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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럽 Sep 18. 2024

볼 빨간 사추기(늙으면 어떡하지?)

29. 늙으면 어떡하지?

 가끔 나이와 관련해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말 그 나이가 맞냐?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는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아직도 일을 하냐?’는 이야기입니다. 일단 이 이야기들의 앞면은 칭찬으로 들립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의 뒷면을 생각해 보면 나이 들면 늙은 모습이 당연하다는 건지, 또 나이 들면 일을 못하고 안 하는 게 당연하다는 건지 궁금해집니다.  

    

 ‘칭찬하면 그냥 칭찬으로 들으면 되지, 뭘 그리 깊게 생각하느냐?’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제가 이렇게 칭찬을 분석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많이 변해도 '나이에 대한 우리의 기존 관념은 별로 변하지 않는 것 같아서'입니다. 우리 속마음은 나이 들어도 젊어 보이고, 나이 들어도 일하는 것을 동경하면서, 정작 일반적인 생각은 여전히 나이 들면 늙은 모습을 하고, 일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나 할까요.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나이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은, 이처럼 의외로 참 단단합니다.     


 몇 년 전에 저희 프로그램에 모셨던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의 김영옥 대표가 새로운 책을 내면서 이런 말을 하셨어요. “질문하고 상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남들이 정해준 대로 늙을 것이다.” 저는 이 말에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영옥 대표는 또 이런 참 멋진 말도 했어요. ‘사회가 규정한 늙은이 말고 ‘늙은 자기’로 살기’.


 실제 가만 보면 다들 너무나 비슷한 모습으로 나이 들어갑니다. 오죽하면 우스갯소리에, 나이 들면 미모를 비롯해서 지성, 건강 등 모든 게 평준화된다는 얘기가 다 있겠어요. 그리고 여태 그 우스갯소리를 당연한 것처럼 여겼는데, 새삼 ‘나이 들어도 나는 나여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나이 들면서 그야말로 모든 게 평준화되고 비슷해진 ‘노인 1’, ‘노인 2’가 되는 게 아니라, 나는 나이 든 ‘메타럽’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나이 들어야 노인 1, 노인 2가 되지 않고 나이 든 내가 될 수 있을까요? 손자병법에 있는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유명한 구절을 떠올려 봅니다. 손자는 최상의 전략으로, 전쟁하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얘기하면서,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고 말하지요. 이 지피지기 전략은, 늙어가는 데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참모습을 바르게 알아야, 쏜살같이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아름답게 나이들 수 있을 테니까요. 


 간혹 젊었을 때 소위 잘 나가던 시절의 나만 나이고, 나이 든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여기는 분들이 계시는데, 나는 과거에도 나였고, 지금도 나이고, 미래에도 나입니다. 나이 들면서 내가 변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실제의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 사이의 간극이 커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 간극 때문에 속상하고, 힘들고, 외로워지기 쉽습니다. 오히려 나이 들면서 변하는 나를 바로 보고 인정할 때,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나 자신을 더 사랑으로 감쌀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힘이 돼서 노년기에도 발전할 수 있고, 행복도 느끼게 됩니다.    

 

 요즘은 동네 성형외과나 피부과에서 피부 주름개선과 미백 등을 위해 레이저 시술이나 피부관리를 받는 분들이 많으시지요. 물론 나이보다 팽팽하고 깨끗한 피부를 갖는 것은 좋지만, 자칫 성형중독이 걱정되는 분들도 계십니다. 성형중독인 분들은 젊었을 때 팽팽하고 깨끗한 피부의 내 모습만 예쁘고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보톡스를 비롯해서 이런저런 시술을 받으시는 걸 텐데요.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단지 지우고 싶은 주름으로밖에 여기지 않기 때문에 결국 성형중독에 걸리는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 주름으로 인해 훨씬 온화해진 표정과 분위기가 만들어진 경우가 있는가 하면, 주름 속에 그간 고생하면서 사나워진 표정과 그악스러운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주름이든 모두 내 인생의 성적표입니다. 성적을 고친다고 성적이 좋아지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그런 나를 더 소중히 생각하고 사랑하면서 온화한 표정과 미소를 많이 지어서, 지금부터라도 내 인생의 성적을 올리는 게 더 중요합니다. 주름이 있어도 표정이 밝고 잘 웃으면 훨씬 젊게, 예쁘게, 멋있게 보입니다.     

 

 더욱이 예전에는 노년학자들이 인생시계를 그릴 때 자정의 위치에 80세를 뒀는데, 지금은 100세를 지나 120세를 자정의 위치에 둔다고 하더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생 백세시대라고 했는데, 이젠 인생 120세 시대를 바라보게 됐기 때문입니다. 인생시계에 따르면, 인생 80세 시대에서 60대는 오후 6시이지만, 인생 120세 시대에서 60대는 아직 정오라고 합니다. 오후 6시와 정오가 주는 느낌이 좀 과장해서 '하늘과 땅 차이'처럼 완전히 다르지요? 이렇게 120세 시대를 바라보는 현재,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나이들 건지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아마 어쩌면 지금도 실감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 나이 들수록 누구나 세월의 가속도를 무섭게 느끼게 됩니다. 실제 금방 나이 30, 40 되고, 또 금방 50, 60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120세 시대를 바라보는 현재, 장수노인들이 가장 많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공기 좋고 물 좋고 경치 좋은 시골, 또는 도심의 시니어타운이 아니라, 요양병원이라고 합니다. 이게 우스갯소리라면 좋으련만, 사실이라고 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아야 장수의 의미가 있는 건데, 이러면 요양병원에 있는 '노인 1', '노인 2'가 되면서, 말 그대로 ‘장수 리스크’가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 젊을 때부터 전혀 늙지 않을 것처럼 늙는 것에 정말 무관심할 게 아니라, 미리미리 건강관리 잘하고 ‘나는 어떤 노인이 될까?’ ‘나는 어떤 노인으로 살까?’를 꿈꾸고 계획하면서, 능동적으로 나이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야 나중에 세월을 한탄하거나, '늙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휘둘리지 않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아무리 나이 들어도 ‘나’는  ‘나’여야 합니다. 사회가 규정한 노인이 아니라, 오로지 나이 들어가는 나 자신으로 살 때 노년이 행복하고, 또 고령사회도 희망적인 사회가 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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