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꼬마

몇 년째 줄어든다

by 연꽃부용


그는 곧 180을 넘길 것이다. 목을 하나 접고 허리를 약간 굽혀서 내 어깨 위에 턱을 올리는 그 자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에~~ 어머니 땅꼬마네~~


너도 얼마 전까지 바닥에 붙어 있었거든?


그런 적 없거든요?



그러고 보니 나는 울엄마보다 3,4년은 빨리 키가 줄었다. 문득 고등학교 2학년 때 하교하고 온 나를 등 뒤에서 안아주던 엄마가 떠오른다.


왜?


이제 학교 다녀오면 이렇게 안아보려고. 더 커버리면 못 안잖아.


그땐 별스럽다고 생각했다. 혼자 애써 살아내느라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엄마는 우리와 스킨십을 할 만한 틈이 없었다.


그러고 얼마 뒤 엄마는 거짓말처럼 나보다 작아졌다.


요즘 부쩍 그 자가 나를 많이 안아준다. 세 녀석 모두 나보다 머리 하나씩은 더 자라버려 내가 안기는 꼴이다.


어머니 저 애기 될 거예요,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갈 거예요, 응애 응애 안아줘요.


진담일까 봐 식겁한 말을 잘도 한다. 한포진 병 때문에 초유를 아예 수유 못한 탓도 있고, 손이 썩어들어 안아주지 못한 탓도 있어 내심 찔리는 마음 때문이다.


모든 순간이 시절인연으로 순식간에, 그래 눈 깜짝할 순간에 지나버리는 것을, 지나고 나서야 체감하게 된다는 게 얼마나 아쉽고 애타는 일인가.



제철 죽순처럼 쑥쑥 자라는 그들을 보고 있자면 사는 일에 허덕이며 하루하루 살아냈던 그녀가 아니 떠오를 수 없다.


하다하다 힘에 부치면,


서방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더니 내 인생이 어쩌다 이래 됐는고


한탄 섞인 말들을 쏟던 젊디젊었던 그녀.


한창 여물어 가던 나는 그녀에게 참 대못 같은 말들로 상처도 많이 줬었다.


엄마는 남편이 없는 거잖아. 엄마 아버지는 엄마 시집 가고 애도 낳고 다 보도록 있었잖아. 난 아버지가 없어. 나 아버지 없는 슬픔은 누가 들어줄 건데! 엄마는 어른이고 난 아직 어린데. 누구 입장이 더 서러운 거야.


지금 생각하면 참 못 됐다. 그런 삶의 순간들이 그녀와 나 사이에 유난히 많이 섞여 있어서 또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관계에 있는 것인지도.



어제는 그녀가 고아 보낸 곰탕과 언땅에서 캐 보낸 달래와 알알이 주워 빻아 쑨 도토리묵으로 저녘을 차렸다.


깨끗하고 정갈하게 포장한 택배 박스에 그녀의 마음이 켜켜이 쌓여 있어 그것들을 풀어 난 또 내 새끼들을 먹였다.


할머니가 해서 보낸 거야. 감사히 먹어.


맛있네. 달래장엔 밥을 비벼야 되는 돼. 곰탕도 먹어야 되고.


탱글탱글 흔들리는 묵 위에 달래장을 붓고 뜨끈한 곰탕을 먹으며 전화를 넣어,


엄마 맛있네. 고마워.


어, 보고 싶어서 한 번 가려고. 사랑해.


응.



난, 참 사랑해라는 말에 인색하다. 마음 속에 빈틈 없이, 마음 밖에도 출렁출렁하게 넘실대지만 소리로 돌아다니는 사랑과 같아질까 괜한 걱정에 입밖에 내지 않다보니 대꾸에 툭 나오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은 입만 열면 사랑해, 사랑해 하는데, 난 죽을 때나 한꺼번에 하려나 몹쓸 참음이다.



어머니 뽀뽀해요.


그 틈에도 그 자는 말랑말랑 보드라운 입술을 들이대고 나를 두 팔로 묶어온다.


너 설거지 한댔잖아, 왜 안 해?


어머니가 하니까 제가 못한 거죠. 크리스마스 선물로 유희왕 카드 사줘요.


애냐??


왜요? 유희왕 카드를 애들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유희왕 카드를 잘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예요.


갑자가 며칠 전부터 1년 전에 확인받고 내다버린 유희왕 카트 세트를 찾더니 거기 꽂혔다.


몹쓸 공대생!


꽂히면 파야 하는 성질머리가 발동한 게 이번엔 유희왕이라니.


그나마 겉모습은 나보다 길어져 외견상 다 큰 듯 보이지만, 속은 아직 야들야들 아이같아 내심 덜 서운하다.


울엄마가 등 뒤에 다가와 가방을 맨 채인 나를 왜 안았었는지 정말 조금,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저 자를, 이제 한품에 안을 수 없게 되고 보니 15년 세월 중 몇 번이나 옴팡 안았나, 헤아려도 헤아려도 양에 차지 않고 아쉽고 부족하기만 하다.


이제는 울엄마를 안아줘야지.

나보다 작아진 지 오래인 늙은 울엄마.


땅꼬마, 울엄마.

허리를 곧게 펴도 내 겨드랑이께밖에 서지 못하는 땅꼬마.


사랑해요.




옴 샨티 샨티 샨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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