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지막 눈동자

by 김성희

"엄마, 막내 왔어. 엄마!"

이제는, 내가 건네는 말에도 엄마는 초점 없는 눈으로

당신의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기만 한다.

그날은 엄마가 손가락조차 움직이지 않았고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누군지 전혀 알아보지 못한 날이었어.

"엄마,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 엄마!"

몇 번의 물음에도 엄마는 그저 멍한 눈빛으로

나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었지.

엄마 곁에서 엄마 손을 잡고 앉아 있는, 나의 늘어진 긴 머리카락만을 만지작 거리며.

"엄마, 이제 막내도 못 알아보는 거야? 어떻게..."

눈물이 와르르 쏟아져 버렸다.

이제는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어버린 엄마의 모습에

나는 더 이상 엄마를 보며 아무렇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엄마, 그래도 엄마 가슴속에는 아직도 한 없이 사랑했던

자식들과의 시간들은 심장이 기억하고 있는 거지?

설사 엄마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두고두고 내가 엄마의 시간을 기억할게. 엄마, 엄마.'


엄마가 요양원 입소 후 얼마 되지 않아 감기로 인한 폐렴으로

급속하게 나빠졌다는 소식을 들었어.

엄마는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마음이 너무 아팠던 거야.

마지막까지 애써 붙잡고 있었던 희망이 무너지니, 몸조차 버틸 힘이 없었던 거지.

'사랑하고 기대했던 자식 곁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었던 엄마의 그 간절한 소망이.'

엄마는 차마 그 소망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어.

당신 스스로가 자식에게 무거운 짐이 될까 봐...


요양병원에 입소 후의 엄마는

요양원에서 나를 방겼던 엄마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어.

요양원에 엄마를 보러 갔던 첫날부터, 코로나로 인해 엄마를 만질 수도 없었는데.

아크릴판을 사이에 두고 잠깐의 면회만 허락될 뿐이었잖아.

"이리 들어와. 나랑 놀다 가. 왜 안 들어와?"라며 계속 나에게 손짓을 했었지.

"들어와서 놀다가 밥 먹고 가." 애타게 말하던 엄마의 모습.

자식을 앞에 두고도 마음대로 만질 수도, 반겨줄 수도 없었던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엄마의 저 밝은 모습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마치 요양원은 창살 없는 감옥처럼 느껴졌을 것 같아.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에너지가 넘치던 우리 엄마였는데.


요양병원으로 입소 후에 엄마는 그 짧은 시간 내에 아예 거동 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어.

엄마를 보러 갈 때마다 야위어 가는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어.

조금이라도 걸었던 엄마는 휠 체에 의존하더니

어느 날부터는 휠체어가 아닌 침상에 누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지.

"엄마, 손목에 이 멍자국은 뭐야?"

야위어진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고 엄마의 손을 만지는 순간

엄마의 손등과 손목에는 거무스름한 멍자국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어.

엄마의 멍자국을 보는 순간 심장이 소용돌이을 쳤어. '혹시 이곳에서도...'

짧은 순간에 별별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가고 손이 떨리고 심장이 정신없이 쿵쾅 거렸어.

엄마가 이곳에서 어떤 생활을 해야 하는지 짐작이 되었어.

자유롭던 일상생활들이 요양원, 요양병원 입소 후 그곳들만의 규칙에 따라 많은 제한이 있었을 테지.

병원의 입장에 따라 엄마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테지.

걸을 수도 없으니, 누군가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었을 텐데.

엄마가 그토록 좋아했던, 먹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먹을 수 없어서

원할 때마다 들었던 자식들의 목소리조차 들을 수도 없어서

그곳의 생활들은 견디고 참아내는 시간 들이었을 테지.

하루하루가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했을까.

그런 시간 속에서 엄마는 살고 싶은 의욕을 상실했을 것 같아.

걸을 수만 있었어도, 엄마가 저렇게까지 망가진 모습은 아니었을 텐데.

이제는 앙상한 뼈만 남은 엄마를 보며 나는 평생 동안

그 모습을 기억하며 가슴을 찢기는 아픔을 안고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그날 예감했었지.


엄마가 나를 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은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 그것조차도 감사한 시간이었어.

하지만 이제는...


엄마를 보고 오는 날이면 나는 몇 날 며칠을 가슴앓이를 해야 했는데.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는 엄마를 보면서,

긴 세월의 힘든 삶에 엄마에게 기둥이었고 희망이었던 자식들 조차 놓아버렸던

희미한 엄마의 눈동자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엄마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

그렇게 엄마는 순식간에 당신의 삶에서 당신을 스스로 놓아버렸다.

내게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말없는 눈동자를 마지막 모습으로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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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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