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를 빌리자면 ‘쓸데없이 자질구레하게 늘어놓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네 삶에서 잔소리의 정의는 좀 더 복잡하고 감정적이다. 그것은 소리(Sound)이되, 상대방의 귀에는 불필요한 참견, 꾸지람, 비난, 힐난 같은 부정적인 주파수로 전달되는 소음(Noise)에 가깝다.
누군가 입을 떼는 순간, 듣는 이의 마음속엔 주름부터 먼저 진다. “또 시작이네”, “나한테 왜 이래”라는 반발심이 고개를 들고, 그 순간부터 말의 내용은 중요치 않게 된다. 물론 그중에 뼈와 살이 되는 주옥같은 조언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말도 반복되면 결국 잔소리라는 카테고리에 처박히기 마련이다.
직장 생활 초년병 시절을 떠올려 본다. 당시 나는 상사들로부터 엄청난 훈계와 꾸지람을 들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랑의 매’이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말들이 거름이 되어 지금의 나로 성장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은 삐딱한 생각이 든다. 혹시 나는 이미 완성된 자아였는데, 그 쓸데없는 소리들 때문에 오히려 비뚤어진 자아로 변해버린 건 아닐까. 그들의 잔소리는 나를 키운 자양분이었을까, 아니면 내 영혼을 갉아먹는 좀벌레였을까.
아침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책 소개가 떠오른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사소한 발상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명분과 실제에 대한 깊은 통찰로 이어진다는 소개가 흥미로웠다.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포장된 찬사, 상대를 위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씹어대는 말들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내뱉는 말과 표현은 과연 우리의 진심을 담고 있으며, 상대방의 마음에 온전히 가닿고 있는 것일까. 잔소리 역시 상대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실제’는 화자의 통제욕이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배설일 때가 많지 않은가.
여기 흥미로운 딜레마가 하나 있다. 당신은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를 타야 한다. 원래 예약한 출발 지점(A)은 집에서 가깝지만, 버스가 복잡한 시내를 통과해야 하는 코스다. 반면, 목적지에서 좀 더 가까운 다른 지점(B)은 집에서는 멀지만, 버스가 간편하게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당신은 어디서 버스를 탈 것인가?
예약했다는 ‘명분’을 따라 복잡함을 감수하고 A 지점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예약은 안 했지만 ‘실제’적 편의를 위해 조금 더 간편한 B 지점으로 갈 것인가.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당신이 B 지점에서 타기로 결정했을 때, 목적지를 향해 운전하는 버스 기사는 당초 출발 지점(A)에서 타지 않은 당신을 허락할 것인가.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선다. ‘잔소리’로 포장된 명분과 ‘나의 진심’이라는 실제 사이에서 갈등하고, 정해진 경로(예약)와 더 나은 대안(간편함) 사이에서 고민한다. 내가 내린 선택이 과연 목적지로 향하는 올바른 길인지, 그리고 세상(운전기사)은 나의 이탈과 새로운 선택을 용납해 줄 것인지.
잔소리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자신만의 경로를 찾아가고 있다. 때로는 타인의 잔소리를 나침반 삼기도 하고, 때로는 귀를 막고 내 안의 소리에 집중하기도 하면서. 중요한 것은 명분과 실제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내가 선택한 경로에 대해 책임을 지는 태도일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나의 변화를 허락해 줄 운전기사를 만나는 행운도 필요하겠지. 오늘도 나는 수많은 잔소리의 소음 속에서 나만의 주파수를 찾아, 나의 정류장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