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일랜드에서 만난 첫 사람들, 그리고 첫 정원일
아침이 밝았다.
정신없는 첫날이 지나고 기분 좋게 눈을 떴다.
아일랜드의 여름은 정말 시원하고 눈부셨다. 그때는 몰랐는데 아일랜드에서 그런 날들은 꼭 외출을 해야 하는 소중한 날들이었다. 아일랜드 평소 날씨는 우중충하고 비도 자주 왔다.
첫날에는 정신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내가 머무는 이곳은 생각보다 훨씬 근사했다.
넓은 땅 위에서 보기 예쁜 집 두 채가 있었으며, 그 앞에 아름다운 정원과 음악 스튜디오가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정원은 결혼식을 대여해 주는 공간이었고 스튜디오 또한 연주를 위한 대여공간이었다.
날마다 연주하는 밴드 음악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게 꽤 좋았다.
나는 그 정원 관리를 도와주기 위해 온 한 사람이었다.
이 모든 것들을 소유한 아이리시 노부부는 '올리브'라는 할머니와 '마크'라는 할아버지였다.
틀림없는 부자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들로부터 여유가 느껴졌고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 한국에서부터 내가 살게 되는 단기 숙소에 대해 걱정이 정말 많았다.
정원일이라는 것도 처음이었고 서투른 영어를 쓰며 살아가는게 정말 상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올리브와 마크의 첫인상은 나를 안심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동료인 '레일리'라는 호주 친구에게 기본적인 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레일리는 내가 4주간 살게 되는 집도 소개해주었다.
내 집은 작은 카라반이었고 영화에서 본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지저분했는데 나는 그게 오히려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지낼 사람이 바로 독일에서 온 ‘조나단’이었다.
샤워를 마친 조나단과 처음 마주쳤는데
키가 크고 마른 체형에 영어가 능숙했다. 친절한 듯 아닌 듯 약간 시니컬한 사람이었다.
굉장히 여기서 오래 산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Hi, I'm Jeong. nice to meet you"
조나단과 가볍게 인사를 나눴는데 나에게 크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는 마치 이런 상황들이 익숙해 보였다.
난 그날부터 바로 일을 시작했다.
조나단도 오늘 일을 한다고 해서 나도 빨리 배우면 좋을 것 같았다.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보통 올리브를 통해서 일을 받았고
잡초를 뽑거나 꽃에 물을 주고 가끔 주어진 일을 했다.
또 특별한 체계 없이 근무에 있어서 매우 유연했다.
주 5일 5시간씩 일을 하면 되었는데 딱히 정해진 요일이나 시간도 없고 주어진 일도 없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었고 일도 눈치껏 찾아서 하는 듯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런 유연함이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영어도 부족하고, 정해진 게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일을 하려고 나왔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아 의도치 않게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일을 시작할 때마다 올리브나 레일리를 찾아야 했고, 맡은 일을 끝내면 또 뭘 해야 할지 몰라 눈치만 보게 됐다. 타이밍을 재는 게 일이었다.
딱히 나를 케어해 주는 느낌보다 자유롭게 풀어놓는 분위기라서 더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조나단과 함께한 첫 정원일은 나쁘지 않았다. 잡초만 엄청 뽑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는 할 만했다.
다만 조나단은 정말 과묵하고, 사교적이지 않아서 다가가기 어려웠다. 나도 영어가 부담스러워서, 함께 일하는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친해지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조나단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그리고 직접 파스타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의외의 모습에 감동했다. 뜻밖에도 조나단이 만들어준 파스타는 지금까지 기억이 남을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그 맛이 잊히지 않아, 어쩌면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파스타만 먹고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일을 마치고는 주변 중심가로 나갔다.
아마 제대로 된 첫 외출일 것이다.
헬스장도 등록할 겸, 집에서 얼마나 걸리는지 알고 싶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유럽 한복판에서 혼자 걷고 있는 내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이 동네엔 동양인이 거의 없었고, 모든 것이 조용하고 한국과는 너무도 달랐다.
마치 외계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난 아일랜드에 온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은 없었다.
내 인생에서 발버둥 치듯 여기까지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드시 무언가를 이루고 떠나야만 했다.
그래야 이 선택이 헛되지 않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많다.
특히 앞으로의 4주는 이곳에 정착하는 데 중요한 시간이다.
각종 행정처리부터, 집과 일자리를 구하는 일까지 하나씩 해내야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나도 예상할 수 없다.
첫날부터 벌써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그냥 저 멋지게 지는 해처럼, 언젠가 나도 후련한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갈 수 있길 바랐다.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