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만상(森羅萬象)

인연의 덧없음에 대하여

by 수요일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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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중앙홀. 나는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 ‘삼라만상’ 앞에 서 있었다. 3인치짜리 작은 패널 수만 개가 벽을 가득 메운 모습은, 백남준의 ‘다다익선’처럼 현란하고 압도적이었다. 미술 평론가라면 이 작품의 시대정신과 작가의 의도를 논하겠지만, 미술에 까막눈인 나는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미술관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아서 여러 번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내 예술적 안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작은 패널들에는 세상의 온갖 군상과 현상이 담겨 있었다. 아이의 서툰 그림,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 풍경 사진, 추상적인 이미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 눈은 무심코 한글이 아닌 한자로 쓰인 어느 한 패널에 멎었다.


‘梁上君子(양상군자)’


네 글자를 소리 내어 읽는 순간, 미술관의 정적은 사라지고 왁자지껄한 고등학교 2학년 교실의 소음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나는 더 이상 과천에 서 있는 중년의 남자가 아니었다. 교과서 뒤에 무협지를 숨기고, 세상 모든 것이 지루했던 열여덟 살의 소년으로 돌아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 학창 시절은 대부분 지루했다. 특히 미술과 음악, 체육 시간은 끔찍이도 싫었다. 그런 내게 유일한 산소마스크 같았던 시간은, 담임선생의 유고로 임시 담임이 된 영어 선생님의 수업 시간이었다. 이북에서 피난 오신 그분은 문법이나 시험 대신, 칠판 가득 재미있는 영어 소설이나 사설을 적고 함께 해석해 나갔다. 영어 특유의 비유와 그 속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는, 무협소설에 빠져 현실 감각을 잃어가던 나를 잠시나마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주었다.

그 시절 나는 무협지에 미쳐 있었다. 수백 권을 독파했고, 수업 시간 대부분을 책상 밑에 숨겨둔 무협의 세계에서 허우적댔다. 몇몇 선생님들은 내게 “너한테서는 지풍(指風)이나 장풍(掌風)이 나가지 않느냐”며 시답잖은 농담을 던질 정도였다.

무협지는 보통 첫 권이 가장 재미있다. 나머지는 천편일률적이다. 주인공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나 기연(奇緣)을 얻고,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대련을 시작하기 전에는 상대방의 문파와 사부를 칭송하는 온갖 허례허식을 늘어놓지만, 막상 싸움이 시작되면 주인공의 일 초식에 적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간다. ‘양상군자’ 역시 그런 허례허식의 단어 중 하나다. ‘대들보 위의 군자’라며 도둑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것. 나는 그럴듯한 말로 본질을 감추는 무협지의 세계를 사랑했고, 와룡생 같은 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다시 미술관. 나는 ‘양상군자’라는 패널에서 시선을 떼어, 그 주위의 수만 가지 다른 패널들을 둘러보았다. 웃는 얼굴, 우는 얼굴, 사랑한다는 고백, 의미 없는 도형들… 그제야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인생은 영웅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무협의 세계가 아니다. 문법처럼 정해진 길도, 아름다운 이야기만 가득한 영어 소설의 한 단락도 아니다. 인생은 바로 이 ‘삼라만상’ 그 자체다. 예측할 수 없는 무수한 사건과 감정, 만남과 헤어짐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복잡하고 거대한 집합체.

그 속에는 거창한 인연도, 지독한 악연도 없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패널들처럼, 잠시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들이 있을 뿐이다. ‘양상군자’라는 한 조각의 기억이 나를 과거로 데려갔다 온 것처럼, 우리는 그저 수만 가지 시간의 파편 속을 유영하다 사라질 뿐이다.


미술관을 나서며, 나는 더 이상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탓하지 않았다. 내 멋대로 해석하고, 내 추억과 멋대로 연결 짓는 것. 그것이 바로 나 같은 까막눈이 ‘삼라만상’을 온전히 감상하는 방법일 것이다.


아 그 시절, 지풍 운운했던 그 선생님이야말로 무림의 고수였다. 거의 붕붕 날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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