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해해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

들킬까 봐, 아니 외면당할까 봐


말은 너무 늦게 떠올랐다.


마음이 움직인 다음에도,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지금 좀 괜찮지 않아.”라는 한 문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다 다시 사라졌다.
나는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을 선택했고,
그 척은 이제 나의 기본값이 되었다.

이상하다.


나는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는 꽤 능숙한 편이었다.
상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 사람이 왜 힘든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고


어떤 말을 해주면 그 사람의 눈빛이 조금 풀리는지도 알았다, 그런데 정작
내가 이해받고 싶을 때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 안에서 맴돌기만 하다가 무력하게 사라졌다.

왜 그랬을까.


왜 “나도 좀 힘들어.” 같은 간단한 말을 하지 못했을까. 왜 도와달라는 말보다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꺼냈을까.
왜 나의 진심은 늘 끝에서 망설였을까.

그건 아마, 너무 일찍부터 알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말보다 표정을 먼저 본다는 것.
그리고 그 표정에서 눈치를 읽는다는 것.


조금만 징징거리면 피곤해하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요즘 다 그래.”라고 넘겨버린다는 것.


나는 한 번, 두 번, 세 번 마음을 꺼내려다 실패했고
결국 꺼내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러니까 이해를 구하지 못한 건, 용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뢰의 문제였다.
내가 내 마음을 보여도 괜찮을지,
이 사람은 그걸 받아줄 수 있을지,
그걸 물어보고 또 물어보는 마음이었다.

이해는 가까이 있어도, 닿지 않는 감정이었다.
어떤 날은 내 옆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을 보며
오히려 더 외로워지기도 했다.


“이 사람은 지금 진심일까?”
“내가 괜히 민폐는 아닐까?”
“이해해달라는 말이, 짐이 되진 않을까?”

그렇게 나는, 나를 설명하는 대신
“그냥 좀 피곤해.”
“아무것도 아니야.”
라는 말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말들이 쌓이면서, 내 진짜 감정은 점점 더 숨어버렸다.

가끔은 진심이 너무 복잡해서 말이 안 되기도 했다.
화나면서도 미안하고, 울고 싶지만 어색하고,
사람이 그립지만 혼자가 편하고.
그 복잡한 감정을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어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이해해달라고 말하지 못한 건
이해받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없어서였다.

내가 무너지면, 누가 날 붙잡아줄까.
나를 정말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 걸까.

사실 나는 나조차 잘 모르겠다.
어떤 날은 외로움에 잠기고,
어떤 날은 그 외로움조차 불편해서 도망치고.
말이 늦어지는 건, 말할 줄 몰라서라기보단
말을 해도 내가 제대로 이해받지 못할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낙심이, 나를 더 조용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도
혼자 있는 방 안에서, 혼자만의 대화를 한다.


“그냥 오늘은… 말하지 말자.”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
“괜히 분위기 흐리지 말자.”

그 말을 하는 나는,
사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고,
나도 굳이 알려주지 않았다.

요즘은 조금씩 다르게 살아보려 한다.
말을 꺼내는 데 성공한 날엔, 조용히 스스로를 칭찬해준다.


“잘했어. 오늘은 말했네.”


그게 처음엔 서툴고 어색해도,
다음엔 조금 덜 무서울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게 이해받는 걸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바람을 숨기고 사는 건 너무 고단하다.
이제는 조금 솔직해지기로 했다.


“나, 사실 이해받고 싶어.”
“내 마음 누가 좀 알아봐줬으면 좋겠어.”


그 말 하나를 인정하는 데 오래 걸렸지만
지금은, 그걸 말하지 못했던 나도 이해해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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