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심동(仁者心動)
내 마음속에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두 개의 풍경이 있다. 하나는 숫타니파타의 한 구절,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고독하고도 장엄한 수행자의 뒷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류시화 시인의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는, 모든 것을 품어버린 자의 깊고 푸른 평온함이다.
두 풍경은 닮은 듯 다르지만, 결국 외부의 자극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힘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 경지를 동경해 왔다. 숫타니파타 전편을 읽으며 그 모든 가르침이 결국 ‘집착’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로 수렴됨을 어렴풋이 깨닫기도 했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체득하는 것 사이에는 우주만큼의 거리가 있는 법이다.
나는 얼마 전, 이제는 제법 선선해져 가을바람이 불던 어느 오후에 그 거리를 실감했다.
오랜만에 찾은 야외 카페. 갓 나온 커피의 온기를 느끼며 책장을 넘기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가을바람이 심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냅킨이 날아가고, 찻잔이 덜컹거리고, 길 건너편에 내걸린 현수막 깃발은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미친 듯이 펄럭였다.
“젠장, 이놈의 바람은….”
모처럼의 평화로운 오후를 망쳐버린 바람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광란의 춤을 추는 깃발을 노려보았다. 그때, 머릿속에서 아주 오래된 이야기 하나가 먼지를 털고 일어났다.
혜능 대사가 어느 절 앞을 지날 때였다. 두 스님이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을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한 스님이 말했다. “저것은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다(幡動).” 다른 스님이 반박했다. “아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風動).”
두 사람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다투고 있을 때, 혜능이 조용히 말했다. “움직이는 것은 깃발도 아니고 바람도 아닙니다. 움직이는 것은 바로 그대들의 마음입니다(仁者心動).”
‘인자심동(仁者心動)’. 그 말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내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싶다는 나의 작은 ‘집착’이, 불어오는 바람을 ‘훼방꾼’으로 만들고, 펄럭이는 깃발을 ‘소음’으로 느끼게 한 것이다. 바람도 깃발도 그저 제자리에서 자신의 본성을 따르고 있을 뿐, 그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흔들린 것은 결국 나의 마음이었다.
문득 장국영이 주연했던 영화 <동사서독>의 오프닝이 떠올랐다. 사막의 황량한 풍경 위로 흐르던 그 독백. 영화는 시작부터 ‘인자심동’의 화두를 던지며, 사랑과 미련, 기억이라는 집착에 시달리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처연하게 그려냈다. 결국 모든 괴로움은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신기루와 같다는 것을, 왕가위 감독은 그토록 아름답고 쓸쓸한 영상으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 비에 젖지 않는 바다. 그 경지는 얼마나 멀리 있는가. 나는 고작 커피 한 잔의 온기를 지키지 못함에 마음이 펄럭이는, 미숙한 수행자에 불과했다.
카페를 나서는 길,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바람이 원망스럽지 않았다. 깃발은 여전히 소란스럽게 펄럭이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조금, 아주 조금은 고요해져 있었다.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깃발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시선을 바꾸는 일일 것이다. 오늘은 그것 하나만 생각해 보아도 꽤 괜찮은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