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배우기까지의 여정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주먹을 쥐고 태어나지 않는다 손을 펴고 나온다 무언가를 움켜쥘 필요가 없어서 이 세상에 나와 숨을 들이마시는 그 순간부터 이미 환영받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는 손을 단단히 쥐고 태어난 아이였다 움켜쥐지 않으면, 무엇도 내 것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태어나, 그렇게 자랐다.
나의 첫 기억은 ‘배고픔’이다. 그것은 밥을 굶었다는 의미의 배고픔이 아니다 어딘가가 허한데 그게 무엇 때문인지 모를 때 드는 통증 같은 감정. 모두가 웃고 있는 자리에서 혼자 울고 싶었던 어떤 오후, 이유 없이 발끝까지 차오른 공허함이 나를 덮쳤다.
다섯 살이었고, 나는 혼자 방 안에 있었다. 엄마는 남자친구와 싸우고 있었고, 문밖에서 깨지는 접시 소리가 났다 나는 옷장 뒤에 숨었고, 내가 사라지면 이 세상에서 무언가가 조용해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조용해지지 않았다. 싸움은 계속됐고, 나의 입술은 말라붙었고, 나는 조용히 옷장 안에서 오줌을 쌌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몸을 숨겼다. 웃고 있는 사람 옆에서도, 손을 잡아주는 선생님 앞에서도, 나는 마음을 숨겼다. 나는 배운 적이 없었다 마음을 드러낸다는 것이 안전한 일이라는 것을.
초등학교 3학년 때, ‘하윤’이라는 아이가 나에게 도시락을 나눠주었다. 나는 이미 엄마가 싸준 김치 두 쪽과 밥만 담긴 도시락을 다 먹어 치운 후였다. 하윤은 자기 반찬통을 내 앞에 밀어놓고 말했다.
“이거 먹어. 나는 별로 안 좋아해.”
그건 연한 계란찜이었다. 노랗고 따뜻한, 누군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만든 것 같은 맛.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대신 반찬통을 아주 빠르게 비우고, 다시 하윤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나는 계란찜의 맛을 떠올리며 울었다. 나를 위해 건네진 무언가를 처음 받아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이후, 하윤은 나와 점점 멀어졌다. 나는 그녀의 배려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고, 그게 그녀에겐 차가움으로 보였던 것 같다. 나는 따뜻함을 받을 줄 몰랐고, 받았을 때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결국 그건 나에게서 또 하나의 배움으로 남았다. “좋은 걸 받으면, 곧 사라진다.”
중학교 2학년, 나는 잠깐이나마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는 선생님을 만났다. 그 선생님은 교무실에 불러 나에게 물었다.
“요즘 무슨 일 있어? 얼굴에 기운이 없어.”
나는 웃으며 “아뇨,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내 눈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한 마디를 더했다.
“괜찮다는 말로 진짜를 감추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그 말이 무서웠다 내가 들키고 있다는 느낌이. 그 선생님을 피했고, 일부러 말도 줄였다. 결국 한 학기가 지나자 선생님은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건 슬펐다 하지만 동시에 안도했다.
사람이 나에게 다가오면, 나는 얼어붙었다.
사람이 나를 이해하려 하면, 나는 도망쳤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20대 초반,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귀었다. 그 사람은 다정했고, 자주 나를 안아주었고, 가끔 내가 생각지 못한 순간에 “사랑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모든 순간이 불편했다. 그의 손길이 무섭다기보다, 내가 과연 그걸 받을 자격이 있는지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늘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등을 토닥일 때면 몸을 굳혔다.
“너 나 안 좋아해?”
그가 어느 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좋아했지만, 표현하는 법을 몰랐으니까. 결국 그는 말했다.
“너는 나를 거부하는 것 같아.”
그건 내가 살아온 시간 때문이었다.
나는 사랑받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법도, 표현하는 법도, 단지 존재로서 머무는 법도 몰랐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사랑은 본능이야.”
하지만 사랑은 학습이다.
특히 ‘받는 사랑’은.
사랑받는 감각은 누군가의 손끝, 눈빛, 말투로부터 천천히 배운다.
그리고 그것은 유년기에 가장 강하게 새겨진다.
나는 그것을 뒤늦게 배우고 있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고, 나는 스스로 많은 것을 반복해서 연습해야 했다.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 법부터.
어느 겨울, 나는 한 아이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여섯 살이었고, 자주 울었으며, 어깨를 늘 웅크리고 있었다. 어딘가 나와 닮았다 그 아이는 말을 더듬었고, 내가 손을 잡으려고 하면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처음엔 당황했다. 하지만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그 아이가 먼저 다가올 때까지, 무언가를 원할 때까지, 나는 그저 거기 있었다.
어느 날, 아이가 나에게 작은 곰 인형을 건넸다.
“이거… 너 가져…”
그건 아이가 가장 아끼던 인형이었다.
나는 물었다. “왜 나한테 줘?”
아이는 말했다. “좋아하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술이 떨리고, 눈물이 나서 말할 수 없었다.
그 아이는 내게 사랑을 주었다 그건 가르침이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고, 다가감이라는 걸.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내 방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상과 나 사이에 두꺼운 벽이 있다고 믿었던 내가, 처음으로 바깥공기를 숨 쉬었다.
사랑은 원래의 본능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배울 수 있는 것, 반복하며 쌓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게 사랑을 가르쳐준 사람들을 기억한다 하윤의 계란찜, 선생님의 시선, 첫 연인의 말, 그리고 작은 아이의 인형.
그 모든 장면들이 내 안에 남아, 나를 천천히 사람으로 만들었다 받는 법을 배운 나는 이제 주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넘치게 주지 않아도, 고장 나지 않은 마음으로 사람을 마주하는 법.
지금도 가끔 두렵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내가 누군가를 상처 입히진 않을까.
그러나 나는 안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도, 언젠가 사랑을 배울 수 있다는 걸 그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하지만 천천히, 조심스레, 자신을 믿게 되는 순간들이 쌓인다.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
나는 사랑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그리고, 아주 조금씩… 사랑하고 있다고.