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쪼꼬미 막내딸이 이제 엄마로서의 삶이 어느덧 26년째야.
나 엄마가 된 지 참 오래되었다.
처음 첫 아이를 가지고 얼마나 기뻤는지 지금도 그날은 잊을 수가 없어.
'엄마가 된다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여러 감정들, 엄마도 그랬겠지?'
그런데 열 달 동안 아이를 품고 점점 무거워진 몸으로 일상생활을 해나가면서
엄마 생각이 더 자주 났어. 무거운 몸으로, 불편해진 몸으로 무엇을 한다는 것이,
그런데도 마냥 웃을 수 있다는 것이, 힘든데 행복함을 느낀다는 것이.
그래서 자식은 신이 내린 축복 같은 것인가 봐.
엄마에게 우리 8남매 하나하나 모두 선물 같은 자식이었을까?
내가 자식을 연년생으로 낳아 키워보니
내 몸과 마음이 지치는 날에는 자식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있었어.
너무 힘들어서 감당할 수 없는 날에는 아이들이 울면 같이 울었던 기억이 떠올라.
독박 육아였지만 그래도 악착같이 잘 견디고 키워낸 엄마 딸, 대견하지?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육아에 몹시도 지쳐, 아이들을 더 예뻐해 줄 시간들을 놓친 것 같아서
가끔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밀려오면서 눈물이 빙돌아 마음이 아파.
더 사랑해주지 못한 시간들에 대한 미안함이
평생 가슴 한편에 무거운 돌덩이처럼 자리 잡고 있을 것 같아.
어쩌자고 아무 대책도 없이 그렇게나 빨리 둘째를 낳아서 나도 고생, 아이들도 고생을 시켰을까.
엄마, 왜 엄마라는 존재는 늘 자식들에게 미안하고 죄인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일까?
나만 그런 것일까? 엄마도 그랬을까? 아니 세상 모든 엄마들이 그런 마음일까?
사실, 정말 힘든 날에는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만 자식들이 짐 같았어.
철없던 20대 엄마였을 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었는데.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이들이 참 많이도 고맙고 더 많이 애틋해져 가는 거야.
내가 힘들어도 힘듦을 견디고 더 어른답게 살아야 할 이유,
아니 내 삶의 이유가 모두 아이들이었거든.
아이들의 반짝이는 순수한 두 눈을 보면서 그 모든 힘듦을 감당하게 되고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이었어.
엄마도 그랬겠지? 그래서 그 많은 자식들을 엄마의 손으로 혼자 다 감당했겠지.
언젠가 내가 엄마한테 물었지.
"엄마는 아빠도 없이 8남매 어떻게 키웠어? 도망가고 싶었을 것 같아."
이런 질문에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아주 솔직한 답을 했었지.
"진짜 힘들어서 너희들 두고 도망가려고 보따리를 쌋었지.
그리고 캄캄한 밤에 재를 넘어가는데 부스럭 소리가 나고
어떤 남자가 말을 걸어와서 그 길로 무서워서 도망치듯 다시 집으로 왔어."
결국 엄마는 세상밖이 무서웠던 거야. 우리 엄마, 참 순수하셨다.
"그래도 자식들 안 버리고 어쨌든 집에 돌아와 줘서 고마워 엄마"
그리고 그날 이후 엄마는 절대 그런 마음을 단 한 번도 품지 않았다고 했다.
"그날 내가 너희들 버리고 나갔으면 어쩔뻔했어. 생각만 해도 아휴."
그랬다. 엄마도 그때는 철없을 어린 나이였겠지.
엄마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힘듦 앞에 순간의 선택이었겠지.
'엄마, 고마워요.'
우리는 부모가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이가 부모를 키우고 있었던 거야.
'내 말이 맞지? 엄마?'
자식을 키워낼수록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이 곳곳에서 묻어나.
언젠가 엄마집에 있는 옛 사진을 들춰보다 한 아이가 셋째 언니 등에 업혀 있는 거야.
"엄마 이 아이 누구야?"
"누구긴 누구야 너지."
"나라고? 언니가 나 업어 키운 거야?"
"그럼 어떻게 일은 해야 하고 애는 우는데, 할 수 없지."
이 말을 듣던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감당도 못할 애들을 낳아서 다른 자식까지 고생을 시켰네.
동물도 아니고 자식은 왜 이리 줄줄이 낳아서 서로 고생을 한 거야.'라는 생각.
이해할 수 없었다. 부모가 무엇인지 몰랐던 철없던 그때는.
그런데 그런 말을 했던 내가 실수 아닌 실수를 범해서 연년생을 낳았으니...
'하, 이래서 겪어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말들은 함부로 하면 안 되는구나.'
자식이 많다 보니 먹고사는 일에 바빠 엄마는 그렇게 자식에게 자식을 맡겼겠지.
애틋한 마음으로 사랑스러운 눈으로 자식을 마주 볼 틈도 없었겠지.
어쩌면 그 어떤 사랑도 언제나 완벽히 채워 줄 수 없는 건가 보다.
엄마는, 아빠는 그 시간에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사랑해 주셨겠지.
이제야 엄마의 시간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이해할 수 있어서 더 많이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엄마가 내 곁에 없어, 이렇게 오늘도 나는 엄마에게 글로써 말을 건넨다.
한 아이가 태어남으로써 한 여자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 간다.
모든 것이 아이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아이를 길러내기 위해 한 여자는 여자를 버림으로써 엄마의 삶을 살아간다.
연년생의 아이를 독박으로 키우면서 내가 나를 잃어 같듯이 엄마의 시간도 그랬을 테지.
'나는 누구였지?', '지금 나는 누구인가?', '내 삶은 어디로 갔지?'
수없이 나를 잃어 가는 시간인 것만 같아서 서럽고 슬펐는데.
꿈꾸던 결혼생활, 꿈꾸던 행복한 엄마의 시간은 힘든 육아와 현실 앞에 그대로 먼지처럼 사라졌는데,
그럼에도 아이를 키우는 그 모든 시간이 행복이고 선물이었다는 것을.
내 이름 외에 누군가의 아내 외에 또 한 아이의 엄마로서의 역할.
나를 정의할 호칭 하나를 더 가지게 된다는 것은
호칭 하나를 얻을 때마다 의무와 책임도 늘어간다.
열 달 동안 아이를 품고 있으면서 엄마의 삶을 생각하며 '엄마'를 떠올렸다.
출산을 하면서 출산의 고통과 새 생명을 만나는 경험은 또다시 엄마를 떠오르게 하였다.
시도 때도 없이 24시간 대기하며 아이를 돌보는 시간 동안 엄마를 떠올렸다.
임신과 동시에 아이를 키우는 그 모든 시간에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가 되어도 엄마가 그리운 것은 나는 언제나 엄마에게 딸이었으므로...
엄마로 살아가는 평생의 시간에 나는 늘 엄마가 그리울 거야.
엄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