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사랑을 넘어서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by 김성희


"할머니, 할머니 되면 엄마 안 보고 싶어 져?"

"살아봐라, 그게 되나." - 드라마 '폭싹 속았어요'의 대사 중-


어릴 적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만 되면 자유롭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른들은 힘든 일이 닥쳐와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부모는 더 이상 생각나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당연히 죽는 것이라고...

나이가 들면 엄마도 당연히 떠나갈 것이라고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고아가 된다고

그래도 내가 어른이 되었으니 엄마를 잘 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엄마 앞에 내 나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작고 여린 어린 딸일 뿐이었다.

엄마의 죽음 앞에 멈출 수 없었던 눈물과

엄마가 떠난 후에도 여전히 엄마를 찾고 있는 나는.


'잊을 수 있을까?

영안실에서 차갑게 누워있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온기가 남아있던 엄마의 거칠고 따뜻한 손을,

앙상한 뼈만 남아 있던 엄마의 한 없이 작고 작아진 몸을,

뜨거운 불속에 던져져 타고 있던 엄마의 시신을,

한 줌의 재로 내 앞에 나타난 엄마의 살과 뼈가루를,

영정 사진 속에 곱디고운 엄마의 얼굴을, 나는 잊을 수 있을까?'

엄마와의 많은 시간들 중에

어찌하여 그 마지막 모습들만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인가.


주인 없는 텅 빈 엄마 집에서 발견한

낡고 오래된 앨범 속에 남겨져 있는 사진들을 보았다.

그 속에는 나의 어린 시절과 엄마의 꽃다운 젊은 시절,

엄마와 나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몇 안 되는 사진들이 이렇게 소중하게 다가올 줄이야.

남겨진 한 장 한 장의 사진들 속에 엄마가 남아 있다.

어린 내가 남아 있다.

엄마가 떠난 후 남겨진 사진들을 보니 후회가 되었다.

'사진이라도 많이 남겨 놓을걸.

엄마 보러 가는 날마다 사진이라도 찍어서 남겨 놓을걸.'


내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의 어떤 모습이라도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사랑해 줄 단 한 사람이었던 엄마.

나의 기쁨을 세상 누구보다 더 기뻐해줄 사람

나의 슬픔을 나보다 더 아파해줄 사람

나보다 나를 더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

아무리 아픈 말을 해도 언제 그랬냐는 듯 품어주었던 사람.

이제 평생 내편이 되어줄 든든한 백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보낸 그 시간부터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엄마의 상실과 부재를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이며......


50년을 가까이 살아봐도 그 처럼 나를 사랑해 준 사람이

앞으로 그렇게 또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있을까?

엄마가 아니면 받을 수 없는 그런 사랑이.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것을 당연히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부모라는 이유로.

당신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부모도 똑같은 사람이었다.

먹고 싶은 것도 있고, 가고 싶은 곳도 있고, 하고 싶은 것도 있는,

그런 것들을 여전히 마음속에 품고 사는 한 사람이었다.

당신들의 꿈을 포기하고

당신들의 삶을 포기하고

당신을 포기하고

오직 자식들만 바라보고 삶을 살아온

자식이 꿈이고 삶이었던 그런 시간이었다는 것을.


다 내어주고도 아깝지 않고

자식에게 무엇하나 바라지 않고

그저 건강히 잘 살아주길 바라는 그 소망 하나가 그들의 전부였다는 것을.

내가 자식을 키우고 엄마를 잃은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후에

그 공허함의 부재를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메꿔보려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랑보다도 엄마의 부재는 그 무엇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차지하던 자리는 영원히 메꿔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른이 되어도 엄마를 잃은 상실과 부재는

여전히 아이의 마음처럼 그리움과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엄마가 없어진 마음 한 구석에는

아직 어린아이로 남아 있는 나를 격하게 된다.


'쥐면 터질까, 놓으면 날아갈까'

부모는 죽을 때까지 자녀의 모든 것을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게 부모는 자녀의 모든 행동을 관심과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두고 봐라, 요 꽃물이 빠질 즈음되면 산 사람은 또 잊고 살아져.

살면 살아져. 손톱이 자라듯이 매일이 밀려드는데 안 잊을 재간이 있나.'

-드라마 폭삭 쏙았어요 대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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