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떠나고 꿈속에서라도 엄마를 다시 만나고 싶었어.
제발 꿈에서라도 엄마의 살아있는 듯한 얼굴을 보고 싶어서
엄마에게 기도하고, 신에게도 기도 했어.
'엄마, 보고 싶어. 꿈에라도 찾아와 주면 안 돼?'
'엄마를 만나게 해 주세요. 제발...'
그런데 엄마는 매일 밤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꿈속에서 조차 나를 찾아오지 않았어.
그래서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거야.
엄마는...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야.
이렇게 투정하는 걸 보면 나는 여전히 엄마의 딸이라는 것에 피식 웃음이나.
어쩌면, 꿈속에서 조차 엄마를 만나면 막내딸이 엄마를 붙들고
엉엉 울 것 같아서 일부러 찾아오지 않았던 것일까.
지금도 따뜻한 엄마품에 한 번만 다시 안겨 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아는데, 그래도 두 팔로 감싸주는
엄마의 가슴에 안겨보고 싶다.
엄마가 떠나고 첫 기일날이었지.
엄마에게 정성스레 밥 한 끼 올리고 싶어서,
부족하지만 엄마 생각하며 엄마를 이야기하며
하루 종일 엄마만을 위한 음식을 준비했었지.
엄마가 좋아했던 음식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중에서도 엄마가 얼마나 생선을 좋아했었는지 떠올랐어.
'우리 엄마 생선 참 좋아했는데...'
하루 종일 엄마만을 위해 준비한 음식을 제사상에 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또 터져 나오는 눈물.
엄마가 살아계실 때 이렇게 많은 정성과 이렇게 많은 음식들을
엄마를 위해 단 한 번도 차려준 적이 없어서.
그게 너무 미안해서 내가 엄마를 위해 뭐 하나 한 게 없는 것 같아서
너무너무 한심한 딸이어서 미안하고 또 미안해 엄마.
엄마의 첫 기일에는 엄마가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장남에게 받고 싶었을 상이었겠지만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딸의 정성을 받아줬을 거라 믿을게.
엄마에게 술 한잔, 절 한 번을 할 때마다 나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어.
고맙고 미안하고 아주 아주 많이 보고 싶어서 말이야.
죽은 뒤에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전히 엄마는 내 마음속에서 함께 할 것을 아니까
나는 매일 엄마에게 말을 건네.
비록 이제는 영원히 그 어떤 대답을 들을 수 없을지라도.
가끔은 태어난 나의 존재가 엄마에게 힘겨움을 준 것 같아서
마흔에 태어난 막내딸 때문에 더 긴 시간을 고생시킨 것만 같아서
나는 매일 엄마에게 죄인 같은 딸인 것 같아.
그래도 엄마는 자식을 미워할 수 없었겠지.
설사, 미움이 생겨났더라고 봄햇살에 녹아 사라지는 눈처럼
그렇게 한순간에 미움이 사라졌겠지.
자식에게 사랑만이 가득한 엄마는 늘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엄마로 살면서 깨닫게 되었어.
엄마를 약자로 만든,
엄마의 아름다운 젊음을 빼앗은 자식으로 태어나서 미안해.
엄마에게 많은 것을 해줄 수 있던 시간이 있었음에도
함께 하지 못한 많은 시간들에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미안함이 커다란 만큼 고마움도 크다는 것을.
'엄마, 눈물 나게 참 많이 고맙습니다.
사랑으로 키워냈을 그 모든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