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와 쇠스랑

염치에 기대어

by 수요일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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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저마다 체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내게는 ‘고수(芫荽)’가 그렇다. 90년대 초, 압구정동에 처음 문을 연 베트남 쌀국숫집에서 그 향채를 처음 만났다. 유행에 민감했던 ‘오렌지족’들이 해장을 위해 문전성시를 이루던 그곳을 나 또한 꽤나 자주 드나들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고수와 친해지지 못했다. 최근 고수 냄새를 거부하는 유전자가 따로 있다는 논문이 나왔다는 소식에, 쌀국수깨나 먹어본 사람치고 촌스럽다는 핀잔을 면할 핑계가 생겨 다행이라 여겼을 정도다.


어린 시절 외갓집에서 먹었던, 지금은 이름조차 부르기 조심스러운 그 여름 음식은 또 다른 종류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단백질이 귀했던 시절, 친척들과 나눠 먹던 그 음식을 어른이 되어 다시 마주했을 때, 나는 매번 배탈이 났다. 당시 우리 부서의 부장님은 매 회식 때마다 그 가게의 그 음식을 즐겼다. 하물며 신입사원 환영회도 그 가게로 갔다. 모두가 소화가 잘된다고 했지만 내 몸은 완강히 거부했다. 어쩌면 프랑스 여배우의 호통과 시대의 변화를 거치며 내 안에 쌓인 심리적 거부감, 즉 ‘심인성 거부’였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음식에 대한 거부는 체질이나 심리의 문제로 이해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바로 ‘염치(廉恥)’가 없는 태도다.


며칠 전 주말, 동료들과 함께한 식당은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로 북적였다. 우리 옆 테이블에도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조상이 광야를 달리던 기마민족의 후예라도 되는 듯, 좁은 식탁 사이를 종횡무진 휘젓고 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보통 이런 경우, 부모는 아이의 행동을 나 몰라라 하거나, 주변의 눈총을 애써 외면하며 자기들끼리의 대화에 몰두하기 일쑤다. 그러면 식당의 공기는 순식간에 짜증과 불편함으로 무거워진다. ‘꼰대’ 소리를 들을까 봐 차마 나서지 못하는 어른들은, 그저 빨리 자리를 뜨는 것으로 소극적인 항의를 표할 뿐이다.

하지만 그날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아이의 부모는 식사 내내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얘야, 제발. 다른 분들 식사하시잖니.” 아이를 타일러 자리에 앉히고, 음식을 입에 넣어주며 잠시라도 시선을 붙들려 애썼다. 하지만 아이의 에너지는 부모의 통제를 번번이 벗어났다. 아이가 우리 테이블 근처로 달려올 때마다, 아이의 부모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가 워낙 활발해서… 주의시키고 있는데도 힘드네요. 조금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어쩔 줄 몰라하는 미안함과 부끄러움, 즉 ‘염치’가 가득했다. 그 진심 어린 사과와 양해를 구하는 태도 앞에서, 우리의 불편함은 눈 녹듯 사라졌다. 오히려 안쓰러운 ‘연민’이 그 자리를 채웠다. 우리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이들이 다 그렇죠.”

그들의 염치 하나가 소란스러웠던 식당의 풍경을, 서로를 이해하는 따뜻한 공간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본 한 장면을 떠올렸다. 이국땅에서 가족을 위해 밤낮으로 일하던 300여 명의 노동자들을, 헬리콥터와 장갑차까지 동원해 급습하여 쇠스랑으로 결박하던 모습. 그 압도적인 폭력 앞에서 나는 ‘염치’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 사는 자들의 민낯, 타인의 고통에 대해 일말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그 서늘한 얼굴을 본 것이다.


고수를 못 먹는 것은 내 체질 탓이고, 어떤 음식을 거부하는 것은 내 심리 탓이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다. 하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해를 구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은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한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많으면 세상살이는 고달프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용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를 구할 수는 있다. “미안하지만, 저는 고수를 못 먹습니다.”, “죄송합니다, 제 아이가 소란스럽지요.” 이 가벼운 말 한마디가 사라진 시대. 모두가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고 타인의 불편함에는 눈을 감는 시대. 점점 더 서로의 몸 하나 가누어주기 어려운 시절을 우리는 건너고 있다.


그 부장님과 여전히 만난다. 칠순이 넘긴 연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주불사지만 그 음식은 이제 더 이상 찾지 않는다. 뭔 다른 방법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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