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가 입에 붙어버렸다


“괜찮아요.”


어쩌다 보니 그 말이 입에 붙었다. 거의 반사처럼 튀어나온다. 누가 나를 다그쳐도, 위로해도, 걱정해도, 아니면 아무 말도 안 해도. 괜찮아요, 라는 말은 마치 내 얼굴에 붙은 가면 같다. 표정이 망가지지 않도록, 나를 들키지 않도록.


사실은 별로 괜찮지 않다. 속은 복잡하고, 때로는 서럽고, 이유 없이 무너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나오는 말은 이상하게도 “괜찮아요.”


그게 습관이 된 건 아마 오래전부터였던 것 같다. 처음에는 어른들 앞에서, 선생님 앞에서, 그리고 친구들 앞에서. ‘내가 울면 분위기가 흐려질까봐’, ‘괄시받을까봐’, ‘내가 너무 약한 사람처럼 보일까봐.’ 그렇게 하나하나 이유를 달다 보니, 나중엔 이유도 없이 괜찮다고 말하게 됐다.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넌 항상 아무렇지 않은 척 잘하더라.”


그 말에 웃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무거워졌다. 정말 나는 항상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었구나. 그게 누군가에게는 ‘강함’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내가 나를 숨기는 방식이었다.


가끔은 이런 상상을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나 너무 힘들어”라고 말하면, 그 사람이 조용히 나를 안아줄지도 모른다는 상상. 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오면 나는 또 “아니야, 그냥 좀 피곤했나 봐”라고 말을 돌릴 것 같다. 감정을 꺼내는 게 너무 낯설어졌고, 무서워졌다.


‘괜찮아요’는 나를 지켜주는 말이었다. 무례한 사람에게서, 너무 깊게 들여다보는 사람에게서, 스스로의 혼란스러운 감정에서. 하지만 동시에 나를 감추는 말이기도 했다. 누구도 진짜 내 상태를 알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말.


이 말을 자주 하게 된 이후로, 사람들은 나를 점점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잘 버티는 사람, 감정 기복 없는 사람,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 이미지 안에 나는 갇혀버렸다. 내 안에 쌓여가는 혼란과 피로는 점점 더 자리를 잃었다.


그럴수록 더 외로워졌다. 괜찮지 않다고 말할 타이밍은 점점 사라졌고, 이제 와서 말하면 “그동안 왜 말 안 했어?”라는 반응이 돌아올까 봐 두려웠다. 어쩌면 나도 나를 믿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나의 약함을 받아들이는 순간, 정말 무너질까 봐.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까 봐.


문득 거울을 보면서 “괜찮아?”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나도 모르게 “응, 괜찮아”라고 답했다. 그 대답이 얼마나 익숙했던지, 아무 의심 없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잠시 뒤에야 생각했다.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 아니,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스스로의 감정에 무관심해졌을까?


감정은 점점 낯설어졌다. 어떤 날은 분명 슬퍼야 할 상황인데 아무 감정이 일지 않았다. 또 어떤 날은 사소한 일에도 눈물이 났다. 감정의 무게추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는 것보다 침묵이 익숙했고, 무너지는 것보다 외면이 쉬웠다.


요즘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쉽지는 않다. 말끝을 흐리고, 눈치를 보고, 결국은 또 괜찮다고 하게 되는 날도 많다. 그래도 가끔은 솔직해지고 싶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물어봐 줄 때, 용기 내어 말해보고 싶다.


“사실, 오늘은 별로 안 괜찮아요.”


그 말이 나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여전하다. 하지만 어쩌면 그 무너짐 속에서 진짜 회복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괜찮은 척에 너무 익숙해진 나는 이제 천천히, 괜찮지 않은 나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지금은 그저 그 말을 연습 중이다. 나에게, 거울 앞에서,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분명하게.


“안 괜찮은 것 같아.”


그리고 그 말이 언젠가, 나를 조금 더 자유롭게 해줄 것 같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