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고장 난 사람은 어떻게 사나요?

나의 생존기


초등학교 운동회 날이었다.


반 친구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깔깔 웃고 있을 때, 나는 어디까지 입꼬리를 올려야 자연스러울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눈꼬리를 얼마나 접어야 ‘재밌다’는 얼굴이 완성되는지, 내 웃음이 너무 늦게 터진 건 아닌지, 속으로만 수십 번 되뇌며.


그 시절 나는 웃을 때조차 진짜로 웃지 않았다. 감정은 흉내 내는 것이었고, 타이밍은 무대의 일부였다. 나는 나라는 아이를 연기하듯 살아갔다.

누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괜찮아?”라고 물으면, 나는 너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준비된 대사처럼. 아니야,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본 기억이 없다.


안 괜찮다고 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가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끔은 진심보다 상상력이 먼저 반응했다. 나쁜 일이 벌어질까 봐, 사람을 실망시킬까 봐, 버려질까 봐. 그러니까 감정을 감추는 건 내가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슬퍼도 웃는 연습을 했다.


울고 싶을 땐 조용한 곳을 찾았다. 학교 계단 뒤편, 옥상 창틀 아래, 가로등 꺼진 골목길. 거기서도 엉엉 울지는 않았다. 눈물이 나도 감정을 뚫고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마저도 흐느낌보단 입을 꾹 다문 채 흘리는 조용한 눈물이었다. 나도 울고 있었지만, 마치 내 감정이 아닌 것처럼. 무표정한 내 얼굴이, 더 이상 이상하지도 않았다.

엄마는 감정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화도 쉽게 내고, 눈물도 많았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 감정들은 대부분 술을 마신 밤에 터졌다. 나는 그 밤들을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이 알아서 남아 있다. 엄마가 데려온 남자들이 내 방문 앞에서 신발을 벗을 때,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감정이 아니라 반사적인 감각이었다. 공포라는 감각은 자주 찾아왔고, 나는 그걸 느끼지 않으려고 감정을 접었다. 그건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감정이 없으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넘어갈 수 있으니까.

나에게 감정은 생존의 적이었다. 기쁘면 들뜬 티를 내면 안 됐다. 슬프면 약해 보이니까 참고 있어야 했다. 화가 나면 내가 더 혼났으니까 꾹 참았다. 그러다 보니 감정을 표현하는 법보다 감정을 조용히 없애는 법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누군가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낼 때,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부럽기도 했지만, 나는 그 감정을 부러워하는 법도 몰랐다.

한 번은, 중학교 때 친구가 가족 이야기를 하며 울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나는 '눈물이란 게 이렇게 나오는 거구나' 하고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에도 울지 못했다. 도리어 무기력했다. 위로의 말이 목구멍에서 멈췄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 친구는 나를 보고 말했다. “넌 감정이 없는 것 같아.”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해서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고장 난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그 고장은 수리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내게 “사랑해”라고 하면, 그 말을 믿지 못하는 내 안의 회로가 반응한다. 왜 나를 사랑해? 언제까지일까? 대가가 있는 건 아닐까? 나는 그 순간조차도 진심을 의심한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사랑이란 걸 오해한 채 배워서 그런가. 엄마가 했던 말들이 겹쳐 들린다. “너 같은 애 누가 데려가.” “내가 너 키운 것도 은혜야.” 그런 말들을 사랑이라고 배운 아이는, 자라서 사랑 앞에서 자꾸 고개를 숙인다.

나는 감정을 망가뜨린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해하려고는 한다. 엄마도 입양된 아이였다고 했다. 친부모가 버린 아기였다고. 그 집에서 소외감을 느꼈다고. 그래서 일찍 집을 나와 방황했고, 사랑을 얻고 싶어 여러 남자를 만났다고. 하지만 그녀는 누구에게도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채 엄마가 됐다. 나는 그런 엄마의 딸이었고, 엄마는 나를 사랑하려고 애쓰면서도 상처를 줬다.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감정을 느끼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 웃는 것도, 우는 것도 계산해 버리는 사람. 누가 내게 감정적이지 않다고 하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내가 감정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져 버려서 그렇다고. 그리고 이 익숙함이, 나를 조금씩 벼랑 끝으로 데려간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그래서 요즘은 감정을 느끼는 연습을 한다. 기쁨에 웃고, 슬픔에 울고, 외로움엔 외롭다고 말하는 연습. 아직 어색하다. 말끝이 자꾸 떨리고, 눈물이 나면 민망하다. 하지만 그래도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게 고맙다. 고장 난 줄 알았던 감정이, 천천히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니까. 살아 있다는 건 그런 걸까. 감정을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알아가는 과정.

나는 여전히 서툴다. 사람들 틈에서 어색하게 웃고, 혼자 방에서 조용히 무너진다. 그래도 이제는 그 무너짐을 창피해하지 않는다. 내가 고장 난 아이가 아니라, 고장 났다고 느끼며 살아남아온 아이였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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