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빨간 사추기

시간의 맛

by 메타럽

찌개나 설렁탕처럼 어떤 것들은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뜨끈해야 맛있는 게 있고, 김치나 냉면처럼 어떤 것들은 아무리 겨울이라도 차가워야 맛있는 게 있습니다. 음식마다 가장 맛있는 온도가 있어서 그 온도대로 먹지 않으면 아무리 맛있게 조리된 음식도 제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셰프들은 음식을 그릇에 담기 전에 음식에 따라 접시를 뜨겁게 데우기도, 또는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하기도 하지요.


시간도 그렇습니다. 일하는 시간은 돈을 벌 수 있어야 시간 쓸 맛이 나고, 봉사하는 시간은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시간 쓸 맛이 나고, 노는 시간은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시간 쓸 맛이 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 쉬는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어야, 본연의 쉬는 시간이 되고, 쉬는 시간으로서 맛과 의미를 갖겠지요.

이렇게 머리로는 알겠는데 실천은 영 따르질 않으니 스스로도 참 갑갑합니다. 원고를 쓰면서 음악을 듣다가, 커피를 마시다가, 메일을 열어 보다가, SNS를 확인하다가, 또 뜬금없이 쇼핑몰에 들어가 옷구경을 하다가 강아지 나오는 동영상이나 숏폼을 넋을 잃고 계속 쳐다보고 있기도 하고, 이러면서 능률이 안 오른다고 속상해하고 있습니다. 만약 아마 우리 엄마가 살아계셔서 옆에서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있다면 한 마디 하실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아까운 시간을 보낼 때가 많네요.

가뜩이나 빨리 가는 시간, 좀 맛나게 쓰면 좋겠다, 맛나게 써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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