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시작이구나
평일 퇴근후 이어지는 독박육아에
매주 금요일 밤 12시 넘어 끝나는 줌미팅덕에
나의 토요일 아침은 항상 피곤하다.
그래도 오늘은 남편이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를 봐준 덕에 8시 넘어서까지 늦잠을 잘 수 있었다.
아침육아를 해준 남편은 아이를 넘기고 병원가서 물리치료받고 온다며 나갔고
나는 남편의 배려에도 눈뜨자마자 애보면서 아침먹으면서 집을 치우는 그런 피곤하면서 바쁜 주말아침을 시작하는 중이었다
그때 엄마로 부터 걸려 온 전화의 첫 마디는
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이 말만 듣고 나면, 기분이 언짢아 진다.
40년간 엄마와 나의 관계에서 터득한 바에 따르면
그 다음 나올 말은 영락없이 누군가에 대한 흉/분노/싸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그 누군가는 '아빠' 이다.
오늘의 주제는 <아빠의 대장내시경 검사> 였다.
엄마는 아빠가 건강검진 받은지 오래되어서 한번 받아봤으면 좋겠는데
몇년 째 영 말을 안들어서 돈이 없어 그런가 싶어
"내가 돈 내줄 테니 받고, 하는 김에 대장내시경도 같이 해보슈" 라고 했는데
아빠는 건강보험공단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나라에서 무료 지원해주는 항목만 받아도 된다고 했다며
대변검사 하는데 왜 굳이 돈 더 내고 대장내시경을 받냐며 안 하겠다고 고집을 피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대장내시경 안하면 돈 안내줄거라고 했더니
아빠는 집팔았을때도 2천 줬는데 왜 돈 가지고 치사하게 그러냐며
나이 70넘어 엄마에게 상욕을 했단다.
일단 여기까지 듣고 골이 지끈거렸다.
2년전 폐암4기 진단받은 엄마가 임상덕에 일상생활의 80%정도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몸걱정보다 평생을 속썩여온 남편걱정하느라 속앓이 하는데서 일단 화가났고
늙고 병든 마누라가 자기 위해서 돈까지 내준다는데 왜 굳이 안한다고 저리 고집을 부리는지 이해도 안되고
안할거면 곱게 안하지, 왜 일흔이 넘은 나이에 상욕까지 해대는지
그리고 집팔아서 돈 줬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기에 너무 화가났다.
그런 상황에서
"니가 니 아빠한테 전화해서 대장내시경 받으라고 설득좀 해봐라"
라는 엄마의 말에 속이 뒤집어질거 같았다.
평일엔 회사다니고, 피곤하게 주말아침을 시작하는 딸을
왜 아침부터 엄마아빠 싸움에 끌어들이는 건지.
피곤하긴하지만 평화롭던 주말이 왜 어김없이 엄마로 인해 무너져야 하는지
그리고 더 화가 나는건 엄마의 심리다.
아빠랑 싸운 직후에 나보고 전화해서 설득을 하라는게 아빠가 걱정되서가 아니라
자기가 맞고 아빠는 틀린 걸 증명해보이고 싶은 생각인거 같아서 화가 난다.
정말 아빠를 걱정해서 꼭 검사를 받게 하고 싶다면,
돈으로 아빠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고
아빠가 검사를 받을 만한 다른 심리적 자극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건강과신증인 아빠의 심리를 겨냥해서
"대장내시경 검사도 더 늙으면 못한대요. 그나마 아빠 연세에 할 수 있을 때 하세요. "와 같이.
그런데 엄마는 처음 시작은 아빠 걱정이었겠지만
언쟁을 하는 과정에서 처음 의도는 온데간데없이
그저 자기말을 무시하는 아빠를 납작 누르고 싶은 마음때문에
나까지 동원해서 아빠가 틀리고 자기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거다.
토요일 아침부터 이런 얘기를 들어야하는
내 기분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언제나처럼 자기 위주인 유아적 사고방식에 화가났다
그래서 지금 바로 아빠한테 전화하라는 엄마에게
"지금 전화하면 내말 듣겠어? 나중에 저녁때 손주 얼굴보여드리면서 얘기할게요"
하며 짜증냈더니
"미안하다" 라는 엄마.
아프기전에는 내가 불편한 기색 비치면
오히려 X가지없다고 펄펄 뛰던 자기위주였던 엄마가
아프고나서,
내가 매월 50만원씩 반찬값 보내드리고나서부터는
내 눈치를 본다.
그게 또 짜증이난다.
나한테 진짜로 미안하지도 않고
뭐가 미안한건지도 모르면서
그냥 내 눈치만 보는 거 같아서.
전화를 끊고 나서 내 마음은 지옥이 된다.
왜 엄마는 아빠와의 갈등에 나를 끌어들일까.
그게 나한테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몇번 말을 해도 왜 계속 이러는 걸까.
근데.
또 내가 엄마 이야기를 안들어주면
친구도 없는 엄마는 또 누구한테 이런 이야기를 할까.
폐암걸린 엄마가 벽창호같이 답답한 아빠한테 받는 스트레스를 딸년인 나 아니면 누가 풀어줄 수 있겠나.
엄마 상황을 알기에
나밖에 하소연할데 없는 엄마가 이해도 되지만
매번 엄마 때문에 내평정심이 깨지는 것도 큰 스트레스이다.
그래서 엄마가 아빠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소연할 때마다
나는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평생 아빠때문에 고생한 엄마가 암 걸려서까지도 스트레스 받는게 너무 싫다.
스트레스 주는 요인이 아빠라니, 그럼 아빠가 없으면 될거 아닌가. 하는 단순한 생각.
그러다가 나로 하여금 이런 패륜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엄마에게 다시 분노가 향한다.
아이러니 하다
엄마가 불쌍해서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빠가 미운데
아빠를 미워하게 만드는게 엄마라
엄마가 미워진다니.
엄마가 짜증나지만 불쌍하기도 하고
다른엄마들도 이럴까? 우리 모녀관계가 정상일까?
나는 오늘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등등의 생각으로 머리속이 지저분해진다.
이 기분이 너무 싫다.
나도 티비에 나오는 엄마, 내 친구 엄마들처럼
김치 담가서 갖다주고,
손주 봐줄테니 사회생활 더 하라고 해주는
그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맨날 아빠랑 울고불고싸워서 나한테 하소연하는 것은 당연하고
싸움까지 개입해서 해결해달라고 종용하는 엄마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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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걸린 엄마가 스스로 일상생활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판에
이런생각하는 내가 참 이기적인거 같지만.
지난 주 내마음 속에 일었던 회오리에 대한 기록차원에서 남기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