안에 쌀과 김치만 있어도
든든함이 묻어나는 것이 엄마이자 가정 주부의 마음이라는 것을
가을이면 엄마의 손길이 가득 담긴 농산물이 생각난다
어디서도 맡을 수도 맛볼 수도 없는
엄마의 들기름, 참기름, 고구마......
재래시장 한 귀퉁이에
농산물을 내놓고 팔고 있는 어머님들을 볼 때면
그 속에서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깊어지는 가을의 모습만큼
엄마의 수고스러움과
엄마의 고된 가을걷이의 모습이 깊어진다
하나의 계절이 오갈 때마다
엄마의 그리운 향기도 내 코끝을 스쳐간다
쌀쌀해진 가을의 막바지에서도
엄마가 남겨준 엄마만의 가을풍경이
포근하고 따뜻함으로 적셔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