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이야기의 원형 3: 부조리를 극복하는 법

맨 오브 오너, 그린 북, 핵소 고지

by 고스만

이야기의 원형 시리즈 3편으로 오늘은 영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세상은 부조리하며 불공평하다. 필자는 잘생기지도 않고(못생기지도 않았다!!) 천재적이지도 않으며 키도 180 아래고 듬직한 무엇인가를 타고나지도 않았으며 부모님이 재벌이 아닌 중산층이다. 필자도 못 타고 태어난 편은 아니지만 필자보다 하지만 앞의 5가지 요소를 모두 잘 타고 태어난 사람이 세계 어딘가에는 많을 것이다. 삶의 시작부터 이러한 불평등이 존재하듯이 우리의 삶은 수많은 불평등과 부조리함으로 가득 차있다. 가끔은 부조리함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부조리란 무엇인가? 본 글에서는 부조리를 '원칙적이지 않은 불평등'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실력으로 뽑혀야 하는 자리를 인맥으로 차지한다던가, 성과로 뽑혀야 하는 승진이 아부에 밀리는 것과 같은 요소를 부조리라 하고 싶다(아부도 업무의 일부라지만 아부'만'으로 뽑히는 건 부조리다). 세상은 이런 부조리를 해결하고자 하는 많은 노력들이 있었는데, 그중 두 가지가 페미니즘과 마르크시즘이라고 생각한다. 원칙적으로 여자라는 이유 만으로 남자와 비교해 차별당하면 안 되고, 노동자라는 이유 만으로 투자자에게 착취당하면 안 되는 것이 맞다. 이들은 자신들이 보고 있는 세상의 부조리가 고쳐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고, 그것을 위해 처절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때문에 내가 이들의 행동에 동의하지는 않을지언정, 이들의 의의를 모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필자는 이들의 행동과 실행만큼은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겠다는 의의를 존중해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존중할 수 없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지지해도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을 지지할 수 없고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지지해도 동덕여대 사건이나 혜화역 시위를 지지할 수 없는 것처럼 페미니즘과 마르크시즘의 뜻을 이해해도 그들의 행동에 동의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들이 바뀌고 세상을 설득하려는 노력보다,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뒤엎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조리한 세상을 부수고 다시 세우는 것을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이를 쉽게 동의하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조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나는 4가지 영화들을 소개하며 부조리를 극복하는 이상적인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맨 오브 오너(2000)

맨 오브 오너는 미 해군 최초의 흑인 심해잠수사 칼 브래셔의 실화를 기반으로 만든 영화이며 인종차별 이슈를 다루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칼 브래셔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아버지에게 '나처럼 살지 말거라'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왔다. 그는 해군이 되는 게 꿈이었다. 해군에 입대하는 날 아버지에게 낡은 라디오를 받으며 '해군에 뼈를 묻고, 절대 돌아오지 마!'라는 말을 듣는다.


그 시절 미국은 인종차별이 심하던 시절이었다. 해군들은 더우면 바다에서 수영을 했는데, 흑인들은 화요일에만 수영을 허락할 정도로 인종차별이 심했다. 하지만 칼 브래셔는 금요일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수영을 했고, 덕분에 영창을 가지만 그의 수영 실력이 함장의 눈에 띄었다. 함장은 추후 해군 잠수사가 되고 싶어 하는 칼 브래셔의 추천장을 써주기도 하는 조력자가 된다.


미국 잠수 학교의 첫 흑인 입학생인 칼 브래셔가 마주할 부조리는 앞선 인생의 부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단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편지를 100통을 썼으며, 입학 허가가 난 후에 정문에서 들여보내주지 않고, 정문을 지나 막사에 들어가니 동료 잠수사들이 흑인과 같은 방을 쓰기 싫다는 이유로 막사를 나가버린다.


어느 날 고장 난 배를 용접하는 훈련을 하는 중 루크와 아이서트라는 훈련병들은 고장 난 배가 뒤집히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호스가 꼬인 아이서트를 구하기 위해 칼 브래셔는 목숨을 걸고 새 호스를 들고 잠수하지만, 루크는 동료를 버리고 도망간다. 결국 칼 브래셔는 아이서트의 목숨을 구한다.


그리고 루크가 훈장을 받는다.


필자는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물어보고 싶다. 자신의 인생에서 목숨을 걸고 타인의 목숨을 살린 후 그 공로를 뺏길 정도의 부조리를 당해본적이 있느냐고. 이런 불공평함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처럼 포기뿐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칼 브래셔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부조리에 맞섰다.


영화의 결말에서 칼은 동료를 구하다 불의의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 신세를 지게 된다. 해군 잠수사 복귀를 원하는 칼에게 해군은 법정에서 150kg에 달하는 해군 잠수복을 입고 12걸음을 걷는다면 복귀를 시켜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칼은 12걸음을 걷는다.


그린 북(2018)

그린 북은 아마도 가장 유명한 영화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아는 작품일 것이다. 1962년, 위 영화보다 인종차별이 더 심하던 시기에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 Dr. 돈 셜리와 그의 운전사이자 해결사인 토니 발레롱가(이탈리아인)가 미국 남부(미국은 북부보다 남부가 인종차별이 더 심하다. 1861년에 일어났던 남북전쟁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에 공연 투어를 다니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영화에서 나오는 차별은 직관적이다. 심지어 영화 초반에는 토니조차도 인종차별을 한다. 바로 흑인 수리기사들이 쓴 컵을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다(같은 백인들에게 이탈리아인이나 아일랜드인이 차별받은 역사를 생각하면 더 흥미로운 장면이다). 남부 투어를 하며 돈 셜리는 바에서 흑인이란 이유로 두들겨 맞기도 하고, 자신이 공연하는 공연장에서 밥도 쓰지 못하게 하며, 심지어 화장실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흑인이 연주한다는 이유로 공연장에서 쓰레기가 버려진 피아노를 받을 뻔하고, 같은 흑인들에게 강도를 당할 뻔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조리에 돈 셜리는 어떻게 대응하는가? 그는 긍지를 지킨다. 식당을 쓰지 못하게 하면 그 공연장의 공연을 취소한다. 화장실을 쓰지 못하게 하면 30분 걸리는 숙소에 간 후 돌아온다. 바에서 그를 린치 한다면 그는 긍지를 지키며 맞는다. 경찰이 이유 없이 그를 체포한다면 그는 화내거나 저항하는 대신 협력한다. 상대에게 꼬투리를 잡힐 여지를 주지 않고 상대가 실수하도록 저항하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하는 것이 돈 셜리의 방법이다.


핵소 고지(2016)

핵소 고지는 위 두 영화와 다르게 백인이 주인공인 영화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2차 세계대전에서 의무병으로 활약한 '데스몬드 도스'의 이야기이다. 그는 그 당시 다른 병사들처럼 진주만 폭격 이후 국가와 동료들을 위해 의무병으로 자원 입대했다.


도스의 특이한 점은 그가 무기를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총을 거부한 자원병인 도스는 총기를 든 모든 훈련을 거부했고 전장에도 총기를 들고나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는 이 일 때문에 동료들에게 린치를 당하기도 하고, 휴가를 거부당해 자기 자신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군사 법정에도 회부당하지만 아버지의 도움으로 결국 소총을 들지 않아도 된다는 허가를 받는다.


우리가 인생에서 많은 부조리를 당했다면 데스몬드 도스 상등병만큼 많이 당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길 바란다. 전쟁에 지원한 자원병으로서 동료들에게 맞고, 자신의 결혼식에도 가지 못하고, 군법 회의에서 정신병으로 강제 제대당할 뻔한 경험이 있는지 묻고 싶다.


전쟁에 나간 도스는 무슨 행동을 했는가? 그는 부상병들을 구했다. 전투가 끝나 일본인이 점거한 전장에 있는 수많은 부상병들을 그는 말 그대로 총알을 피해 가며 자신의 진영으로 옮겼다. 밤새도록 그가 구한 병사의 수는 본인이 주장하길 50, 목격자가 증언하길 100명이 넘는다고 하여 영화에서는 75명을 구한 것으로 나온다.


우리는 우리를 밤새 린치하고 강제 제대시키려던 동료와 군과 국가를 위해 이 정도로 헌신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결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쉬운 해결책이다. 절이 왜 싫은가? 설마 불교라는 종교가 근본부터 잘못되진 않았을 텐데 절이 싫은 이유가 무엇인가? 불교와 절이 처음부터 끝까지 싫다면 당신은 중을 하면 안 된다. 이 세상이 하나부터 열까지 잘못되었다면, 세상이 잘못된 게 아니라 본인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때문에 본인이 바뀌는 게 좋은 해결책이다.


하지만 세상이 잘못되었다 느끼고, 부조리를 극복하여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세상을 파괴하고 다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이 있음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고결한 방식이다. 위 영화들은 전부 실화 기반의 영화들로, 세상의 부조리를 가장 고결한 방식으로 해결한 사례들이다. 이 세계가 잘못되었고, 세계를 파괴하여 개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세력들(마르크시스트와 페미니스트들)에게 위 영화들을 추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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