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롭고 아름다운 작업에 대하여
초보 작가로서 나에겐 퇴고란 처음엔 글만 고치면 되는 줄 알았다. 맞춤법을 다듬고, 문장을 정리하고, 조금 더 그럴듯하게 보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퇴고를 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고쳐야 하는 건 문장이 아니라 나라는 걸.
퇴고는 사랑했던 문장을 지우는 일이다. 처음엔 멋지다고 생각했다. "와, 이거 진짜 괜찮은데?" 그런데 며칠 후 보면 그 문장이 가장 어색하다. 결국, 지운다. 마치 누군가를 떠나보내듯이.
밤새 고민해서 만든 비유가 있었다. 정말 기가 막힌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 보니 억지스럽기 그지없다. 아름답다고 여겼던 수사가 오히려 글의 흐름을 막고 있다. 내가 가장 아끼던 문장이 사실은 독자에게 가장 불친절한 문장이었다.
지우기 전까지는 한참을 망설인다. 정말 지워야 할까? 조금만 고치면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결국 'Delete' 키를 누르는 순간, 마음 한편이 시린 하다.
퇴고는 내 자존심과 객관성 사이의 줄다리기다. 내가 쓴 문장을 내가 의심해야 하는 묘하게 외로운 작업이다.
"이 문장 정말 필요한가?" "이 설명이 독자에게 도움이 될까?" "내가 똑똑해 보이려고 어려운 말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 자신이 쓴 글을 가장 까다로운 독자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
때로는 며칠 전의 나를 원망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썼을까? 왜 이런 뻔한 말을 이렇게 어렵게 표현했을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한 편의 글을 두고 치열하게 대화한다.
한 글자 지우고, 한 문단을 날리고, 때로는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 마음은 찢기지만, 그 과정을 지나고 나면, 글도 나도 조금 더 단단해진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앉아서 고작 한 문단을 다듬는다. 쉼표 하나의 위치를 바꾸기 위해 열 번도 넘게 읽어본다. 같은 의미를 전달하는 세 가지 표현 중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하나를 고르기 위해 사전을 뒤적인다.
어제는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도입부가 오늘은 너무 길다. 어제는 명확하다고 여겼던 설명이 오늘은 너무 장황하다. 매일 달라지는 내 눈이 신기하기도 하고 짜증 나기도 한다.
가장 힘든 순간은 전체를 뒤엎어야 할 때다.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며칠간 공들여 쌓아 올린 글의 뼈대를 부수고 다시 설계해야 할 때. 그럴 때면 정말 글쓰기가 싫어진다.
퇴고는 글을 살리는 작업이 아니다. 퇴고는 글이 나를 죽이는 작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끝까지 마주하고 나면, 다시 살아나는 건 결국 나다.
퇴고를 하는 동안 나는 여러 번 죽는다. 내가 괜찮은 작가라고 생각했던 자만심이 죽고, 내 문장이 다 훌륭하다고 여겼던 착각이 죽고, 독자는 당연히 내 의도를 알아줄 거라고 믿었던 순진함이 죽는다.
그 죽음들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새로운 내가 태어난다. 더 냉정하고, 더 객관적이고, 더 독자를 배려할 줄 아는 내가.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진짜 글쓰기가 시작된다.
퇴고는 혼자 하는 작업이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고, 아무도 완전히 이해해주지 못한다. 그 외로움 속에서 오직 나와 내 글만이 치열하게 대화한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 나쁘지만은 않다.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는 내 생각을 더 선명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독자에게 어떤 마음을 전하고 싶은지 차근차근 들여다보게 된다.
퇴고를 마치고 발행 버튼을 누르는 순간의 그 떨림도 특별하다.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마음.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면서도 두려운 마음.
그렇게 또 하나의 글이 세상으로 나간다. 그리고 나는 다시 빈 문서 앞에 앉는다. 오늘도 사랑할 문장을 쓰고, 내일 다시 그 문장을 의심하며 지울 준비를 하면서.
퇴고는 끝나지 않는다. 지금 이 글도 발행 후에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생길 것이다. 그것이 작가의 숙명이자, 어쩌면 작가의 특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