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돌봄을 배웠지만, 나를 돌보는 법은 몰랐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요즘 너는 어때?"


누군가 이렇게 물어준 적이 언제였는지 생각해 본다. 그 질문이 떠오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돌보는 사람의 상태는 모두가 묻지만, 정작 나의 안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게 너무 익숙해져서, 나조차도 내 기분을 물어보지 않게 되었다.


간병은 ‘기술’이 아니다. 간병은 일상의 모든 틈에 배어든 감정의 일이다. 누군가를 돌보는 손은 물리적인 행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사람의 고통과 무기력, 고독과 절망을 함께 마주하는 시간이다. 나는 그것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봤다. 어쩌면 너무 자주.


어느 순간부터, 나의 손은 능숙해졌다. 온도 조절, 약 복용 시간 체크, 기저귀 교체, 몸 자세 바꾸기. 이런 것들을 누구보다 빠르게, 조용히 해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내 감정은 점점 사라졌다. 피곤하다는 생각보다, '빨리 해야지', '놓치면 안 되지'라는 다짐이 먼저 떠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을 봤다. 너무 익숙한 얼굴인데도 낯설었다. 눈빛이 흐려진 나. 그때 깨달았다. 나는 돌봄을 배웠지만, 나를 돌보는 법은 전혀 배우지 못했구나.


누구나 말한다. “너무 기특해.”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 말들이 위로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칭찬은 감정의 해소가 되지 않았다. 말없이 덮어둔 내 감정은 쌓이고 곪았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다시 내 안에 묻었다.


“네 감정은 나중에.” “지금은 네가 참고 있어야 하니까.”


그 말들이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나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밥을 걸렀고, 친구와의 약속을 미뤘고, 잠이 부족해도 무시했다. 가장 무서운 건, 이런 상태가 무감각해졌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고통을 너무 오래 방치했다.


밤이면 베개 위에 묻히는 감정들이 있다. 어떤 날은 분노, 어떤 날은 죄책감, 또 어떤 날은 그냥 ‘텅 빈 마음.’ 누군가를 정성껏 돌본 그 하루의 끝에, 나는 종종 텅 비어 있었다. 내 하루가 아닌 것 같았다.


감정이 말라가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를 위한 시간은 사치였고, 나를 위한 배려는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무심코 넘긴 내 감정은 나중에서야 덩어리처럼 되돌아왔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무겁게.


한 번은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는 참 강하다.” 그 말은 고마웠지만, 동시에 슬펐다. 나도 약해지고 싶었고, 나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다. 강해 보이는 건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방어였을지도 모른다. 내 안엔 울고 싶은 어린아이가 여전히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작은 연습을 시작했다. 하루에 한 번은 내 기분을 묻기. ‘오늘 나 어땠지?’라고 마음속으로 되묻는 일. 아주 작지만, 그 질문이 나를 지켜주는 것 같았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아침 햇빛을 쬐는 시간, 라면을 끓이는 몇 분, 샤워기 물줄기 아래서. 나는 조용히 내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느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간병을 통해 배운 책임감과 인내는 분명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내 존재를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걸.


돌봄은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방법은 분명 있다. 따뜻한 물 한 잔을 나에게 따라주는 일. 좋아하는 음악을 작게 틀어놓는 일. 무심하게 넘겼던 내 감정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는 일. 그렇게 나는 내 안의 ‘나’도 조금씩 돌보려 한다.


어쩌면 이게, 아주 늦은 배움 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나는 오늘도 나를 살피는 연습을 하고 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