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머무는 사랑

by 김성희

부모는 미안했던 것만 사무치고, 자식은 서운했던 것만 사무친다.

-폭삭 속았어요 [드라마] 중-


사랑하는 사람은 멀리 가는 게 아니야.

네 가슴으로 오는 거야. - 영화 마이 파더 중-


엄마가 되었을 때 엄마가 더 보고 싶었고

엄마가 세상을 떠날 때 즈음에는 엄마가 정말 떠날까 봐 두려웠고

엄마가 떠난 후에는 엄마에게 못되게 군것들만 가슴에 남아 눈물이 되었다.


한 없이 받기만 했던 사랑이었다는 것을

엄마를 떠나보낸 후에야 알았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도 진정되지 않은

이별의 긴 아픔의 시간들은 아직도 내 삶에 머물러 있지만

차고 넘치게 사랑받았던 그 추억들이 아픔을 보듬고

내 아픈 가슴을 한 땀 한 땀 치유해주고 있었다.


마흔에 나를 낳았던 엄마는

산후조리조차 제대로 못하셨을 텐데.

어린 자식에게 더 어린 자식을 등에 업혀놓고

논, 밭으로 발걸음 무섭게 집을 나섰겠지.

해지기 전까지 더 많은 일을 해내시느라

도시락을 싸서 가거나 때로는 점심도 잊은 채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오곤 했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당신의 식사보다

하루 종일 주인만을 기다렸을

강아지와 외양간에 있는 소에게 밥을 먼저 챙겼다.

자신보다 말 못 하는 짐승이 먼저였고

어린 자식이 먼저였고

바깥일을 하느라 미뤄진 집안일이 먼저였다.

그리고 나서야 찬밥에 물 말아 한 끼를 먹던 엄마였다.

엄마는 그랬다.

당신을 챙기는 순서는 늘 마지막였던 삶이었다.


자식들을 많이 낳아 자식들을 고생시킨다고만 생각했었다.

부모의 책임을 자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가시키는 것 같아서

그런 부모를 원망 아닌 원망 했던 적이 있었다.

좁은 방에 다닥다닥 붙어서 잠들어야 했던 어린 시절

나는 생각했다.

결혼하게 되면 자식 같은 거 많이 낳지 않을 거라고.

계획 없이 줄줄이 낳아서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야 하는 아이들이 불쌍해서,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낳기만 하는 부모는 되지 않을 거라고.

지긋지긋했다.

없는 형편에 많은 형제자매들 틈에 끼어서 자랐던 내 어린 시절이.


초등학교 시절 때였다.

어린 마음에 엄마가 학교 행사 때라도 오게 되면

나도 모르게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움츠러들었다.

친구들의 엄마는 젊고 예쁜데

우리 엄마는 나이 많은 엄마라서 창피한 생각 먼저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마흔에 낳은 딸이 얼마나 예쁘고 더없이 사랑스러웠을까.

보기만 해도 아까웠을 한 없이 소중했을 막내딸이었을 텐데.

그때는 정말 몰랐다.

몰랐을 것이 당연한 나이였음에도

그때 가졌던 철없던 마음조차 왜 이리도 미안하고 후회만 남는 것인지

그 마음을 헤아리게 되니 가슴이 아프고

이런 내가 짜증이 나서 어디론가 숨고 싶어진다.


소풍 때 챙겨 주시던 엄마의 김밥

야채를 좋아하던 엄마는 김밥에 시금치를 잔뜩 넣어 싸주셨는데

나는 또 그 김밥이 왜 이리 창피하고 초라하게 느껴졌었는지.

친구들 앞에서 도시락을 펼쳐 먹을 때면

김밥의 절반 이상이 시금치로 가득해 마음 한편에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보니 엄마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시금치는 엄마가 좋아해서 넣은 게 아니라

식은 김밥을 먹을 때 행여라도 목이라도 막힐까 하는

딸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김밥을 싸는 날이면 엄마생각이 간절히 난다.

엄마처럼 시금치를 잔뜩 넣어 김밥을 말아본다.

그 시절 그렇게 창피했던 김밥이 눈물 나도록 맛있다.

거무스름하고 갈라진 손으로 만든 엄마의 김밥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어른이 되어 철이 들수록 투정 부리고 부끄럽게 여겼던 많은 것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엄마의 쨍쨍이던 잔소리,

많은 반찬은 없었지만 한 가지라도 배불리 먹으라고 가득 차려준 한 끼의 밥상들이

엄마의 된장찌개, 엄마의 손두부, 엄마의 명절음식...

엄마손이 닿은 많은 것들이 너무너무 그립고 그립다.

그 모든 것들이 엄마의 사랑이었는데

그런 사랑을 받고도 투정만 부렸던 어렸던 딸.

엄마...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엄마의 죽음 이후에도 엄마는 이렇게 사랑으로 남아

늘 내 곁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엄마는 떠났지만 또 떠나지 않았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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