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슬픔 후에

by 김성희

"행복은 불행을 조건으로 하고

불행은 행복을 조건으로 한다.

즐거움은 괴로움을 조건으로 하고

괴로움은 즐거움을 조건으로 하다.

이들은 마치 파도의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 반복한다." -붓다의 마음수업 중에서-


슬플 만큼 슬프고

아플 만큼 아팠고

고통스러울 만큼 고통스러웠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어둡고 기나긴 슬픔의 터널을 빠져나와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수많은 자책의 시간을 보내고

수없이 내 탓이라 여겼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 속에서도

잘 견뎌내 준

그래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이들에게 조차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것이라 착각했던 한 사람

내 것일 수 없었던 사람

떠나간 마음 앞에서도

구태여 놓지 못했던 미련했던 나


거친 슬픔이 나를 산산조각 내었고

나는 깨어지고 부서진 자리에서

또 다른 내가 되었다

분명 예전의 내가 아닌

하지만 '나'라는 사실은 변함없는


슬픔 후에

다시 마주한 내 현실 앞에

더 강해진 나를 발견한다


내 사람

내 남편

애들 아빠로 생각했었던 그를

마치 처음 보는 듯한

타인의 감정으로 바라본다


가장 완벽한 타인이 되어버린

서로의 존재

그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처음부터 타인이었다


사랑과 남편과 가족으로 연결되어

긴 시간을 함께했지만

결국 다시 타인으로 돌아가는 길은

순식간의 일이다


처음부터 타인이었던 서로가

다시 타인으로 돌아간 것은

어쩌면 그리 아플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그와 내가 하나였다고 착각하며 살았을 뿐

헤어질 일이 없을 거라는 자신감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그 위험한 생각


지독히 아픈 시간이었다

아픔이 오기 전에 행복도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을 뿐


슬픔 후에 내게 찾아온 것은

초연함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삶일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 앞에서도 초연함을 잃지 않는 삶


앞으로 내게 또 어떤 일들이 다가올지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초연함으로 그 모든 것을 대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예전보다 조금 더 성숙한 어른으로

더 넓고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어른의 모습이기를


죽고 싶었던 어제가

살고 싶은 내일이 되어주지 못하더라도

삶과 죽음 앞에서 조용히

나의 길을 걷는 사람이기를


지금 배우자 때문에

슬픔의 눈물로

죽어가는 자신의 삶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부디 그 뜨거운 시간들을 잘 걸어서 나오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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