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서툰 인생살이

겸손한 자 앞에 신들이 모이는 이유

by 연꽃부용

절대 겸손해야 한다, 절대 겸손해야 한다.

뭐 하나 잘난 것 없는 나로서는 겸손한 게 미덕이 아닌,

필수요 방패요 블랙 카드다.


물질도 부족하고 빽도 없고 그러니 인맥은 당연히 없고,

울타리라고 해봐야 팔 뻗으면 닿는 거리 사람밖에 없다보니,

어디서 짱돌이 날아와 머리가 깨질지,

어디서 누가 휘두른지 모를 장대가 스치고 지나다 목을 칠지, 초원 아닌 사바나에 놓인 것 같은 인생이 아니었겠나.


사람은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첫째 누가 봐도 얻어먹을 것도 없어 보이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고,

주변에 끗발 좀 날릴 만한 인사도 없고,

지 먹을 거 챙겨먹기도 급급한 인생 살이에

후~ 바람 불면 금세 거덜날 것 같은 불안불안한

하루살이 인생이니 당연하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게 바로 겸손이다.

겸손한 자는 신들이 보살핀다 하니 그 말을 믿었고,

겸손한 자 앞에서는 마귀도

그 기세를 누그러뜨린다니 그 말을 믿었고,

어차피 신들도 누추한 행색으로

사람들 틈을 유랑한다니 그 말도 믿었고,

주변에 사람 눈보다 보이지 않는 눈이 더 많다고 하니 또 철썩같이 그 말도 믿었다.



그랬더니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가진 사람들 앞에서는 쥐뿔 가진 것도 없이 당당해졌고,

거만한 사람들 앞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백을 뒤에 둔 듯

당당해졌다. 다 세상 물정을 몰라서다.

대신 평범하고, 소소하고,

튀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면 더 고개 숙이게 됐다.


교만할 만한 인생을 살아보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지만,

앞세대 사는 모습 보니 교만 끝엔 결국 그 끝이 좋지 않고,

겸손한 삶 끝은 반짝반짝 빛나더라.



1998년 IMF가 터지기 직전 주변에 내로라하는 잘사는 사람이 많았다.

과부였던 엄마는 사남매 키우며 15000원 벌면 14000원을 저축할 정도였고, 하긴, 그땐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축을 미덕으로 삼아 살았댔다.

그때 많은 것들이 무너지고,

많은 새로운 것들이 솟아올랐다.

지방에 있었던 탓에 도시의 IMF를 몰랐던 것도 있지만,

2008년 금융위기 때 길바닥에 나앉을 뻔한 처지에 처해봤던 경험을 되짚어보면, 또 2012년의 부동산 폭락으로 인해 여기저기 이웃들의 집이 경매에 넘어갔던 때를 떠올려보면, 2022년 지금, 또 좀 무섭다.


지금도 경매에 붙여졌던 집을 떠안으며

넘겨받은 은행빚이 여전하고,

바닥을 기던 낮은 변동금리도 무서워

고정금리로 옮겨놓은 대출금을 쪼개 갚고,

세월의 속도만큼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 자라는 아이들.

그들만큼은 대학 다니는 동안

학자금 대출은 받게 하지 않으리 하고 바라지만,

그게 가능할까 싶은 시대에 진입하고 말았다.


또 가진 것 없는 자로서 주문을

유산으로 줄 수 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구나.

나 살아왔던 때와 다른 시대임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것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

절대 몇 억겁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

그런 종류의 것들만을 유산으로 줄 수밖에 없는 처지의 삶이어서 좀 염치가 없지만,

그래서 더 당당할 수 있다는 위안을 삼으며,

2022년을 보내고 있다.


살아있어서, 살아가는 동안, 무조건 힘들겠지만,

다시 한 호흡 가다듬고 살아보자.

신은 내가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와

가장 처절한 모습으로 그를 부를 때

눈앞에 나타난다.

눈앞에서 아직 나를 지키는 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직은 나 혼자서 버틸 만한 힘이 있는 거니까,

대신,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절대 하지 말기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신의 뜻대로 하소서.



옴 샨티 샨티 샨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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