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는 슬픔은 어디로 가는가

형태 없는 슬픔


슬픔에는 형태가 없다.


그래서인지 감정이 어딘가로 향한다는 말은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진지하게, 아주 오래 고민했다. 말하지 못한 슬픔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내 안엔 오래된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한 번도 누구에게 꺼내놓은 적 없는 이야기들이 퇴적층처럼 남아 있다. 맨 아래에는 유년기의 공포가, 그 위에는 사춘기의 허기와 분노가, 그리고 가장 윗면에는 최근의 고요한 상실이 얹혀 있다. 덮여 있는 그것들은 내 몸 이곳저곳으로 스며들었다. 어깨 결림이 되었고, 만성 피로가 되었고, 가끔은 아무 이유 없는 눈물로도 튀어나왔다.

나는 웃는 게 힘들다. 아니, 웃긴 한데, 내 얼굴이 진짜 웃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어릴 때 사진을 보면 이상하리만치 입꼬리가 어색하다. 친구들과 셀카를 찍어도 늘 한 박자 늦는다. 타이머가 다 끝난 후에야 진짜 미소가 올라온다. 누가 보면 무표정이 취향인 줄 알겠지만, 나는 진심으로 웃는 법을 자주 잊었다. 그런 나를 보고 어떤 친구는 농담처럼 말했다.


"넌 기쁜 것도 슬픈 것도 낯설어 보여."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기쁘고 슬픈 감정이 낯설게 보이는 사람. 그런 사람은 과연 괜찮은 사람일까. 나는 종종 나 자신을 의심했다. 이따금 우는 나를 보며, 내가 정말 슬퍼서 우는 건지 확인하듯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남들은 크게 웃고 울며 정서를 나누는데, 나는 늘 그 정서의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감정이 고장 난 것 같다고 느낀 적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감탄하거나 분노할 때, 나는 그 감정의 온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어딘가 떨어져 있는 느낌. 공감이 느리게 도착하는 사람.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하면 모두가 편하니까. 그리고 나는 오래도록 그 방식을 유지했다.

한동안 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인데, 감정이 '있는지'조차 자주 헷갈렸다. 무서운 건, 그 모호함에 점점 익숙해진다는 점이었다. 감정의 진위를 자꾸 묻다 보면, 나중엔 감정 자체를 느끼는 일이 두려워진다. 아예 없는 게 차라리 나았다. 그러다 보니 감정은 점점 더 숨는다. 말하지 않은 슬픔은 몸속 깊이 숨어들고, 말 못 한 감정은 의심과 부끄러움으로 굳어진다.

그걸 가장 절실히 느낀 건, 어떤 날 밤이었다. 세상이 조용했고, 나는 내 방에서 혼자 있었다. 창문을 열자 약간의 바람이 들이쳤다. 나는 그 바람결에서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단지, 쌓여 있던 무언가가 흐른다는 느낌만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말하지 않았던 슬픔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았다.

내 안, 어쩌면 너무 깊은 곳에.

사람들은 자꾸 물었다. "왜 말을 안 해?" 아니, 말할 수가 없었다. 슬픔은 너무 크거나, 너무 작아서 말로 설명되지 않았다. 감정에는 길이가 없고, 두께도 없는데, 사람들은 늘 그걸 숫자처럼 재고 싶어 했다. '얼마나' 슬펐는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그게' 정말 슬픈 일인지. 하지만 감정은 그런 게 아니었다. 말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더 부끄러워질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감정을 말하기보다, 감정을 감추는 데 더 능숙한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착한 척, 괜찮은 척, 씩씩한 척. 모든 '척'들은 나를 보호했지만 동시에 나를 지워갔다. 나중엔 진짜 나의 감정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어떤 날은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겪은 일들은,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고. 누군가는 더 힘든 시간을 겪었을 거라고. 그러니 내 슬픔은 '말할 가치'가 없다고. 그렇게 내 슬픔의 순위를 스스로 낮춰버렸다.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도 그쯤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문장을 접했다.


"고통은 비교할 수 없기에 모두 정당하다."


그 말에 머리를 맞은 듯 멈췄다. 정당하지 않은 감정은 없다고, 누군가가 말해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무시당해도, 우습게 보여도, 내 감정을 말해보기로. 말하지 않으면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글도 그런 노력의 일부다. 내가 말하지 못했던 슬픔들, 감정의 결핍들, 웃는 얼굴 뒤의 당황스러움과 어색함까지. 말로 꺼내놓으면 어쩌면 덜 무서울지도 모르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창밖에는 다시 바람이 분다. 나는 잠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묻는다.

괜찮니? 지금 너는 괜찮니?

그 물음에 대답하는 법을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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