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놈
내가 낳았다
여러모로 그보다 나를 더 많이 닮았다
속상하면 말이 없어지고 하염없이 걷는 것도
생각이 많아지면 잠을 한숨 청하는 것도
사춘기 때 나는
아버지가 있는 아이들이 가장 부러웠다
그들의 아버지가 집안에서 어떤 사람이건
개의치 않고 부러웠다
당시엔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호구조사를 했다
무수히 많은
없는 것들 목록 중에서도
아버지 없는 사람에 손을 들어야 하는 게
가장 끔찍했다
손을 함께 드는 사람은 말 한마디 안 섞고
동지가 됐다
아버지 없는 애들
특별히 불우한 아이로 분류되어 측은지심의
대상이 되었던 그 시절
아버지를 원망하는 몇몇 친구의 배부른 투정이
몹시 불편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도 없었다
나를 많이 닮은 중2 돼지,
사춘기 후반부일 거라 믿는 구간에 들어선 놈은
어머니도 아버지도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이 놈은 나를 다 파악해 버렸다
들었다 놨다
울렸다 웃겼다 한다
내가 어디서 약해지고
어디서 강해지는지 안다
눈빛 때문이다
눈빛을 읽는 놈이다
간신히 선을 넘지 않고 멈추는데 의도한 것은 아니나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어머니 뭐해요, 저 뒷담까죠
어머니랑 안 놀아, 그러면 안 돼요
내가 뭔가를 적고 있으면 으레 하는 말이다
하지만 방금은 뜨끔했다
이게 뒷담인가?
그럴 수 있겠다
동의도 구하지 않고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상태의 아들놈
얘기를 쏟고 있으니 뒷담일 수 있겠다
하여간 이 놈은 만사 느긋하고 능청맞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사람을 뒤집어 놓는다
대신 화내는 쪽이 진다
그래서 매번 지는 쪽은 나다
녀석의 부친도 입장이 같다
개엄마는 기어코 오늘 폭발했다
수행평가로 성적의 60프로를 평가하는 도덕
아무리 지필평가 100을 얻어도 놈은 D
개엄마 입장에서 절대 이해 안 되는 놈의 점수
이번 기말고사로 가내신점수가 산정되고
3학년이 되면 비평준화인 경기권 고등학교 진학을 염두하고 1년을 달려야 한다
개엄마 기준이다
미술 수행 백지를 내고도 B를 획득한 개엄마의 나머지 과목은 모두 A, 그래서 더 열받았다
백지를 낸 자신을 질책하는 중에 내일이 수행평가 20점이 배분돼 있는 발표 수업 자료를 전혀 준비하지 않은 것
놈의 부친이 가볍게 체크하다 일이 터졌다
개엄마 입에서 온갖 상스런 낱말들이 놈에게 쏟아지고
도화선에 불을 붙인 그는 개엄마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몸을 낮춘다
나는
불구경
불이 나면 거리를 좀 두는 게 낫다
진화는 탈 게 다 타면 진정된다
중생심은 짚더미 같으니까 저만큼 비켜서는 것으로
나는
어쩌면 하고 광경을 지켜본다
아버지를 중간에 두고
남매가 투닥거리는 모습마저도
좋다
엄마를 옆으로 비켜세우고
키가 아버지만큼 자란 아들과 딸의 모습에서
내가 그 시절 누려보지 못한 다른 모양의 사랑을
본다
그래서 난리굿이 난 것 같은 잠깐의 순간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
또
내 아버지가 나와 같이 늙어가고 있다면
저 이상한 놈처럼
나도 능청을 떨며
아버지 사랑해요 하고 싶다
어차피 몇 분 후면
누나 사랑해
어머니 사랑해요
아버지 사랑해요 하며
앵길 걸 안다
오늘 하루도
도처에 평안이 머물기를
옴 샨티 샨티 샨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