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 시대 직장문화 속의 내 모습
나는, 성실함의 표본이었다.
타자, 테렉스 자격증은 물론, 무역업무를 전혀 못하던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부터 부서에서 타자 실력 최고! 원가계산을 가장 정확히 해내는 탁월한 여직원이 되었다.
성실함과 약간의 엉뚱함으로 나의 위치를 점점 확고하게 해 나갔고, 그때에는 직장에서의 여직원 위치가 호칭은 모두 (미스*)이었고, 커피 심부름, 문서수발 등으로 남자 직원과는 아무래도 차별이 있던 시대였다.
물론, 외국 바이어를 상대하는 나름 앞서 가는 무역회사 직장 문화였음에도 그러했다.
나는, (미스*)이 불려지는 게 듣기 싫었다. 그래서, (미스*) 부르면 대답하지 않고, 이름으로 부를 때 만 대답하기 시작했고, 업무 중에 커피 심부름도 부당하다 생각해 건의 결과 회사에 자동판매기가 들어오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낙하산"이라는 타이틀을 벗고, 나의 호칭은 “걸어 다니는 컴퓨터” “독한 여직원” “회사일 혼자 다하는 사람” 등으로 불려졌다.
열심히 완벽하게 성실하게 근무하다 보니, 인정받았고, 회사를 통해 대학도 졸업하였고,
근무하는 동안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는 일을 겪기도 했기에, 20대 때 나는 “고아”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내가 고아가 되었구나~~"라는 상처가 매우 깊게 자리 잡았다.
그래서, 무시받지 않으려는 상처 때문이었는지 나를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점점 더 일에 매달리게 되었고,
신앙에 대한 막연한 갈급함도 갖게 되었다.
이런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⓷인 Y** 대리님이 힘이 되어 주었다.
Y**님은 이혼남이었다. 그래서, 약간의 남. 연간의 소문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이차이가 많다 보니 별로 개의치 않았고 별문제 없이 항상 내 편이 되어 준 사람이었다.
나를 매일 출. 퇴근시켜주고, 서로 식사 챙겨주고, 하면서 다른 직원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Y**님은 비록 이혼남이었지만.. 쫌~~ 멋있었다. (얼굴도, 키도, 운동도, 업무도) 모두 잘했기 때문이다.
나는, 감사한 일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때에는 감사함 보다 그냥 당연히 내게 있는 일상으로 생각하였으니 세월이 흐른 지금은 아쉽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
후에, Y**님은 다른 인연으로 만나게 된다.
그 만남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